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강당에서 체육대회를 하였다. 1학년 네 반과 2학년 다섯 반이 함께 하였다. 1교시부터 3교시까지 100분 정도를 정말 즐겁게 놀았다. 진행은 위탁 레크리에이션 회사에서 진행자가 나와서 재미있게 진행하였다.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고 땀 흘리며 뛰었다. 질서도 잘 지키고 응원도 열심히 하였다.
설날 전에 학생들을 위한 좋은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 강당이 넓진 않았지만 진행자의 진행 솜씨가 좋아서 게임도 정리도 질서도 무리 없이 잘 되었다.게임 도구도 다 가지고 와서 진행하고 학생들을 들었다 놓았다를 어찌나 잘하는지 감탄스러웠다.
게임은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경쟁심을 부추기기도 하고 상대편이 잘했을 때 칭찬하는 배려도 알게 하며 체육대회는 일사천리로 끝났다. 마지막 이어달리기까지 마무리하고 점수판을 보니 3800 대 3800으로 청군과 백군이 비겼다. 사회자가 그렇게 만든 것은 교사는 다 알았지만 학생들은 우연히 비긴 걸로 아는 것 같았다.
옛날 국민학교 운동회가 생각난다.운동회는 주로 가을 추석 전에 하였다. 운동회를 위해 한 달 정도는 연습했던 것 같다. 뜨거운 운동장에서 연습하느라 얼굴도 탔다.특히 무용이나 마스게임 연습을 많이 하였다. 단체 게임 연습도 여러 번 하였다. 특히 포크댄스 연습할 때 남학생과 여학생이 손을 잡아야 하는데 잡기가 싫어서 소매를 잡거나 작은 나뭇가지 양쪽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운동회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은 꼭두각시 춤과 부채춤 그리고 저학년의 콩주머니 던지기, 고학년의 차전놀이, 줄다리기, 기마전 등이었다. 장애물 넘기와 손님 모시기도 하였다. 콩주머니 던지기로 박을 깨야하는데 잘 깨지지 않을 때는 정말 안타까웠다. 깨진 박에서 점심시간이란 글이 주르륵 내려오면 환호성과 함께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운동회 당일에는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동네잔치를 하였다. 김밥 이런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가 싸 오신 밥을 함께 나눠 먹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게임을 하였다.
운동회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청백 계주다. 나는 달리기를 잘해서 늘 청백 계주 선수로 뽑혔다. 청백계주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이어지기에 늘 엎치락뒤치락하였다. 청백 계주에서 한 명이 넘어지면 역전이 되어 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성이 울린다. 역전으로 이길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내가 교사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 4학년 담임을 하였다. 교대가 2년제여서 전공은 따로 없었다. 대신 요즘 동아리활동처럼 선택 과목이 있었다. 선택 과목은 3 희망까지 썼었는데 1, 2 희망은 안되고 3 희망으로 썼던 무용과목이 되었다. 아마 무용을 선택한 학생들이 많지 않아서 일 것 같았다.
대학에서 무용을 하였기에 운동회 할 때마다 나는 무용 선생님이 되어 마스게임, 부채춤, 꼭두각시 등을 지도하였다. 운동회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1학년에 입학하면 적응 기간이라고 해서 운동장에서 1주일 정도 무용을 하였다. 그래서 한 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두 번씩 하게 되었다.
학교마다 운동회를 매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1년은 운동회 그다음 해엔 예술제(학예 발표회)를 하는 학교가 늘어나서 운동회를 2년에 한 번하게 되었다. 선생님들은 팔방미인이다. 뭘 시켜도 잘하는 것 같다.
운동회 때마다 한 달 정도는 연습을 하는데 시끄럽다고 민원도 많이 들어왔다. 운동장에서 연습하려면 마이크를 사용해야 하고 음악도 틀어야 한다. 학교 주변에 사시는 분들은 고역이었을 것 같다. 교실마다 TV가 설치된 후로는 교실에서 동영상을 보고 연습하다가 학년 전체가 대형을 맞추어 볼 때만 운동장에서 연습하는데 그래도 민원은 늘 있었다. 물론 이해해 주시는 분들이 더 많았지만 신문고까지 올려서 민원을 제기하신 분도 계셨다.
2017년 교장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다. 마침 그해가 운동회를 하는 해였다. 운동회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협의를 했는데 위탁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연습도 안 하니 수업결손도 없고 교사는 물론 학생들도 좋다고 했다. 꼭 옛날 운동회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교사와 학생에게 좋다고 하니 그리하자고 했다. 그래도 만국기는 달고 준비체조는 춤으로 연습해서 하자고 했다.
운동회 전날 전 직원이 나와서 만국기를 달고 천막을 세웠다.
"오늘 운동회는 점수판이 없는 운동회니 질서를 잘 지켜 즐거운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하며 개회를 선언했다.
준비 체조는 젊은 남자 부장님 세 분이 가발을 쓰고 전교 어린이회 회장단과 재미있게 앞에 서서 신나는 춤으로 시작하였다. 언제 교실에서 연습했는지 학생들도 잘 따라 했다.
학생수가 많아 1,2,3학년은 오전에 운동회를 마치고 급식을 먹고 하교하였다. 오후에는
4,5,6학년이 11시 30분에 등교하여 급식을 먹고 오후 경기를 하였다. 중간에 학부모님 경기와 어르신경기도 있어서 참여한 모든 분들이 즐기는 운동회였다. 마지막은 역시 청백 계로 화려하게 마무리하였다.
요즈음엔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위탁업체를 불러 이벤트처럼 운동회를 한다. 위탁 운동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행자이고 흐름이 끊기지 않게 프로그램 순서대로 줄을 세워서 준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회가 끝나고 학부모님도 교사도 학생도 모두 만족도가 높았다. 그냥 연습하느라 스트레스받지 않고 수업 결손도 막을 수 있었다.
분명 장점이 많다. 한번 업체를 부르면 350만 원에서 450만 원 정도 든다. 의자를 가져와서 세팅을 해 주는 곳도 있다. 학교 예산이 들긴 하지만 하루를 신나게 보내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대가 바뀌면 운동회도 바뀌는 것이 맞다. 운동회라는 말보다는 요즘 체육대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운동회든 체육대회든 무슨 상관인가. 학생이 즐겁고 학부모님과 교사의 만족도가 높으면 되는 거지.
하지만 가끔 옛날 운동회가 그리운 건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체육관에서 즐겁게 진행된 소체육대회를 보며 오래전 운동회를 추억해 보았다. 그때가 오늘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