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래 Aug 18. 2023

별장 있는 친구를 사귀어라

퇴직하고 보니 세컨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크다. 변 지인 중에도 강화도나 양평, 가평 등에 세컨하우스를 가지고 있는 분이 꽤 있다. 예전에는 별장이라는 말을 썼는데 요즈음엔 세컨하우스란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의미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세컨하우스는 두 번째 집을 의미하는 말로 도시에 아파트 등 평소에 거주하는 집이 하나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별장과는 비슷하긴 하지만, 별장은 본래의 집과 매우 많이 떨어진 곳에 얻기도 하고 보통 놀러 갈 때만 사용하는 의미를 지닌다. 세컨하우스는 주말을 이용해 자주 방문하고 꿈꾸던 전원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주로 세컨하우스는 텃밭이 딸린 집이 많은 이유다.


별장은 주로 부자들이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컨하우스는 퇴직 즈음에 구입하는 분이 있고, 부모님께서 사시다가 돌아가시면 시골집을 리모델링하여 세컨하우스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인 중에도 그런 분이 많다. 나도 그중의 하나다.


오늘 가평에 세컨하우스가 있는 친구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올림픽 공원역에서 만나서 한 차로 함께 가자고 했다. 친구가 올림픽 아파트에 살고 있고 한 친구는 동탄에 거주하기에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차를 각자 가지고 갈 수도 있지만, 수다 떨며 함께 가는 것이 더 재미있다.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하여 9호선 급행을 타고 갔다. 9호선이 생겨서 강남에 갈 때 참 좋다.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오래 서서 가다가 노량진역에서 앉았다.


휴가철이라 어렵게 약속을 잡았다. 보통은 모임을 서울에서 하지만 친구가 세컨하우스로 오라고 해서 어렵게 약속을 잡았다. 작년부터 가려고 했는데 잘 안 되었다. 교대 친구로 첫 학교 발령 동기다. 다섯 명인데 벌써 만난 지 43년이 되었다. 봄에 만나고 여름에 만난다.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니 여행 가는 기분이다. 여행길이 길지 않았지만, 추억을 소환하기엔 충분했다. 가평, 대성리, 강촌은 대학교 다닐 때 MT를 왔던 곳이라 지날 때마다 정겹다.


가면서 점심은 나가서 먹자고 약속했는데 도착해 보니 벌써 한 상 가득 차려놓았다. 모두 텃밭에서 재배한 걸로 차렸다고 한다. 호박죽에 샐러드에 토종닭 백숙까지 고향 냄새가 제대로 난다. 고구마순 볶음, 가지무침, 깻잎 볶음에다 각종 장아찌가 욕을 돋운다. 오이와 풋고추, 당근도 모두 텃밭에서 딴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에 닭죽까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배불리 먹었다. 사부님께서 이것저것 텃밭 가꾼 경험을 말씀해 주셨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배불리 식사하고 부지런한 구 둘이 설거지를 후딱 해치웠다. 세컨하우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가족이나 지인이 와서 잠시 지내기에는 충분했다. 거리도 서울에서 멀지 않아서 좋았다. 교통도 좋아서 큰길에서 바로 조금 들어오면 있었다. 텃밭에는 고추, 땅콩, 참깨, 들깨, 고구마 등이 수확을 앞두고 있었고, 오이와 호박 넝쿨도 자연스럽게 널려 있었다.


사가지고 간 과일과 차를 마시며 본격적인 수다에 들어갔다. 크루즈 여행 포함 40일 유럽을 다녀온 친구의 여행담을 들으며 크루즈 여행도 꼭 한 번 다녀오자며 공감하였다. 유럽 여행 기간에 노르웨이에서 유학하고 있는 딸이 갑자기 결혼하게 되어 결혼식에도 참여하고 온 친구를 축하해 주었다. 요즘 국제결혼은 자연스럽다. 노르웨이 사위를 얻은 친구가 한국에서 결혼식을 다시 할 예정이라고 했다. 축의금은 그때 받겠다고 한다.


작년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친구가 코로나 상황에서도 장례식을 잘 치른 이야기를 들었다.연명 치료에 대해 이야기를 한참 하였다. 친정어머니가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는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쾌유하시길 기도했다. 건강 이야기에, 손주 이야기에 공동 화제가 많아서 이야기가 쉴 틈이 없다. 다행인 것은 다섯 명 모두 할머니라서 손주 아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 다섯 명 중 세 명이 나처럼 쌍둥이 할머니다.


친구 세컨하우스 옆에 10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교대 동기 한 명이 있어서 친구집으로 옮겨갔다. 마당에는 빨간 고추가 널려 있고 썰은 호박과 털다 만 참깨 더미가 있었다. 농사꾼이 다 된 것 같았다. 내려다보이는 밭도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보리스 열매로 담근 차에 얼음을 동동 띄워주어 시원하게 셨다.

 

이제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이질 시간이다. 친구 둘이 친정엄마처럼 오이 두 개, 가지 두 개, 호박 한 개, 청양고추 그리고 깻잎 삶은 것, 오이장아찌 등등 봉지봉지 싸서 들려주었다. 땡볕에 농사짓느라고 힘들었을 텐데 챙겨준 구가 고맙다. 다음에 만날 약속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울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밤 9시다.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는 남동생이 강원도 찰옥수수를 한 상자 보내준 것이 도착해 있었다. 너무 늦어서 씻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동생에게 고맙다고 카톡을 보냈다. 작은 김장 매트를 꺼내서 옥수수 겉껍질을 벗겨서 큰 냄비에 두 번 나누어 삶았다. 먹을 것 몇 개만 남기고 냉동실에 다섯 개씩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옥수수 부자가 되었다. 친구가 준 가지를 쪄서 무치고 호박도 새우젓을 넣고 볶았다. 삶아서 준 깻잎도 볶고 나니 주말 반찬푸짐해졌다. 오이는 생으로 썰어서 먹으면 되니 고기만 구우면 훌륭한 저녁상이 차려질 거다.


이런 말이 있었다.

"별장은 만드는 순간 골칫거리다. 그냥 별장을 둔 친구를 사귀어라."

아마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가 보면 낭만적이지만, 텃밭 가꾸는 것도 잔디 관리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 친구가 주중에는 언제나 사용하라고 한다. 동생도 언제든지 놀러 오라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별장 같은 집을 소유한 지인을 둔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마음이 든든하다. 언제든지 시간만 내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