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래 Dec 18. 2022

며느리가 빠진 늦은 김장


김장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하기로 했다.


한비야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서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 '초등 경영자 과정' 수업에 강사로 오셨다. 6개월 과정으로 김형석 교수님을 비롯해서 유명한 분들이 강사로 초대되었다. 그중 한 분이었던 한비야 세계시민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지만

'내가 할까 말까 망설일 때 하는 것 3가지, 안 하는 것 3가지.'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안 하는 것 3가지)

1. 살까 말까 망설일 때는 무조건 안 산다.

2. 여행 짐에 넣을까 말까 망설일 때는 무조건 뺀다.

3. 10시 이후에 먹을까 말까 망설일 때는 무조건 안 먹는다.


(하는 것 3가지)

1. 남을 도울까 말까 망설일 때는 무조건 돕는다.   

2. 공부를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무조건 한다.

3. 놀까 말까 망설일 때는 무조건 논다   


한비야 님 답다. 

나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하기로 했다.



작년에 김장을 하고 올해는 며느리 둘과 모두 모여서 김장을 하자고 했었다. 작년 김장은 시누이와 친정엄마와 함께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묵은지도 많이 남아 있고 시골에 사는 동생이 김장 김치 1통을 보내주어 안 할까 했다. 그런데 매년 하던 김장을 안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친정엄마도 김장 언제 하냐고 계속 물어보셔서 매년 주문하던 해남에 지난주에 절임배추 40킬로를 주문했다. 작년에는 아들네도 준다고 절임배추 네 박스, 즉 80킬로를 주문해서 김장을 담갔다. 아들들도 겨우 한두 통 정도씩만 가져다 먹어서 아직 묵은지가 많이 남아 있다. 작년의 반만 하기로 하였다.


올해는 할머니아버지와 담글 거니까 며느리 보고 오지 말라고 했다. 큰며느리는 아직 찰떡이가 어리고, 작은 며느리도 일을 하기 때문에 시간 맞추려면 힘들 것 같아 그냥 우리끼리 김장을 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꼭 다 같이 모여서 김장하자고 올해도 또 약속하였다. 금요일에 절임 배추가 도착하였다. 동네 마트에 주문한 무와 쪽파, 대파, 생강, 마늘 등도 도착했다. 새우젓이랑 액젓, 고춧가루는 미리 준비해 두었고 유튜브에서 본 육수 낼 자료도 다 사다 놓았다.


무 다발에 붙어 있던 무청을 작년에는 손질하기 귀찮아서 버렸다. 브런치 글벗님 글을 읽으며 시래기로 다양한 겨울 요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청을 삶아 시래기를 만들었다. 내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 친정엄마가 시래기 껍질을 벗겨서 쟁반에 가지런히 담아 놓으셨다. 나보다 더 잘하신다. 1회용씩 소분하여 지퍼백에 담아 우선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절임배추를 소쿠리에 받쳐서 물기를 빼고 무도 박박 문질러 깨끗하게 씻어 놓았다. 파김치를 여러 번 담가보아서 쪽파 한 단 다듬는 것은 이제 선수가 되었다. 육수를 끓이고 찹쌀풀도 쑤었다. 찹쌀가루도 매년 친정엄마가 가져다주었는데 올해는 떡 방앗간에 여쭈어 보니 있다고 해서 사 왔다. 올해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가 준비했다. 내일 무채를 썰어서 양념을 만들어 배추 속만 넣으면 될 것 같다.


내년 김장할 때 참고하기 위해 배추 40킬로 김장 레시피를 꼼꼼하게 적어두었다. 유튜브를 여러 편 보았지만 참고만 하고 친정엄마가 담그시던 우리 집 레시피대로 하였다. 김장은 집집마다 내려오는 방식이 있어 다르게 하면 김치가 입맛에 안 맞을 것 같아서다.


무채는 많이 만들어 두고 먹으려고 무 3단을 샀다. 무가 15개다. 채 썰고 나머지는 토막을 내어 김치 사이사이에 쪼가리 넣으려고 한다. 김장 김치 속에 들어 있는 잘 익은 무 쪼가리는 별미다. 쪽파 한 단과 절임배추와 함께 보내준 갓도 2~3센티 정도로 썰어두었다. 무채에 고춧가루를 버무려 색을 먼저 입히고 양념을 넣어 버무렸다.


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배추 속에 싸서 친정엄마 하나, 짝꿍 하나, 나도 하나 맛보았다. 친정엄마가 조금 싱거운 것 같다고 해서 액젓을 좀 더 넣어 간을 맞추었다.


우리 집은 싱겁게 먹는 편이라 짜지 않게 하려고 늘 신경 쓴다. 하지만 김장 김치는 너무 싱거우면 안 되어 간을 잘 보아야 한다. 배추 속 넣는 것은 친정엄마와 내가 하고 짝꿍은 배추 날라 오는 것과 김치통 담당이다. 친정엄마가 도와주셔서 혼자 하는 것보다 속도가 빠르다. 무채도 나보다 훨씬 잘 썰고 배추 속도 척척 넣으신다. 손이 정말 빠르시다. 그동안 김장을 많이 담가보셔서 인지는 조금 안 좋지만 몸이 기억하는 것 같다.


배추 40킬로는 김치통으로 섯 통 정도 나왔다. 양념 속도 많이 남아 아들네 줄 것도 통에 담아 두었다. 김치하는 날은 수육을 먹어야 하지만 오늘은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대신 다음 주에 작은 아들네 불러서 수육을 해서 같이 먹으려고 한다.


걱정했던 김장도 잘 마치고 이제 조용히 올해를 마무리하면 다. 친정엄마와 김장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조금 피곤하지만 김장을 했다는 뿌듯함으로 피곤함도 이길 수 있다.

저녁에 며느리가

"어머니, 김장하시느라고 많이 힘드시지요. 내년에는 꼭 같이해요."

한 마디에 피곤도 다 날아갔다.

맛있게 숙성되길 바라며 김치냉장고에 차곡차곡 넣고 보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나도 오늘 김치 부자가 되어 너무 행복하다.


이번 김장은 나 혼자서 주도적으로 다 준비하고 마무리까지 하였다. 이제 김장도 척척 할 수 있어 스스로 너무 자랑스럽다. 내년에는 며느리 둘 불러서 함께 김장을 해도 차근차근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나에게 칭찬 한 보따리를 안겨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4대가 모인 날 박스 케이터링으로 충분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