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래 Sep 26. 2022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11년째 난을 키웁니다

퇴직 후 소일 거리가 되었다

세엽혜란 황용금 / 황금 소심
우리 집 발코니 난 화분


지난주부터 꽃봉오리가 수줍은 듯 살짝 맺혀서 우린 난꽃이 피기를 조심스럽게 기다렸다. 어느 해는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저절로 떨어진 적도 있어서 이번에는 난꽃이 성공하기를 손 모아 기다렸다. 난꽃이 피면 꼭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그건 난이 1년에 한 번 정도 어렵게 꽃이 피기 때문에 귀한 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서 난을 키우게 된 것은 2011년부터인 것 같다. 김영란법이 생긴 이후부터는 승진해도 난을 보내는 일이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승진이나 영전을 하면 서로 축하해주는 의미로 난 화분을 많이 보냈다. 2011년 9월 1일 자로 교감으로 승진했다. 승진하기 전에 나도 지인이나 선배님들이 승진할 때마다 난 화분을 보내 축하를 해주었었다. 그래서인지  친정 동생들뿐만 아니라 선후배, 친구들, 모셨던 교장, 교감 선생님들께서 많은 축하화분을 보내주셨다. 호접란을 비롯하여 동양란, 작은 나무 화분 등 50여 개가 넘게 배달되었다. 교무실이 화원이 되어 3주 정도는 화분 속에, 꽃 속에 묻혀 지냈다. 그러다가 화분은 교직원들에게 나누어 드렸다. 남은 난 화분 몇 개는 집에 가져오고 교무실에도 두고 키웠었다.


서울 교감은 3년 근무하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간다. 두 번째 학교로 전근 가는 것은 영전이라고 해서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신다고 축하난을 또 보내주셨다. 우리 집에도 난 화분이 늘어났다.

교장 승진 때는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라 화분을 보내 축하해주는 관행이 사라져서 축하 화분을 아예 받지 않았다. 그래도 이해관계가 없는 친구나 친지 몇 분이 직접 화분을 들고 축하해주러 와서 어쩔 수 없이 몇 개만 받았다.


교감, 교장과 교육청 전문직은 매년 3월 1일 자와 9월 1일 자로 인사이동을 한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축하 화분 보내는 관행이 없어져서 너무 깨끗하고 좋았다. 축하 화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축하 떡도 보내고 우르르 몰려 인사를 하러 다녔던 것도 사라졌다. 발령받은 후에 손님 대접하느라고 정신없이 보내는 일도 없어져 바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서 그 점도 좋았다. 참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 물론 난을 가꾸는 화훼 농가나 난을 판매하시는 분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에서 난을 키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화분이 많지 않았는데 매년 분갈이를 해주며 조금씩 늘려가고 살다 보니 화분이 생기기도 하였다. 짝꿍이 사진작가로 등단하고 매년 동료 사진작가님들과 전시회를 하면 또 난 화분이 생겼다. 함께 운동하시는 짝꿍 동네 친구분이 시의원으로 당선되어 받은 난을 나눠 주셔서 지금은 40개가 넘는다.


난 화분은 그야말로 자식 키우는 정성으로 키워야 했다. 처음에는 1주일에 한번 조심조심 화분을 옆 수도가 있는 발코니로 일일이 옮겨 물을 주고 물이 마르면 다시 제자리로 옮기는 일을 몇 년째 하였다. 지금은 새시 공사를 하면서 마루였던 발코니를 타일로 바꾸어 난을 옮기지 않고 물을 줄 수 있어서 좋다. 짝꿍은 늘 기발한 생각을 하여 나를 감동시킨다. 난 화분에 물을 줄 수 있는 두루마리 같은 긴 호수를 어디서 사 왔다. 수도에 연결하여 호수를 길게 잡아당겨 물을 주고 다시 말아 놓으면 발코니도 복잡하지 않아 너무 좋았다. 화분에 물 주는 일이 너무 쉬워졌다.


발코니에는 난 화분 말고도 군자란 화분 몇 개와 천냥금, 정화식물인 알로카시아 화분 몇 개, 호주 삼나무라고도 하는 아라우카리아, 해피트리, 키 큰 개운 등이 있어 손이 많이 간다. 목사님께서 매년 초에 심방을 오시는데 화분을 누가 관리하냐고 하셨다. 짝꿍이 본인이 난 화분을 관리한다고 해서 옆에서 가만히 있었다. 우리 집 화분은 80%는 내가 관리하고 짝꿍은 시든 잎 정도 다듬어 준다.


화초도 아이들처럼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아파한다. 시들고 누런 잎이 생기고 꽃이 피지 않는다. 우린 출근하기 전에 꼭 발코니에 나가서 아침 인사를  하고 혹시 아픈 아이가 없나 살핀다. 난뿐만 아니라 다른 화초들도 물도 잘 주고 햇빛도 쬐어 주어야 하지만 키워보니 통풍도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사람들도 시원한 바람을 좋아하듯 화초도 바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매년 2월 말에는 난 화분 분갈이를 해 준다. 1년 동안 많이 자란 뿌리를 잘라주고 새로운 난석도 섞어 준다. 마른 줄기와 뿌리도 잘라주고 촉이 많은 화분은 나누어 다른 화분에 옮겨 심는다. 그러면 봄부터 새로운 싹을 탄생시켜 화분이 더 풍성해진다. 이렇게 매년 반복하여 난을 가꾼 지 벌써 11년이 되었다. 지금은 거의 죽지 않고 잘 가꾸게 되어 우리 집을 방문하는 분들은 먼저 발코니 난 화분에 감탄한다. 어떻게 직장 다니면서 화분을 이렇게 많이 잘 키우시냐고 한다. 답은 '정성만 있으면 된다'이다. 자식 사랑하는 마음처럼 식물에도 사랑을 주고 비생물적 요소인 햇빛, 물, 바람(공기), 흙, 온도 등을 잘 조절해 주면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 가을 세엽혜란 꽃이 피어 너무 좋다. 황금 소심은 그래도 매년 번씩 잘 피는 꽃이지만 세엽혜란이 올해처럼 싱싱하게 핀 적은 드물기 때문에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생기길 기대해 다. 어쩌면 벌써 행운을 가져다준 것 같기도 하다.


퇴직하고 간이 많아 화분과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혼자 있을 때 친구도 되어 주고 심심하지 않도록 소일거리도 만들어 준다. 발코니 테이블에 앉아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카페도 되어 준다.


물은 맑은 날 오전에 물을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퇴직한 후에는 식물이 좋아하는 아침에 햇빛을 받으며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햇빛 좋은 날 오전에 물을 주고 있다.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난을 키우며 요즘 행복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이제 다른 아기들에게서도 꽃대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정성을 다한다.

이전 21화 오늘 새벽 퇴직연금이 처음 통장에 찍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