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라면 오늘 울릉도에 있어야 했다. 6월 중순에 울릉도 독도 여행을 예약했다. 나는 2010년 6월 초에 울릉도 독도를 2박 3일 다녀왔지만, 남편이 꼭 가고 싶다고 했다. 독도에 입도했을 때 가슴 뭉클했던 기억은 잊지 못할 거다. 울릉도 독도는 두 번 가도 좋을 것 같아 예약하고 여행 갈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7월 들어서면서 날씨가 심상찮았다. 너무 더웠다.
작년에도 8월 초에 거제, 통영, 진주로 휴가 가서 1년 동안 흘릴 땀을 며칠 동안 다 흘렸다. 8월에는 휴가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다. 여름이 되면 남들 다 가는 휴가를 반드시 다녀와야만 할 것 같다. 남편도 직장에 나가고 있고 나도 올해 학교에 나가고 있어 휴가 기간이 아니면 며칠 시간 내어 여행 가는 것이 어렵다.
생각을 고쳐 먹었다. 올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올해 꼭 다녀와야 하는 곳도 아닌데 가장 더운 8월에 가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일도 안 할 예정이라 봄에 날씨 좋을 때 다녀오자고 했다. 남편은 더위를 정말 많이 탄다. 몸 자체가 난로다. 겨울에도 춥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조금만 걸어도 땀을 줄줄 흘린다. 손수건으로 모자라서 작은 수건을 가지고 다닌다.
생각을 고쳐 먹으니 마음이 편했다. 바로 여행사에 전화해서 해약하였다. 다행히 위약금도 없었다.지금 생각하면 해약하기 잘했다. 태풍 카눈이 이번 주에 북상한단다. 울릉도 대신 강릉에 가서 1주일 정도 지내다 오기로 했다. 남동생에게 8월 7일부터 1주일 동안 강릉에 갈 거라고 말해 두었다. 혹시 시간 되면 놀러 오라고 했다.
어제 주일 예배를 마치고 마트에 들러서 햇반이랑 라면, 도시락 김 등을 사 왔다. 지난주에 누룽지도 만들어 두었다. 강릉집에 동생이 가져다 둔 김치는 있다고 해서 다른 것은 강릉 가서 필요할 때 사면 된다. 강릉 중앙 시장에 가면 싱싱한 회도 떠올 수 있고 문어도 그 자리에서 바로 삶아주니 먹을 것은 걱정이 없다.맛집을 검색하여 다녀와도 된다. 교동 짬뽕도 먹고, 감자 옹심이도 먹으려고 한다. 강릉 막국수, 초당 두부 등 먹고 싶은 것도 많다.
이제 가방만 들고 출발하면 된다. 요즈음 뉴스에서 강릉이 연일 36도, 37도라고 한다. 그래도 가려고 했다. 승용차를 가지고 갈 거니까 더우면 경포 해수욕장에 가고 안목 커피거리 카페라도 가자고 했다. 아뿔싸. 태풍이 동해안 쪽으로 올라온다고 한다. 수요일부터 전국이 태풍 영향권에 들어 비가 온단다. 태풍은 아니지. 모처럼 갔는데 태풍에 발 묶여 집에만 있을 순 없잖아.
고민이 되었다. 늦도록 남편과 정상 회담을 하였다.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회담 결과는 가지 않기로 했다. 친정엄마가 계시면 집에만 있다가 와도 되는데 둘이 우두커니 집에서 TV만 보다가 오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태풍을 뚫고 돌아다니기엔 우린 나이가 많다. 결정하고 나니 조금 서운했지만, 마음은 편하다. 태풍 때문에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도 철수한다고 하는데 휴가는 무슨 휴가. 잘했어.
결국 올여름에는 계획했던 울릉도도, 강릉도 가지 못하고 집콕이다. 영화도 보고 백화점에도 다녀오며 여유 있게 지내려고 하다. 오후에 마트에 다녀왔다. 휴가도 못 가니 맛있는 것이라도 요리해 먹자고 했다. 주문한 뼈 없는 갈비탕이 있어서 거기에 전복과 닭을 넣어 건강 갈비탕을 끓이려고 한다. 전복은 가장 큰 걸로 6개를 사고 닭도 한 마리 샀다. 집에 있는 말린 인삼과 마늘까지 넣으니 훌륭한 건강 갈비탕이 되었다.
갈비탕인데 주객이 전도다. 갈비는 몇 개 안 들어 있고 전복과 닭고기가 주인공이다. 전복 3개와 닭 반 마리씩 나누어 먹었다. 전복이 크다 보니 세 개를 먹기도 버거웠다. 인삼을 넣었더니 잡 냄새도 없어져서 맛있었다. 오늘 저녁에 1kg은 쪘을 것 같다. 그래 휴가인데 그 정도는 쪄야지.
휴가는 못 갔지만 1주일 동안 알차게 보내야겠다. 이제 슬슬 계획을 세워 보려고 한다. 만약 둘 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태풍을 뚫고라도 휴가를 갔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둘 다 여행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남편도 젊었을 때는 전국을 누볐다. 사진작가라서 매주 출사를 나갔다. 나도 방학마다 해외여행을 다녔고 공적으로든 사적이든 우리나라 여행도 많이 다녔다.
이젠 몸이 힘든 것은 꺼려진다. 여행도 편하게 다니고 싶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마음이 그렇다. 올해만 날이 아니니 좋은 계절에 여행 다닐 수 있는 내년을 기약해야겠다. 브런치 작가님 여행 글에서 읽은 좋은 장소도 메모해 두었다. 내년에는 여름휴가가 아닌 좋은 계절에 여행 다닐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건강만 허락하면 여행은 언제나 갈 수 있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건강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