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둘째 손자는 많은 풀 중에서 유독 민들레를 좋아한다. 그다음으로 단풍나무를 좋아한다.
"연우야, 민들레가 왜 좋아?"
"민들레는 예뻐요."
라고 말한다. 길을 걷다가 민들레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할머니, 이거 뭐게요?"
"연우가 대답해봐."
"민들레예요."
그냥 보도블록 틈에 있는 꽃도 없는 납작한 민들레도 놓치지 않고 찾아낸다.
손자는 주말에 근린공원에 가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공원 인조 잔디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도 좋아하지만 공원에 가면 민들레와 단풍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공원에 가면 먼저 단풍나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간다. 단풍나무 가지를 하나 잘라주면 단풍잎이 몇 개 있는지 세어본다. 한 손에 단풍나무를 들고 앞서서 뛰어간다. 민들레가 있는 주차장 옆 햇빛이 잘 드는 풀밭 언덕에 가려는 거다.
풀밭에는 가을인데도 신기하게 민들레꽃이 피어있다. 들고 있던 단풍나무는 할머니에게 맡기고 노란 민들레를 하나 딴다. 그리고 다른 손에는 하얀 민들레 홀씨를 따서 후~불어 본다. 홀씨가 잘 날아가지 않으면 손을 흔들어 날리며 신나 한다. 눈처럼 흩어지는 민들레 홀씨는 내가 보아도 멋지다. 한 손에는 민들레를 다른 손에는 단풍나무를 우승컵처럼 들고 공원을 한 바퀴 돈다. 돌다가 민들레를 발견하면 앉아서 한참을 보다가 일어선다.
벤치에 앉아서 축구하는 아저씨들을 보다가 민들레가 시들면 다시 내 손을 잡아끌고 민들레 언덕으로 간다. 이제 양손에 민들레와 단풍나무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할머니, 가을에도 민들레가 왜 필까요?"
"왜 필까?"
무슨 대답을 할까 궁금해서 되물어보면
"해님이 따뜻하게 햇빛을 비춰주어서"
"딩동댕~"
손자랑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다. 질문을 어찌나 많이 하는지 할머니도 공부가 필요하다. 기억력이 좋아서 잘못된 지식을 알려주면 안 될 것 같다.
민들레는 영어로 'Dandelion'이라는 것도 손자에게 배웠다. 아마 아빠가 가르쳐준 모양이다.
공원에서 집에 돌아오면 핸드폰으로 만들레를 검색한다. 지난주까지는 음성으로 검색하더니 이번 주부터는 한글로 검색하였다. 연우는 세 돌이 지나면서부터 한글을 낱말로 읽더니 세 돌 반쯤에 한글을 거의 깨쳐 TV 자막 글씨를 읽었다. 읽기는 하는데 아직 글씨 쓰는 것은 안 한다.
"할머니, ㅁ 다음에 뭐예요?"
"응, ㅣ"
"다음에는요?"
"ㄴ, 다음엔 ㄷ"
"민들레 나왔어요."
검색한 다양한 민들레를 보며 신나 하며 나한테도 보여준다.
그러다 TV에서 유튜브를 검색한다. 핸드폰 검색할 때처럼 한글로 검색하는 것이 재미있나 보다. 민들레 철자를 또 물어보며 검색한다. 유튜브에서는 우효의 잔잔한 '민들레' 노래와 진미령의 '하얀 민들레' 노래가 검색되었다. 민들레 사진이 커버에 있다. 자막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한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다. 나도 오랜만에 하얀 민들레를 따라 불러본다. 손자는 정말 민들레를 좋아하는 것 같다.
민들레는 겨울만 제외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다 피는 것 같다. 그리고 보도블록 틈에서조차 피기 때문에 생존력이 강하다. 손자가 좋아하는 만들레를 오래 볼 수 있어서 나도 좋다. 손자가 행복하면 나는 더 행복하다. 이제 찬 바람이 불어 날씨가 춥다. 곧 겨울이 올 것 같다. 손자가 좋아하는 민들레꽃은 이제 봄까지 기다려야 볼 수 있을 거다.
둘째 손자는 자연에 관심이 많다. 하늘, 구름, 달, 해님뿐만 아니라 나무 등 식물에도 관심이 많다. 어느 날 밤에
"할머니, 달 떴어요."
달도 제일 먼저 발견하고 이침이면
"해님이 아직 자나 봐요."
하며 해님이 뜨기를 기다린다.
발코니 유리창으로 보이는 잣나무 뾰족한 잎이 조금씩 노란빛으로 물들어 떨어지고 있다. 손자는 잣나무가 소나무인 줄 안다. 솔방울 같은 작은 잣이 열렸다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할머니, 소나무도 단풍이 왜 들까요. 낙엽이 떨어지고 있어요."
"단풍이 왜 들까?"
"가을이라서"
언제 이렇게 커서 똑똑해졌는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다. 주말마다 오는 손자가 이제 민들레와 단풍나무 말고 겨울에는 무엇을 새로 좋아하게 될까 궁금하다. 흰 눈은 좋아할 것 같은데 설악산에 내린 첫눈이 이곳에는 언제 내릴까 기다려진다.
손자를 생각하며 발코니 잣나무를 본다. 오늘은 더 많은 잣나무 잎이 떨어져 바닥에 쌓였다. 어릴 적 외갓집 뒷산에서 소나무 낙엽인 소갈비를 긁어 와서 땔감으로 썼던 국민학교 시절 그때가 떠오른다. 그땐 나도 다섯 살 손자처럼 호기심이 많았겠지.
곧 가을이 떠날 것 같다. 주말에 올 손자와 새로 맞이할 겨울을 기다리며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