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광복절 아침 발코니에 태극기를 달다가 새집을 발견했다. 매실나무가 3층 높이까지 자라서 조금 잘라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세 개의 가지가 모아지는 곳에 새집이 있었다. 새집에는 어미새가 알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 옆 동산 쪽으로 날아갔다 오긴 했지만 둥지를 거의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새집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새집에 알이 몇 개가 있을까 궁금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날부터 발코니로 자꾸 시선이 갔다. 혹시라도 소리에 놀라 알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창문도 조심조심 열고 닫았다. 출근하기 전에 살짝 엿보고 퇴근하면 또 살폈다. 많은 나무 중에 우리 집 발코니 앞 나무에 집을 지었으니 우리 집 반가운 귀한 손님이라 생각했다. 우리 집에도 좋은 소식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아기새가 무사히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길 기도했다. 보름 정도 되었다. 어제는 조금 늦게 출근하는 날이라 살금살금 다가가 둥지를 보았는데 어미 새가 앉아있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았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려는데 엄마새가 날아갔다. 그런데 이 감동은 뭐지. 새집에서 아기새가 빨간 주둥이를 내밀며 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에 가슴이 떨렸다. 하나 둘 셋~ 삼둥이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자연과 생명의 위대함을 다시 느꼈다. 알이 너의 모든 세상이었을 터 어둠 속에서 이십여 일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렸을까. 온몸 던져 알껍질을 깨고 나왔으니 많이 아팠겠다. 무사히 알을 깨고 건강하게 태어나서 정말 고맙구나. 이제 무더위도 물러가고 시원한 가을바람 불어 살기 좋은 계절이 왔다. 아기새가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서 엄마 손 잡고 넓은 숲 속 세상으로 신나게 소풍 갔으면 좋겠다.
엄마새가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른다. 엄마새가 먹이를 물어오는 동안 아기새들은 따뜻한 가을 햇살을 즐기며 엄마를 기다렸다. 언젠가 둥지를 떠나 넓은 세상 찾아 떠나겠지만 그때까지 우리 집 반가운 귀한 손님이 되어 주길 바란다. 아기새가 무사히 태어나길 기도해주었으니 너도 우리 집에 멋진 왕자님 소식 전해 주렴. 아기새 소식처럼 우리 집에도 반가운 소식이 오길 매일매일 기다린다.
작은아들이 먼저 결혼해서 쌍둥이를 낳아 다섯 살이 되었다. 큰아들은 운동선수라 조금 늦게 서른다섯 살인 작년 12월 초에 결혼을 하였다.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으로 5,000명을 찍을 때여서 걱정이 많았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결혼식도 무사히 잘 치렀고 결혼식 후에도 별일이 없었다. 그때처럼 마음을 졸인 적이 있었나 싶다.
아기를 빨리 낳고 싶다는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주셨는지 허니문 베이비가 되었다. 태명을 찰떡이라 부르며 우리 가족은 찰떡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길 매일매일 기도했다. 임신 초기에 산모 요가에서 산모가 확진되어 걱정이 많았지만 검진 결과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고 해서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태어날 때까지 걱정은 되었다. 코로나 상황이라 외식도 거의 못하고 아파트 주변 공원을 걷는 정도로만 운동을 하며 지냈다. 우리도 혹시 모를 위험에 노출시킬까 봐 자주 가보지도 못했다. 그저 전화와 카톡으로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예정일이 가까운 요즘 아기새 소식을 전했더니 며느리도 많이 감동이 된다고 한다. 아기새 소식처럼 우리 집에도 좋은 소식이 오길 기다렸다.
9월 2일이 예정일이라 8월 말에 병원을 방문했는데 아직 아기가 나올 기미가 없다고 한다. 엄마 뱃속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나오기 싫은 모양이다. 예정일까지 진통이 없으며 9월 6일에 입원하여 촉진제를 맞고 출산하기로 하였다. 주말을 보내고 별 이상이 없어서 9월 6일 8시에 입원하였다. 아마 의사 선생님께서 산모에게 좀 걸어 보라고 했는지 수액을 맞으며 복도를 뛰는 듯 부지런히 걷는 큰 며느리의 영상을 보내왔다. 큰아들과 둘이서 병원 복도를 얼마나 걸었는지 발이 아프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들과 며느리가 너무 안쓰러웠다. 엄마, 아빠 되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거의 이틀을 병원에서 보내며 걱정이 많이 되었다.
산모와 아기가 모두 건강하게 순산하길 권사님들께 중보기도 부탁을 드리고 남편과 간절하게 기도를 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 더 답답하였다. 전날 저녁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보니 한밤중에 며느리가 유도분만을 하여도 안 되어 수술하였다는 카톡이 와 있었다. 아기가 9월 8일 새벽 0시 40분에 3.6킬로로 태어났다. 산모는 어떤지 아기는 건강한 지 너무 궁금하였지만 잘 것 같아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들이 일어났는지 아기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산모와 아기가 모두 건강하다고 해서 ‘감사합니다’가 저절로 나왔다. 요즘 아기들은 엄마 뱃속에서 조기 교육을 하고 나와 태어나자마자 똘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기는 예정일을 넘겨서 태어나서 그런지 다른 신생아보다 커 보였다. 영상을 보니 한 달은 키운 아기처럼 벌써 눈을 맞추는 것 같다.
“찰떡아, 장하다. 우리 가족으로 태어나주어 고맙다. 할머니는 너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릴게. 엄마 젖 잘 먹고 잘 자고 조리원에서도 잘 지내렴.”
찰떡이는 세 번째 손자이다. 아들 둘에 아들 손자 세 명이 되었다. 우리 집은 아들 부자가 되었다. 딸이 없어 조금 부럽긴 하지만 아들만 있어도 좋다. 내가 건강하고 남편도 건강하니 남은 인생을 함께 잘 보내면 된다. 퇴직 전에 숙제를 마치고 손자 셋까지 두었으니 나름 성공한 인생인 것 같다.
8월 말에 42년 6개월 동안 몸담고 있던 교직을 퇴직하고 자유인이 되었다. 찰떡이는 일부러 계획한 것처럼 할머니 퇴직에 맞추어 태어났다. 조리원에서 퇴원하면 자유인이 된 할머니가 돌봐줄 수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엄마와 편하게 지내다가 집으로 오너라. 오늘은 정말 감사한 날이다. 손자 소식으로 이번 추석은 더 풍성한 한가위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세 번째 손자 탄생으로 우리 가족에게 행복 하나가 더해졌다. 가을이 시작되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아기새와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깊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