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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Sep 15. 2022

가끔 한 번쯤 멍 때리는 하루도 괜찮습니다

에키네시아

추석도 지나고 추석 이틀 뒤 음력 8월 17일 남편 생일도 잘 보냈다. 추석은 조용히 보냈다. 조용히 보낼 수밖에 없었다. 추석 이틀 전에 큰며느리가 출산을 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있어 큰아들만 점심에 잠시 다녀갔다. 남편 생일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축하했었는데 올 생일은 많은 사람이 모이지 못했다. 작은 아들 부부와 쌍둥이 손주가 와서 촛불도 꺼주어 그나마 할아버지 생신이 쓸쓸하지 않았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요즈음 그런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가족은 추석 연휴에는 여행 가는 걸로 정했었다. 코로나 직전 2019년 추석 때 북경을 다녀온 후 코로나로 인해 여행 계획은 물거품이 된 지 벌써 3년째다. 내년에는 둥이도 데리고 휴양지로 여행 가기로 하고 올 추석 연휴를 잘 마무리하였다.


조용히 보낸 추석이었지만 평소에 잘 안 해 먹는 명절 음식도 만들어 먹으며 명절 위기를 조금 냈다. 사실 전은 잘 가는 반찬가게에 미리 주문했고 마른 고사리와 취나물은 시누이가 사서 갖다 준 것을 삶아서 볶았다. 지난 설날에 고사리를 너무 삶아서 볶으니 완전 물컹거려서 먹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신경 써서 삶았는데도 약간 덜 삶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먹을만했다. 다음에는 완벽하게 성공하리라. 별로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도 명절이 끝나고 나면 이상하게 쉬고 싶다.



오늘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출근을 안 하니 외출할 일도 자주 없어 오늘은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멍 때리기로 했다.


오늘 두끼 강원도 찰옥수수

오늘 두 끼는 모두 귀농한 동생이 보내준 옥수수로 해결하기로 정했다. 워낙 옥수수를 좋아하기에 하루쯤 옥수수로 때운다고 해도 너무 좋다. 삶아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강원도 옥수수를 꺼내 찜기에 쪘다. 아점으 두 개를 먹고 오후에 배고프면 두 개 정도를 먹으려고 한다. 오늘은 식사도 대충 집안 일도 하지 않고 그냥 하루 종일 멍 때리며 지내보려고 한다.


리클라이너 소파를 눕혀 다리를 쭉 뻗고 TV를 틀었다. 뉴스를 보다가 머리만 아파 적당한 드라마를 찾아보았다. 1시간 이상 걸리는 출근길을 오랫동안 다니다 보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 평소에는 9시부터 마스크팩을 얼굴에 얹어놓고 뉴스를 보다가 10시에 떼어 영양크림을 바르고 침대에 눞는다. 바로 잠들지 못해 대부분의 드라마를 하는 10시 30분경에 자기 때문에 저녁에 드라마를 거의 보지 못한다. 최근 우영우를 본 이후에 다른 드라마를 거의 보지 못했다. 제목을 보고 적당한 드라마를 1편부터  재생했다. '너를 닮은 사람'고현정이 주인공이었다. 성격상 모든 드라마를 중간부터 보는 건 내 생전에는 없기에 1편부터 보기 시작했다. 핸드폰도 멀리 던져놓고 머리 속도 모두 지워버리고 멍 때리는 하루를 시작했다.


얼마 만에 멍 때리는 하루인지 머리가 휴식을 찾으니 잠도 솔솔 왔다. 퇴직하고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안 해도 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밤잠도 많이 설쳤는데 오늘 제대로 멍 때리며 휴식을 취할 수 있어 구름 을 걷는 기분이다. 졸면서 보다 보니 벌써 6회를 고 있다. 


하루 종일 멍 때리고 나니 무겁던 머리도 가쁜해지고 아픈 허리도 왠지 덜 아픈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만 오늘만큼은 여유 가득이다. 먹은 게 없으니 설거지할 것도 없오늘 청소는 로봇청소기에게 기고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루를 보냈다.


가끔 한 번쯤 멍 때리는 하루도 괜찮은 것 같다. 멍 때리고 나니 다시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내일부터는 다시 글도 열심히 쓰고 미뤄두었던 사진도 정리하며 활기찬 날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자주 그러면 안 되겠지만 가끔 이렇게 모든 걸 내려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마의자에 몸을 맡기듯 쉬는 날도 있어야지. 오늘은 나에게 스스로 주는 특별한 휴가라고 생각하고 하루 종일 잘 쉬었다. 하지만 이제 자유인이라고 매일 이렇게 보내진 않을 거다.


퇴직은 Ending이 아니라 Anding임을 믿기에 새로운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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