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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Dec 05. 2022

오늘 이태석 신부님이 나를 울린다

수단의 슈바이처 고 이태석 신부님의 영상을 보고


시간강사가 11월 중순에 끝난다고 해서 계약했었다. 선생님께서 병가를 들어가셔야 하는데 강사를 구하지 못해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아직 출근하기 어렵다고 병가를 한 달 연장하였다. 딱 이 정도 두 달만 하면 좋았는데 한 달을 더 다녀야 한다는 것이 많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가르치던 학생들을 두고 못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사명감이 투철한 선생님이었으니까. 강사 계약을 12월 말까지 하게 

되어 계속 출근 중이다

https://brunch.co.kr/@ce3179a175d043c/154


오늘 5학년 도덕 수업이 있었다. 인권 단원 마지막 차시로 인권을 위해 노력한 사람 소개로 '수단의 슈바이처 고 이태석 신부님' 영상을 보았다. 이전에도 '울지 마 톤즈' 영상을 보았지만 오늘은 영상을 보다가 울컥하였다. 목소리가 울먹울먹 말이 순간 안 나왔다. 몇몇 아이들도 감동을 받은 것 같다.


이태석 신부님은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열 살 때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바느질로 10남매를 키우셨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1년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의사를 포기하고 사제가 되었다. 수단에서 30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던 가톨릭 교회 살레지오의 사제 제임스 신부가 의사가 절실함을 느끼고 사를 찾던 중 의사 출신 사제 이태석 신부를 알게 되었다. 소개 자료로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 이야기를 신부님께 보냈다. 당연히 오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님은 아프리카로 날아가셨다. 먼저 케냐의 나이로비에 도착하였지만 번화한 곳에 실망하고 더 가난한 수단으로 가셨다. 당시 톤즈는 석기시대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오염된 물을 마시고 병에 걸려도 무슨 병인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죽어갔다.


병원 짓는 일을 돕는 학생들/신구 병원모습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며 함께 손잡고 사람들을 만났다. 초기 움막 진료소가 유일한 병원이었는데 톤즈에 의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100km 떨어진 곳에서도 며칠을 걸어서 찾아왔다. 그 마음을 알기에 야간진료를 한 번도 거부한 적이 없으시다. 병원이 필요했다. 주민들과 함께 직접 벽돌을 만들어 2년 만에 12개 병실이 있는 돈보스코 병원을 지었다. 하루에 300명 이상의 환자를 돌봐야 했다. 수단에는 그 당시 말라리아, 결핵, 한센병 환자가 가장 많았는데 늘 의약품이 부족하였다. 이런 병은 약만 쓰면 나을 수 있는 병이다. 특히 항생제가 가장 많이 필요한데 비싸서 많이 구입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센병 환자들은 발이 다 다르다. 한 사람이지만 오른발 왼발이 달랐다. 일일이 발을 그려 케냐에 가죽 샌들을 주문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신발을 만들어 신겼다. 맨발로 다녀 상처투성이던 발에 신발을 신겨 주었다. 너무나 감동이 되었다.


그러던 중 2008년 10월에 휴가를 얻어 귀국하여 순천향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하였다.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에 걸려 가장 낙담이 되는 것은

'내 삶의 마감이 아니라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다.'

라고 하시며 톤즈로 가시겠다는 것을 가족들이 설득해서 겨우 말렸다. 항암치료를 열여섯 번이나 받았지만 2010년 1월에 향년 48세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세상 떠나기 전 내려놓을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어머니'라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바느질로 10남매를 키우셨다. 의대를 보내주셨는데 한 번도 장학금을 받지 못해 고생하셨다. 의사의 길을 버리고 사제의 길을 가겠다고 을 때도, 사제가 되어 먼 이국 땅 아프리카로 떠나겠다고 했을 때에도 말없이 눈물로 허락하셨던 분이다. 그래서 암투병 사실도 알리지 못했다. 훌륭한 어머니가 이태석 신부님을 만드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은 투병 중에 유일한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집필하셨다. 학교 도서실에서 이 책을 빌려왔다. 책을 읽으며 이태석 신부님의 톤즈 사랑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학교를 다시 수리하여 학교를 만들어 하루 종일 할 일이 없어 빈둥빈둥 노는 젊은이들을 학교로 불러 모았다. 35인조 브리스 밴드를 만들어 대통령 환영 행사에 참석하고 멀어서 병원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매주 먼 곳의 숲 속 마을로 진료를 나갔다.


35인조 브리스밴드(책 속의 사진)

신부님은 노래도 잘 부르고 풍금도 잘 친다. 음악에 대한 사랑이 있으셨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레슨을 받을 수 없어 성당에 있는 풍금 연습으로 피아노를 대신했다. 그것이 톤즈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씨앗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톤즈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악에 대한 달란트를 주셨다고 하셨다. 걱정했던 것보다 악기를 너무 빨리 습득하여 놀랐다. 합주 연습 후 나흘 째 되는 날 첫 합주곡을 다 같이 연주해 냈다고 한다. 아이들은

"총과 칼들을 녹여 그것으로 클라리넷과 트럼펫을 만들면 좋겠다."

라고 말한다. 이것을 보며 신부님은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서 음악을 통해 활동하시는 주님의 흔적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하셨다.


아프리카 형제자매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모든 인간을 철저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하늘나라  수학'을 배우기도 하셨다.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면 우리가 가진 것이 십 분의 일로 줄어드는 속세의 수학과는 달리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었기에 그것이 '천'이나 '만'으로 부푼다는 하늘나라의 참된 수학, 끊임없는 나눔만이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행복 정석을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고 하셨다.


이태석 신부님에게서 낮은 곳을 향한 섬김을 배운다.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도와주심을 느낀다. 이번 추수감사절에 우리 교회 나눔 물품도 코로나 중이지만 다른 해보다 더 많이 쌓였다.


추수감사절 교회 나눔 물품

우리 교회는 추수감사절에 성도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나눔 물품을 기증한다. 추수감사절에 단상 아래에 쌓아놓았다가 예배가 끝나면 지역의 어려운 이웃에게 모두 나누어 드린다. 매년 12월에는 교회 카리스 카페에서 일일 찻집을 운영하여 얻은 수익금을 지역 학교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구청과 행복 복지센터의 도움을 받아 나눔과 섬김, 돌봄을 실천한다.


오늘은 따뜻한 고 이태석 신부님 영상으로 지구촌의 어려움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부터 나눔과 섬김, 돌봄을 실천하려고 좀 더 노력해야겠다. 우리 사회가 따뜻한 이웃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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