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들이 금요일 저녁에 회사에서 팀 회식이 있어서 쌍둥이 손자를 데리러 갔다. 다른 날은 금요일 저녁에 작은아들이 데리고 온다. 쌍둥이 손자가 6개월 되었을 때부터 돌봐주었으니 벌써 5년이 되어 간다. 주중에는 외할머니와 며느리가 돌본다. 며느리가 주말에 일하는 직업이라 주말에는 아들 혼자서 돌보기에 힘들 것 같아서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함께 돌본다.
작은아들네는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남편 퇴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출발하였다. 남편은 요즈음 주로 지하철로 출근하여 아들네 집 입구에서 만났다. 멀리서 보니 손에 검정 봉지를 들고 있었다. 노상에서 할머니가 파는 호박고구마를 샀다고 한다. 주말 점심은 호박고구마를 구워서 요플레에 섞어서 먹인다. 일명 고구마 요플레다. 아침에 밥을 먹기에 점심 한 끼는 고구마 요플레로 충분하다. 이번 주말에도 먹여야 하는데 고구마가 떨어졌다. 역시 손자 사랑은 할아버지가 최고다.
작은아들이 회식이 늦게 끝날 것 같다며 집에서 자고 내일 데리러 온다고 했다.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9시경에 자러 들어갔다. 책 읽고 자자며 자동차 시리즈 미니 북을 10권쯤 꺼내온다. 일찍 자기 싫은 모양이다.
“오늘은 지우가 읽어야 해.”
“그냥 할머니가 읽어 주세요.”
책 읽고 자자고 하며 늘 할머니보고 책을 읽어 달라고 한다. 오늘은 쌍둥이 손자 지우 연우와 번갈아 가며 읽었다.
쌍둥이 손자는 다섯 살인데 세 살이 넘으며 한글을 떼어서 책을 줄줄 잘 읽는다. 한 페이지씩 돌아가며 읽는데 갑자기 지우가 장난스럽게 읽으며 따라 해 보라고 했다. 따라 했더니 재밌다며 연우와 계속 따라 해 보라고 한다. 책 10권을 다 읽고 나니 거의 10시가 다 되었다. 불을 끄고 누웠다.
지우가 갑자기
“왕할머니 언제 만나요?”
라고 말한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왕할머니는 친정엄마다. 재작년 5월에 어깨를 다치고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셨다. 평생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으셨는데 충격이 크셨던 것 같다. 강릉에서 혼자 지내셨는데 인지도 조금 안 좋아지셔서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살았다.
남동생이 두 명 있지만, 딸이 편하다고 하셔서 퇴원하며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문제는 퇴직하기 전이라 내가 출근하면 혼자 계셔야 하는 거였다. 7월 20일경에 여름 방학을 하니까 한 달 반 정도가 문제였다. 코로나 시기라 재택근무하는 작은 아들이 우리 집에 와서 돌보기도 하고, 내가 조퇴를 하며 돌봐드렸다. 그러다가 9월에 장기요양급여 4등급을 받으셔서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시며 어머니를 돌보는 것이 해결되었다.
친정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를 복지관이라 부르며 즐겁게 다니셨다. 아침 8시 20분경에 센터 차가 오면 유치원 원아처럼 아파트 열쇠가 든 가방을 메고 등원하셨다. 센터에서 저녁까지 드시고 오셔서 저녁은 과일 정도만 드셨다. 성격이 긍정적이시라 다른 어르신과도 잘 지내셨다. 특히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던 친정엄마는 노래 교실이 있는 수요일을 가장 좋아하셨다. 친정엄마를 보며 우리나라 노인 복지가 참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감사한 일이다.
쌍둥이 손주를 주말마다 우리 집에서 돌봐주다 보니, 왕할머니 하고도 잘 지냈다. 1년 8개월 정도를 주말마다 만났으니 정이 들었나 보다. 친정엄마가 올해 2월 말에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입원하셔서 기관지 내시경을 받다가 심정지가 와서 정말 갑자기 돌아가셨다. 앞이 깜깜했다. 인지가 조금 안 좋긴 했어도 대부분의 일은 혼자서 하셨을 정도로 건강하셨다. 갑자기 겪는 일이라 가족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친정엄마는 우리 곁을 떠났다.
쌍둥이 손자가 집에 왔는데 왕할머니가 안 보이니까 아빠에게
“왕할머니 어디 가셨어요?”
“왕할머니 달나라에 가셔서 이제 볼 수 없어.”
라고 아빠가 대답해 주었다.
오늘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왕할머니가 생각난 것 같다.
“지우야, 왕할머니 보고 싶어?”
“네, 왕할머니 언제 만날 수 있어요?”
“아주 오래 있어야 만날 수 있어. 하지만 지우가 코 자면 꿈속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할머니, 얼른 잘게요. 오늘 꿈속에서 왕할머니 만나고 싶어요.”
귀여운 손자는 쌕쌕 잘도 잔다. 꿈속에서 왕할머니 만나 재미있게 놀기를 바란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꿈속에서조차 한 번도 뵙질 못했다. 오늘 내 꿈속에도 찾아와 주시면 좋겠다. 꿈속에서 만나면
“낳아주시고 예쁘게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왜 그리 서둘러 떠나셨는지 여쭈어보고 싶다.
내가 초등학교 교사라 첫째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집에 오셔서 손자를 돌보셨다. 친정아버지께서 50대 초에 돌아가셔서 강릉에 혼자 계셨는데 집도 두고 올라오셨다. 요즘 아들 쌍둥이를 주말에 돌봐주다 보니 아들 둘을 키우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나보다는 친정엄마가 조금 젊으셨지만, 그래도 살림까지 해주며 손자를 돌보는 일이 많이 힘들었을 텐데 한 번도 힘들다고 안 하셨다. 큰아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돌보시다가 강릉으로 내려가셔서 계속 혼자 지내셨다.
친정엄마가 100세까지 사실 줄 알았다. 우리 집에 오셔서 지내시며 마음이 편하다고 하셨다. 작년에 퇴직했기에 이제 친정엄마를 잘 모시려고 했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이 효도할 때를 기다려주지 않음을 깨달았다.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잘해 드리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한다.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말고 친정아버지 만나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먼저 가진 친정아버지가 많이 늙으신 엄마를 알아보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