하재룡 시인의 “웅얼웅얼 찔레꽃 노래”

모성의 의미

by 박바로가



웅얼웅얼 찔레꽃 노래 / 하재룡 시인


이 시는 모성이 못다 한 이야기가 정말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물론,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어떤 메시지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시적 화자의 후회와 슬픔만을 들을 수 있다. 아마도 심리학적으로 그는 바쁜 일상 때문에 자신의 애니마(자신 안의 여성성)을 잃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바쁜 어느 시기조차 그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는 것과 어머니가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둘 다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가 어떤 괴로움이 있었는지 무엇으로 고통을 당했는지 알지 못했다.

이 세월 동안 그는 어머니가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여기서 찔레는 가시를 의미한다. 가시는 우리에게 그녀가 힘든 시기를 살아가게 해줬을 강인한 척추를 의미한다. 또한 찔레는 그녀를 상처주거나 아프게 했을 일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수년간 고통받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자신의 삶에서 고전분투할 동안, 아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어머니가 어떤 일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시적 화자가 나이 듦에 따라, 그는 늦게서야 그녀가 약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가 그 요양원에 방문한 그날이 돼서야 그는 어머니가 침대에 힘없이 누워 찔레꽃을 부르는 것을 듣게 된다. 그는 아마도 인간으로서의 어머니나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찔레꽃은 다른 한편으로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어머니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바쳐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추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시인은 그 희생을 알지 못한 것을 어머니의 찔레꽃 노래에 대한 일화로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고서야 어머니와 어머니의 따뜻항 모성과 함께 할 수 있는 세월이 이미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그는 이미 좋은 수입과 평판, 자랑스러운 아이들이 있지만 그것으로만 어머니와의 소종 했던 시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부드러웠던 말과 따뜻한 마음씨는 언제나 지친 그를 위로해줬다. 인위적인 사랑이 아니라 진정한 친절한 마음이었다. 그는 그의 마음아 아닌 능력만 개발시켜 왔지만 실제로 자신의 부드럽고 다정한 정신적인 부분을 다 발달시켜오지 못했던 것이다. 능력본위의 가치는 그동안 중요시되어 왔다. 그리고 그 가치의 기준 때문에 남성들은 일만 하는 사람으로만 취급되고 한 인간으로서의 고통을 이해받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는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그녀는 필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유한함을, 자신의 유한함을 받아들이기에 참으로 슬픈 일이고 그가 극복해야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인간이 필멸의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불완전한 개인으로서 우뚝 섰다. 그러나 그는 자기 스스로 그의 영혼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감싸하고 그 따뜻함을 자식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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