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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an 03. 2023

시간 강사 3개월 마지막 수업 날

마지막 수업 결과물


지난 10월부터 3개월 동안 초등학교에 시간강사로 출근했다. 5학년 과학과목과 5, 6학년 도덕 교과 교사다. 여러 번 거절하다가 나가게 되었는데 지나고 보니 퇴직하고 놀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12월 30일 마지막 수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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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하고 다시 교장이 되며 수업을 하지 않은 지 11년이다. 물론 가끔 학교폭력 예방교육이나 진로교육을 하였지만 매일 수업하지 않았기에 걱정이 되었다. 거기다가 5, 6학년 수업이어서 잘할 수 있을지 두렵기까지 했다.  

   

교재 연구를 철저히 하고 수업 시연도 혼자 해보며 준비하였다. 교과 수업이라 수업 시간도 딱 맞추어야 하기에 시간 배분도 아주 중요하였다. 하지만 같은 수업을 6학년은 다섯 반, 5학년은 네 반을 반복해서 하다 보니 담임보다 좋은 점도 있었다. 담임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생활지도까지 해야 하기에 쉴 틈이 없다. 하지만 교과 시간에는 여유가 있으니 그건 좋을 것 같다.

   

6학년은 22명 정도라 인원도 적었지만 수업 태도도 좋은 편이라 수업할 맛이 났다. 최고 학년답다. 그리고 도덕 수업도 재미있었다. 영상도 보고 발표도 하고 토론하며 매주 월요일에 수업을 하였다. 횟수로 따지면 많은 시간은 아니었다.     


5학년은 27, 8명으로 조금 많았다. 과학실에서 수업하다 보니 모둠으로 앉아 수업하게 되었다. 네 반인데 두 반은 수업 태도가 좋은 편이었지만 두 반은 산만한 학생들이 많아 줄다리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둠별로 경고자석도 붙이고 칭찬자석도 붙이는 등 매시간 노력하여 수업은 매일 무사히 끝냈다.     


12월 들어 수업 태도가 안 좋던 학생들이 조금씩 잡혀 세 반은 그런대로 수업할만했다. 마지막 한 반도 지난주부터 많이 좋아져서 듬뿍 칭찬해 주었다. 특히 이번 주는 갑자기 철든 것처럼 네 반 모두 수업 태도가 좋아져서 다행이었다.      


과학 시간에 용어의 정리 등 중요한 내용을 과학 노트에 쓰고 실험관찰책은 이틀에 한 번 정도 검사를 했다. 나름대로 글씨 쓰기를 조금 잡아주려는 의도였다. 정리를 잘한 학생에게는 검사하며 good이나 very good을 써주고 칭찬했더니 몇 명을 제외하곤 정리도 잘했다. 교사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철저하게 검사해주면 학생들은 저절로 긴장하고 잘하는 것 같다.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었다. 5학년 부장님께서 1교시 전에 내려오셔서 감사하다고 하신다. 담임 선생님께서 이야기해 주었는지 학생들도 과학실에 들어오면서부터 서운함과 감사 인사를 하였다. 괜히 코끝이 찡해온다.


내년에도 6학년 과학 선생님 하시면 안 되냐고 한다. 짧지만 손 편지를 써서 주는 학생들도 있다. 한 학생은 사인을 해달라고 해서 노트 한 면에 사인을 해 주었다. 꿈 꼭 이루어 훌륭한 사람 되라는 글과 함께.     


오늘 마지막 수업반은 가장 말 안 듣던 반이었다. 하지만 모둠 발표는 늘 가장 잘했던 반이고 과고 준비하는 학생도 있었다. 한 마디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과 너무 철없고 공부에 관심이 없어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정말 극과 극이었는데 이번 주는 모두 철이 든 듯 수업 태도가 좋았다.     


수업 끝나고 한 학생이 미리 써 온 손 편지를 주며 이름을 말한다. 물론 수업에 늘 열심히 참가했던 학생이라 이름을 기억한다. 몇 명이 편지지가 없다며 포스트잇에 편지를 써서 건넨다. 인사도 가장 많이 하고 갔다. 가장 힘든 반이었지만 정이 가장 많이 들었나 보다. 욕하면서 정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물론 욕은 안 했지만 늘 집중시키느라 힘들었다.   

  

편지글 중에서 짧지만 감동의 글 덕에 지금까지의 수고가 얼음 녹듯 스르르 녹았다. 굉장히 얌전한 남학생이었는데 짧은 편지에 고마움을 담아 주었다. 그리고 부반장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책임감이 있는 학생이었던 것 같았다.

    

과학 선생님께
짧은 시간 동안 재밌는 실험과 공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감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5학년 2반 부반장 OOO입니다. 선생님께서 비록 1년은 아니지만 한 학기 동안 시끄러운 저희 반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애들이 수업 시간에 떠들어 수업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한 학기 동안 감사했습니다.  


출처 : 다음포털

마지막 수업은 ‘지시약으로 협동화 그리기’ 과학 수업이었다. 동기 유발로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명화를 보여 주었다. 이 작품은 점묘화로 2년이 걸려 완성한 그림이다. 오늘 지시약으로 협동화 그리기도 스포이트로 홈통에 지시약과 용액으로 색깔을 만들어 그리는 협동화라 좋은 동기 유발 참고작품이 되었다.      


대부분 모둠이 재미있게 잘 완성했다. 다음 반 수업을 위해 정리도 잘해 주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니 이제 정말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이 눈 깜짝하는 사이에 지나갔다. 시간 강사를 하며 처음에 느꼈던 걱정, 두려움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이제 어느 학년도 자신 있다. 내가 언제까지 교단에 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뜻깊은 3개월이었다. 내 인생에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년에 혹 6학년 강사로 가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수업의 여운 때문에 다시 만나도 반가울 것 같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과 비교할 순 없지만 시간 강사 마지막 수업도 마음속에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2022년과 함께 잘 마무리하였다.  

   

새해에도 가슴 뛰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감사함으로 2022년을 보낼 수 있었음에 더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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