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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군기 반장

by 유미래
1월 25일 눈온 아침(발코니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별일 없으면 작은 아들이 쌍둥이 손자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일요일 저녁에 간다. 이번 주도 오는 날이라 거실에 매트를 깔아 놓고 플레인 요플레도 미리 주문해 두었다. 매트는 층간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다. 요플레는 점심으로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에 구워서 요플레랑 섞어서 먹인다. 일명 고구마 요플레다. 둥이가 잘 먹어서 자주 해준다.


둥이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오후 5시경에 아들이 전화를 했다.

"오늘 집에 못 갈 것 같아요."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순간 긴장하고 있는데

"둥이가 장모님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오늘 군기 좀 잡아야겠어요."


둥이는 평일에는 외할머니가 돌봐 주신다. 유치원에 다녀오면 오후 3~4시 정도 되는데 저녁에 아빠가 퇴근할 때인 6시 반 정도까지 돌봐 주신다. 엄마는 둥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늦게 출근한다. 대신 저녁에 조금 늦게 퇴근하기에 외할머니와 아들이 교대를 한다. 외할머니는 가까운 곳에 사신다.


둥이 외할머니는 무남독녀 딸 하나를 키우셨는데 아들 손자 하나도 아닌 쌍둥이를 돌보시느라고 많이 힘드실 것 같다. 나는 아들 둘을 키웠고 학교에서도 개구쟁이를 많이 보았기에 면역력이 어느 정도 있지만 외할머니는 많이 힘드실 거다. 그래서 늘 감사하다.


아마 장모님의 수고를 아는 아들이 죄송해서 이 기회에 둥이 군기를 잡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둥이에게 외할머니 말 안 들으면 금요일에 할머니네 못 간다고 가르치려고요."

둥이는 우리 집에 오는 걸 좋아하니 이 기회에 잘못한 것을 알게 하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라고 했다.

오늘 아빠가 군기를 어떻게 잡을지 궁금하다.


쌍둥이 손자는 곧 만 5세가 된다. 생일도 밸런타인데이인 2월 14일이다. 왠지 특별한 날에 태어난 것 같아 더 의미가 있다. 한참 말 안들을 때다. 거기다 자아가 강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한다. 이제 조곤조곤 일러주면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라 아빠가 잘 가르칠 거라고 믿는다.


짝꿍이 저녁 먹다가 둥이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며 전화를 걸어서 영상 통화를 해보았다. 첫째는 가만히 있는데 둘째 연우가 울며

"할머니 집에 가고 싶어요."

그런다.

"이제 동양동 할머니 말 잘 들으면 올 수 있어. 말 잘 들을 거지?"

그 소리에 더 서럽게 운다. 오늘 TV도 핸드폰도 중지라고 한다.


사실은 첫째 지우는 잘못이 없고 연우가 외할머니 말을 안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같이 혼내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정리까지 끝내고 TV시청하고 있은데 카톡 소리가 났다. 얼른 영상을 클릭하니 연우는

"할머니, 잘못했어요. 말 잘 들을게요."

지우는

"할머니, 잘못했어요. 연우가 말 안 들으면 내가 말려줄게요."

동영상을 외할머니께 보내드렸다며 내일 아침 먹고 둥이 데리고 온다고 한다.


둥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빠이다. 우리 집에 오면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하는데 아빠가 거실에 있으면

"아빠, 방에 들어가세요."

라고 말하며 아빠를 가라고 한다.


집에 무서운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 특히 아들에게는 더 그런 것 같다. 우리 집도 아들 둘 키울 때 엄마는 천사엄마, 아빠는 무서운 호랑이었다. 물론 아빠가 평소에는 잘 놀아주지만 화나면 무서운 사람이 되어 군기를 잡았다. 둥이 아빠도 아이들과 정말 잘 놀아 준다. 놀이터도 키즈카페도 잘 데려가고 숨바꼭질도 하며 늘 재미있게 해 준다. 그래도 집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아빠다.

작은 아들도 둥이 어릴 때는 둥이엄마가 군기를 잡고 본인은 허허하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안되어 본인이 군기 반장이 되기로 했단다.


내일 둥이가 군기가 잡혀서 올지 궁금하다. 그런데 둥이가 오늘따라 왜 이리 보고 싶을까. 귀여운 녀석들 오늘 밤 잘 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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