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작은 아들 이야기를 글로 쓰고 나니 공평하게 큰 아들 이야기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큰 아들 에피소드를 생각하다가 바로 이거야 하고 무릎을 딱 치며 글 쓰기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큰 아들의 일탈을 고발하려고 합니다. 착하고 소심했던 큰아들의 일탈이라고 하니 무슨 일인가 궁금하시지요. 큰아들은 지금 30대 중반으로 한 아이 찰떡이의 아버지입니다. 착실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바야흐로 큰 아들 중 1 때 일이다.
큰 아들은 초등학교 때 그림을 잘 그렸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두세 달 미술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특별하게 미술공부를 하지 않았다. 초등학고 6년 동안 매년 실시한 과학상상화 그리기 대회에서 꼭 상을 받았다. 지금은 초등학교에서 과학의 달 행사가 축소되어 과학상상화 그리기 대회, 과학 독후감 쓰기 등의 행사는 거의 안 한다. 그 이유는 교육청 행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과학 놀이를 한다거나 과학 부스 활동, 물로켓 발사 등의 행사만 학교별로 실시한다.
큰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민속박물관 주관 문화재 그리기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때는 미술학원을 다니지 않을 때였는데 미술학원 다니는 친구 엄마가 함께 참가하자고 해서 나가기로 하였다. 아들 친구는 학원에서 박물관에 미리 가서 그리기 연습도 하였다고 했다.
큰 아들은 그냥 대회 날 친구 따라서 그리기 대회에 참가하였다. 도자기 백자를 그렸다고 한다. 대회 끝나고 잊고 있었는데 학교로 연락이 왔다. 5학년 최우수 상을 받았다. 아빠와 시상식에 참석하여 상장과 상품, 전시하였던 아들 작품을 받아왔다. 작품을 보니 백자의 특징이 잘 나타나게 담백하게 그린 그림이었다. 너무 자랑스러웠다.대회를 소개해 준 친구는 입상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리기 대회에서 상 받은 것을 계기로 중학교에 들어가며 예고에 가기 위해 입시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면 목동에 있는 K입시 미술학원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내가 퇴근하며 데리러 갔다. 화실엔 한 달에 한 번 학원비를 내러 갈 때마다 원장님과 상담을 하였다.
겨울 방학이었다. 아이들이 스키장에 가고 싶어 했다. 예전에 초등학생 때도 문래동 YMCA스키캠프를 다녔기에 이번에도 스키 캠프를 예약
하였다. 스키 캠프는 3일 동안 진행되는데 숙박은 하지 않고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에 오는 프로그램이다.
스키캠프 가는 날 눈이 많이 왔다. 스키 타기에 좋은 날이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며 준비하라고 했다. 아뿔싸.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큰 아들이 방에서 나오다가 문턱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엄지발톱을 다쳐서 피가 났다. 그 일로 스키캠프는 못 갔다.
집에서 그냥 쉬라고 했다. 그런데 큰 아들이 미술학원에 간다고 했다. 너무 기특했다. 화실에 가려면 버스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야 하는데 아픈 발가락으로 신발 신기도 힘들 텐데 굳이 가겠단다. 열심히 하는구나 생각하니 철이 들었나 싶었다. 그날 눈길을 뚫고 목동까지 잘 다녀왔다. 딱 미술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귀가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학원비 낼 때가 되어서 미술학원을 방문했다. 원장님께 아들이 잘하고 있는지 여쭈어 보았다. 원장님께서
"석이가 이번 달에 세 번 빠졌어요. 어머니도 아시지요?"
결석한 날을 보니 바로 스키캠프 가려던 날이었다. 분명 집에서는 아픈 발로 미술학원을 갔는데 참 이상했다.
미술학원 수업 마친 아들을 데려오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엄마 죄송해요. 그날 원장님께 미술학원 못 간다고 미리 말씀드려서 PC방에 갔었어요."
이 배신감을 어떡하나. 철들었다고 기특하다고 생각했는데 미술학원을 빼먹고 PC방을 가다니 어떻게 혼내야 할까 순간 머리가 아팠다.
"엄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신 안 그럴게요. 그리고 아빠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아들은 아빠를 무서워한다. 아들 둘 키우다 보니 집에 무서운 사람이 있어야 해서 아빠가 그 역할을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잘못을 시인하고 이제 안 그런다고 하니 단단히 약속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다. 물론 아빠한테도 동생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마 미술학원 간다고 하고 그전에도 PC방에 몇 번 더 갔던 것 같다. 집에서 게임을 많이 하지 못하게 해서 그런 것 같았다. 큰 아들의 일탈은 이렇게 끝났다.
큰 아들은 중2 여름방학부터 예고 입시를 위해 홍대입구 입시 미술학원으로 옮겼다. 중 3 때는 오전 수업만 하고 화실에 가서 늦게까지 그림을 그렸다. 집에 오면 밤 10시경이 되었다.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예고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았는데 떨어지고 말았다. 여학생들이 많이 합격하고 남학생은 신입생 10% 정도만 합격했다. 큰 아들은 시험운이 없었다. 대회 날도 시험 날도 배가 아프다고 했고 컨디션이 안 좋았다. 긴장했기 때문인 것 같다.
힘들게 준비한 예고에 떨어지고 일반 고등학교에 갔다. 고등학교에 가서 다시 미술을 시키려고 했는데 입시 준비하느라 너무 힘들었는지 1학년 때는 쉬고 싶다고 하더니 미대도 안 가겠다고 했다. 공부도 중간 정도라 대입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큰 아들은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수시로 골프지도학과에 가게 되어 지금은 프로골퍼로 활동하고 있다. 남편은 가끔 큰아들을 돈벌레라고 한다. 큰 아들 골프 도전기는 기회가 되면 다시 글로 쓰려고 한다.
아들 PC방 사건은 입 무거운 엄마와 비밀로 하다가 장가가기 전에 고발하였다. 가족들과 웃음으로 마무리 지었다. 아들 키우다 보면 알고도 모른척하고 모르고 지나가는 일도 많을 것 같다. 그래도 큰 사건 없이 잘 자라 주어 고맙다. 다른 사람하고 싸워서 돈 물어준 일도 없었고 학교폭력에 연루되지도 않았다. 감사한 일이다. 그때 비밀로 해 준 일이 잘한 일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들 성격상 엄마와의 약속은 꼭 지켰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