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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낯가리는 손자

by 유미래


설날 전날에 큰아들이 찰떡이를 데리고 왔다. 찰떡이는 태명으로 둥이 사촌 동생, 우리 집 세 번째 손자다. 계획대로 하자면 12월 31일에 와서 양력설을 함께 보내야 했다. 12월 말에 가족 중 코로나 확진이 있어서 면역력이 약한 찰떡이에게 혹시 전염이라도 되면 안 될 것 같아 오지 말라고 했다.


아들이 오면 둥이가 자는 방에서 자야 해서 며칠 전에 이불도 빨고 정리를 조금 해두었다. 찰떡이가 온다고 하니 너무 반가웠다.


아기를 데리고 움직이려면 정말 짐이 많다. 분유에다 옷이며 기저귀에 장난감까지 한 짐이다. 아들이 아예 캐리어를 끌고 왔다. 그래도 우리 집에 우유병 소독고도 있고 아기 이불도 있어서 그것은 다행이다.


찰떡이는 이제 4개월 반 정도 되었다. 100일쯤에 왔다 갔으니 한 달 조금 넘었다. 거의 매일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았지만 직접 만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다려졌다.


지난달에 왔을 때는 내가 안아주면 울지 않고 잘 있었다. 계속 안고 있으니 내리고 자기 안아달라고 둥이가 샘을 내기도 했었다. 요즘 낯을 가린다고 해서 정말 그럴까 궁금했다.


찰떡이가 도착하였다. 머리를 빡빡 깎였는데도 너무 잘 생겼다. 할머니는 팔불출이다. 미용실에서 머리 깎는 동영상을 보았는데 아기가 하나도 안 울고 잘 앉아 있어서

"고놈, 참 신통하네."

그랬다.


오자마자 할아버지가 안아주었더니 가만히 있었다. 그리 심하게 낯을 가리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저녁을 얼른 차려 식사하느라 잠시 둥이가 쓰던 식탁의자를 눕혀서 누였다. 한참 잘 누워있더니 지루한 지 울기 시작했다.


우는 목소리도 어찌나 큰 지 장군감이다. 며느리가 일어나 안아주니 금방 그쳤다. 뚝딱 밥을 먹고 며느리 밥 먹으라고 내가 받아서 안아주었다. 잘 있는 듯하더니 얼굴을 보더니 입을 삐쭉거린다.

"찰떡아, 엄마 밥 먹을 동안만 참아주."


갑자기 너무 서럽게 울어서 당황스러웠다. 낯 가리는 게 맞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안으면 안 울고 내가 안으면 운다. 내가 아기를 편하게 안아주지 못해서 그런다고 짝꿍이 놀린다.


사실 난 아기를 잘 안아주지도 업어주지도 못한다. 우리 아이들은 친정엄마가 키워주었다. 둥이 안아줄 때는 아기 띠로 안아주었는데 둥이는 별로 낯을 가린 기억이 없다. 하기야 주말마다 매일 보았으니 낯을 안 가리는 게 맞다.


거실에 이불을 깔고 찰떡이를 누였다.

"하나 둘 셋!"

어느새 뒤집기를 해서 엎드린다. 우유를 잘 먹어서 힘이 센 것 같다. 몸무게도 제 또래 아기 들 중 상위 1%라고 한다. 엄마 아빠가 운동을 해서 그런지 찰떡이도 발육이 빠른 것 같다. 크면 엄마 아빠처럼 골프선수로 키운다고 기대를 하고 있다. 언제 크려나.


우리 집에 와서 낮잠을 자야 하는데 30분밖에 자지 않았다. 밤에도 안 자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 잘 잤다고 한다.


아기가 있으면 아기 위주로 돌아간다. 거실에 누여놓고 딸랑이를 흔들어주고 노래를 들려주며 데리고 놀았다. 그래도 잘 놀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내가 안아주면 울어서 속상했다. 내가 안아주면 불편한 게 맞는 것 같다.


큰 아들은 점심 먹고 돌아갔다. 김치도 한통 싸주고 초란 달걀 장조림도 싸주었다. 그리고 선물세트랑 꿀도 한병 싸 주었다. 부모는 늘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한다.


자주 못 오기에 온 김에 이것저것 챙겨서 보내고 나니 그래도 마음이 좋았다. 집에 도착하여 찰떡이는 잘 놀고 잘 잤다고 했다.

"찰떡아, 다음에 오면 낯 가리지 않겠지?"


며느리가 혼자서 키우느라고 힘들 텐데 늘 목소리도 밝고 표정도 밝아 너무 고맙다. 설날에는 친정에 갔다가 오후에 올라왔는데 올 설날엔 친정에도 못 갔다. 친정이 멀고 날씨도 추워서 아기 데리고 가기엔 무리가 있어서 부모님께서 오지 말라고 했단다. 찰떡이 조금 더 자라고 날씨 좋아지면 다녀오라고 했다.


이번 설은 찰떡이와 함께 즐겁게 보냈다. 다음에 만났을 땐 또 어떤 재주를 부릴지 기대된다. 찰떡이가 잘 먹고 잘 자며 무럭무럭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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