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화 시인의 “한낮”

불멸의 진리

by 박바로가



한낮/ 김용화


눈부신 유월의 하늘

대지의 중심 깊숙히

뿌릴 박고


환희의 절정에서

숨죽이는 나무들


푸른 열매 하나

탁....


우주 밖으로

떨어져 나간다



김용화님의 6월의 시에 관능과 사색이 묻어난다.

“대지의 중심에 뿌리를 박은 나무가 환희의 절정에서 숨을 죽인다”라는 몸의 언어로 표현된 관능적인 말 앞에서 우리는 나무가 6월이라는 계절과 맺고 있는 관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신록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나비들이 산들산들 거리며 애벌레를 까고 산새들이 바쁘게 새끼를 낳아 기르는 계절… 새가 울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고 물소리가 숨죽인다면 산속, 들판, 계곡, 논밭의 수많은 생명이 얼마나 치열하게 목숨을 얻고 빼앗기는지 모를 것이다.


어린 나무도 언 땅에 발을 굴러가며 겨우 뿌리를 붙이던 이른 봄을 지내면서, 자신의 뿌리 조금씩 길러내어 단단해지기 시작한다. 초봄과 달리, 아직 어린 나무이지만 이 작은 나무는 중력의 법칙에 충동적으로 강하게 끌려 본능적인 자신의 뿌리를 중심 삼아 흙속으로 세차게, 대차게 스며드는 초여름 6월을 맞이하게 된다.


하늘도 눈부시고 모든 생명도 사랑의 축복으로 가득하다. 원래 풍요는 관능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풍만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나무가 땅 아래로 내려 뻗은 뿌리만큼 위로 우뚝 솟아 자신의 왕성한 가지와 풍성한 잎을 드러내는 계절 6월이 오면 나무의 자태가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어쩌면 애벌레와 아기새들은 나무의 내력을 먹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초여름,

폭우가 몰아쳤는지, 바람이 얄궂었는지,

아니면 애꿎은 벌레가 갉아먹었는지

한여름이나 초가을까지 익어야 할 푸른 열매가 떨어져 버린다.


애석하게 떨어진 푸른 열매 하나…


어쩌면 나무가 겪어야 하는 숙명적 괴로움일지 운명적인 불안감일지 모르나


시인은 그 열매가 관성의 법칙을 벗어나,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며 우주 밖으로 떨어져 나간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우리는 작은 사유를 만난다. 열매가 푸르게 떨어져 나간 사연이 궁금해지고 왜 기본법칙을 어기고서까지 우주로 나갔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다가 우리는 일찍 떨어져 버린 열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중력을 벗어난 진리와 만나며 찰나의 슬픔이 지구의 유한성의 법칙을 훌쩍 뛰어넘어서는 것을 목도한다.


만약 이 작고 푸른 열매가 이 지구상에 떨어진다면 말라비틀어지고 색이 변하고 결국 썩어버릴 것을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설익은 열매가 무한의 공간인 우주 속으로 떨어져 그 아득하게 깊은 안으로 들어가게 됨으로써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물론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다른 결론이 나오겠지만 사유 속의 덜 익은 열매는 우리의 상상과 맞물려 다르게 변화한다. 우리는 이 상상 속에서, 갑자기 우주밖으로 떨어진 이 열매가 사실은 우주라는 무한의 세계이자 불멸의 세계로 초대받은 게 아닐까 하는 문학적인 소망을 감히 품어본다.


작고 덜 익은 열매가 떨어진 것은 그 상황과 정황을 짐작하면 애석하게 느껴지나 그 열매가 공간을 초월해 우주의 심연으로 떨어진 것은 참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자칫 슬픔으로 끝날 작은 이야기가 오히려 광활한 우주 속에 들어간다는 서술에서 우리는 그 여린 열매가 오히려 그곳에 영원히 남아 그 언저리를 맴돌며 그 생성과 소멸의 본질을 찾아가려고 끝도 없는 여행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남몰래 갖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화창한 봄날 6월 우뚝 솟은 나뭇잎과 함께 자라다가 갑자기 떨어진 덜 익은 열매는 어쩌면 우주를 닮은, 우리의 무한 사유 속에서 우리에게 삶의 유한성과 반복되는 생사 속에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의 진짜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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