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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09. 2023

네가 파꽃이니

파꽃

요즘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세 정거장이라 20분 정도 걸린다. 아파트 단지 내에도 초등학교가 있고 건너편에도 초등학교가 있다. 단지 내 학교는 혹시라도 방과 후에 아파트 단지에서 학생이나 학부모님을 만날 수 있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학구 내 학교에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근무하는 학교가 지하철역과 가까워서 가끔 모임 때문에 서울 나갈 때 바로 서울행 열차를 탈 수 있어서 좋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학교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밭이 보인다. 철길 건너편에는 아파트와 빌라 단지인데 그 사이로 철길을 따라 길게 밭이 이어져 있다. 작은 배 과수원도 있다. 밭을 개발하여 아파트를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만 보면 여긴 시골 같다. 밭에는 여러 가지 채소와 곡식을 심어 놓았다. 줄 맞추어 심어진 고추와 고구마도 있고, 밭 가장자리에 옥수수도 보인다. 고구마밭 옆에는 호박이 길게 뉘어있는데 노란 호박꽃이 예쁘다. 오늘 아침에는 캐 놓은 마늘이 밭에 누워있는 것도 보인다. 아마 햇볕에 말려서 거두어 가려나 보다. 작은 밭에 다양한 식물을 심어 놓아서 보는 재미가 있다.     


참 신기한 것은 출근할 때는 밭이 학교 방향인 왼쪽에 있어서 늘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그런데 퇴근할 때는 밭이 그곳에 있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그냥 지나친다. 아마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지하철역만 바라보고 역을 향해 쏜살같이 걸어가느라 오른쪽에 있는 밭은 보이지 않나 보다. 눈이 두 개지만 늘 양쪽을 다 보는 건 아니고 내가 보고 싶은 만 보는 것 같다.     


입구 모퉁이에 있는 밭에는 처음에는 쪽파와 대파가 심어져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쪽파가 없어졌다. 쪽파가 뽑힌 자리에 다른 식물이 심어졌는데 자라기 전까지 몰랐다. 무엇을 심었을지 출근할 때마다 살펴보았다. 땅에서 조금씩 매일 자라 잎이 제법 커지면서 알게 되었다. 땅콩이었다. 도시에서 땅콩을 보다니 참 신기하다.     


옆에 있는 대파는 꽃이 피었는데 꽃봉오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꽃이 핀 대파는 상품성이 없을 텐데 뽑지 않고 몇 달 동안 그대로 있는 게 궁금했다. 주인이 있으면 여쭈어보고 싶은데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농사짓는 분은 낮에는 더우니까 아침 일찍부터 일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출근하는 8시경에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대파 씨앗을 받으려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대파꽃이 이렇게 많이 피어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 대파 한 송이에 씨앗이 100개도 넘게 달려 있을 것 같다. 동그란 머리가 무거워 보이는데 쓰러지지 않고 잘도 버틴다. 그 모습을 보며     

"네가 파꽃이니?"

하고 물어봐 주고 싶었다. 그러면     

"맞아, 내가 파꽃이야."

하고 으스대듯 대답할 것 같다.     

3월에 출근할 때부터 본 것 같은데 몇 달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파의 운명이 지금도 궁금하다.   

  

교사로 근무할 때 3학년 학생들을 인솔하여 현장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그 당시 밤 줍기 체험도 있었는데 우리 학년은 땅콩 따기 체험학습을 선택하였다. 현장 체험학습 가기 전에 교사가 먼저 의무적으로 답사를 다녀오게 되어 있다. 답사 가서 위험한 곳은 없는지, 식사할 장소는 있는지, 이동은 괜찮은 지 등 체험학습 장소를 살펴본다. 장소가 굉장히 넓었다.     


현장 체험학습 당일 늘어진 버스를 보고 놀랐다. 체험학습 철이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학교에서 오다니 걱정도 되었다. 인기 있는 체험학습장이라 몰린 것 같았다. 숲 속에서 난타를 배우고, 냇가에서 배를 타고, 전래 놀이를 하고, 드디어 땅콩밭으로 갔다. 밭이 정말 컸다. 사실 나도 땅콩을 캐본 적이 없어서 기대가 되었다.


아이들은 땅콩 한 덩이씩 뿌리째 뽑아서 뿌리에 달린 땅콩을 따서 봉지에 담았다. 땅콩이 그렇게 뿌리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땅콩이 생각보다 커서 이들 힘으로 뽑히지 않아서 도와주시는 분이 뽑아주셨다. 내 힘으로도 힘들었다. 나도, 아이들도 그날 처음으로 땅콩을 캐서 너무 신났다. 직접 땅콩을 캐 본 추억은 이미 사라졌는데 땅콩밭을 보니 그때가 생각났다. 세월이 빨라 벌써 20년이 되었다. 


출근길에 만난 땅콩밭에 자꾸 관심이 간다. 아직 작지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면 뽑기 힘들 정도로 영글어 거두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겠지. 오늘 아침도 땅콩밭에 머물러 잠시 들려다 보았다. 땅콩이 여름 햇살을 받아 주렁주렁 열리길 기원해 본다.


우리 인생에서 99%는 다른 사람의 수고로 살아간다는 말에 공감하며 오늘도 힘들게 일할 그 누구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땅콩밭 / 고구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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