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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Oct 11. 2022

대화, 대놓고 화내는 것일까

갈등(葛 칡 갈, 藤 등나무 등)

제주 환상숲 곶자왈 공원 내 칡과 등나무 매듭


얼마 전에 퇴직을 축하해주려고 지인 세 분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모임 날에 내가 집 근처에서 오후 1시까지 일이 있어서 서울 나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 우리 집 근처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이 모임은 15년 전에 2학년 동학년을 함께 했던 선생님들인데 나보다 먼저 모두 명예퇴직을 하고 자연인이 된 선생님들이다. 한 명은 선배님이고 한 명은 교대 동기, 그리고 총무를 맡은 두 살 아래 후배이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리 집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하게 되어 식사 후에 별 약속 없으면 우리 집에 와서 차 한 잔 하고 가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리 집에 처음 오는 분들이라 차와 약간의 간식을 준비하고 부엌 쪽 몇 군데 눈에 띄는 곳을 정리하였다. 워낙 싱크대 위쪽에 주방 기구가 나오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크게 치울 것은 없었지만 아일랜드 위에 놓여있는 약봉지, 티슈 등을 깨끗하게 정리하였다. 주방과 연결된 뒤쪽 발코니에 있는 건조기 위가 너무 지저분해 보여 물건 몇 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점심은 우리 동네에서 조금 유명한 막국수 집에서 보쌈과 메밀부침, 그리고 막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그 식당은 후식을 주지 않는다. 흔한 커피 자판기도 없고 에어컨도 없는 식당이다. 예약도 받지 않지만 주변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점심시간에는 주차장이 붐빈다. 오히려 조금 늦은 시간에 만나니 주차하기도 좋고 한가해서 좋았다. 다행히 선생님들이 오후에 약속이 없다고 해서 우리 집에 와서 과일과 차로 후식을 대신했다. 만남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언제 만나도 가장 편한 모임이다. 퇴직을 축하한다고 예쁜 안시리움 화분을 총무인 막내가 들고 왔다. 퇴직하고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 그냥 와도 되는데 너무 고마웠다. 한 분은 서울 아파트는 딸에게 맡기고 시부모님이 사시던 시골집을 리모델링하여 남편분과 시골살이를 하신다. 그래서 모임 날짜도 그분이 서울 올라오시는 날 쯤으로 잡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간 가는 줄 몰랐다. 마침 퇴직 기념품이 몇 개 남아있어 드렸더니 좋아하셨다. 퇴직 기념품은 며느리 둘이서 선생님들이 방학에 여행을 많이 다니신다고 마련해 준 여행 파우치였는데 다행히 다음 주에 서유럽으로 여행 가시는 분이 있어 드리는 나도 너무 좋았다.


모임 선생님들이 가시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짝꿍이 퇴근했다. 축하 화분을 자랑하며 저녁 준비를 하는데 주방 뒤 발코니에서 큰 소리가 났다. 찾는 물건이 없다고 그런다. 그러며

손님 온다고 쓸데없이 치우고 그러는 것은 가증스러운 일이라며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평소대로 보여주어야지 치우고 난리법석이라며 대 놓고 화를 낸다.


대화가 대놓고 화내는 거라더니 꼭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어진 물건 갖다 달라고 좋게 말하면 내가 바로 갖다 줄텐데 나도 갑자기 화가 났다. 오늘 좋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현직에 있을 때 선생님과 학부모님 대상으로 <자녀(학생)와 소통하는 행복한 대화법-코칭 스킬>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 그때 주된 내용이 적극적 경청, 토머스 고든의 나 전달법 그리고 칭찬과 인정었다. 대화의 기본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나도 말이 좋게 나가지 않았다.


드라마를 시청하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을 하지. 저 사람은 화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네. 화내지 않아도 되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저럴 때는 이렇게 말해야 상대방이 속상하지 않을 텐데.'

하며 드라마 대사를 평가하곤 했었다.


나는 정말 화를 잘 안 내는 편이다. 학교에 근무하면서 함께 근무하는 직원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 집에서도 아들이나 며느리에게도 화를 안 낸다. 유일하게 화를 내는 상대가 짝꿍이다. 짝꿍은 집안 일도 잘 도와주고 아이들에게도 잘하는데 가끔 말 한마디 때문에 쌓아둔 점수를 한꺼번에 잃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먼저 화낸 적은 거의 없다. 짝꿍이 욱 하는 성격에 항상 먼저 화를 내기 때문에 대화가 안 될 때 같이 화를 내게 된다. 오늘도 그냥 찾는 물건 달라고 하면 바로 찾아 줄텐데 소리부터 지르니 나도 모르게 같이 화를 낸 거다. 하지만 짝꿍은 뒤끝은 없어 얼마 못 가서 사과하고 화해한다. 그건 다행이다.


드라마나 영화, 글에서 갈등이 없으면 재미없다. 갈등은 칡 갈 등나무 등 자가 만나 만들어졌다.

둘 다 나무를 감고 올라가며 생존하는데 등나무는 오른쪽으로만 감아 올라가는 성질이 있고 칡은 왼쪽으로만 감아 올라간다. 그래서 칡과 등나무는 꼬일 수밖에 없다. 꼬인 매듭을 풀려면 너무 어렵다. 인간사에서도 갈등이 생기면 해결하기 어렵다. 갈등은 대부분 큰일이 아닌 정말 사소한 말 한마디로 생길 수 있어서 대화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갈등으로 인해 보고 읽는 재미가 더해지지만 일상에서의 갈등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더 심할 때는 아예 인연을 끊는 일도 생긴다.


직장 동료 사이, 친구 사이나 부부 사이, 부모 자녀 사이에서 대화법을 익혀 갈등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나 전달법(I message)은 이미 많이 알려져서 검색만 하면 쉽게 배울 수 있다.


이런 일이 또 생기면 화내지 말고 짝꿍에게

"그렇게 갑자기 화를 내면 나도 많이 속상해요. 다음에는 화내지 말고 그냥 필요한 거 찾아달라고 하면 좋겠어요."

부드럽게 말하려고 한다.


아는 것이 많으면 무슨 소용 있어. 실행에 옮겨야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지. 남은 인생 알콩달콩 살아도 짧은 세월인데 아웅다웅 살 필요 없다는 것을 오늘 한 번 더 마음에 새겨본다.


대화는 대 놓고 화내는 것이 아닌 기분 좋게 주고받는 말임을 항상 기억하고 말로 인해 상처를 주고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서로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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