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서랍에 머물러 있던 글입니다. 좋은 생각에 공모하려고 쓴 글이었는데 삭제하려다가 오늘 꺼내봅니다.
2022년 8월 말에 교장으로 퇴직하였다. 42년 6개월이란 세월이 영화처럼 지나간다. 영화 속에는 따뜻한 이야기도,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 이야기도 담겨 있다. 가르쳤던 학생이 무용가의 꿈을 이루어 공연에 초대한 이야기도, 그렇게 속 썩이던 6학년 제자가 멋진 고등학생이 되어 찾아온 장면도 지나갔다. 어느 해에는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 일곱 살 아이가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건너다가 사고가 나서 하늘나라에 간 장면도 있었다. 2학년 우리 반 아이 엄마가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었다.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이제 추억의 한 페이지에 남아있다.
교사로, 교감으로, 교장으로 지내면서 보람을 느꼈다. 퇴직하며 후련하다기보다는 서운한 마음이 컸다. 퇴직하고 2023년 3월부터 기간제 교사로 초등학교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교장으로 퇴직하고 다시 교사로 생활하는 일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알았지만, 용기를 내 보았다. 요즘 학교마다 기간제 교사 구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선배로서 이것도 봉사라고 생각했다.
퇴직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이 가르치는 일이란 걸 알았다.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가슴 뛰게 하는 일임을 깨닫고 다시 학교에 갈 결심을 했다. 요즘 교사로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잘하면 학교가 행복한 곳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년 동안 2학년 담임하며 만감이 교차한다. 처음 마음은 학교 엄마로 살며 아이들에게 엄마처럼 따뜻하고 편하게 해 주리라 다짐했다. 늘 아이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늘 친절하게 대했다. 처음부터 무서운 교사가 아닌 착한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교실이 만만하지 않았다. 금쪽이도 있었고, ADHD 학생인 세모도 있었다.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보니, 민원도 생기게 되면서 자꾸 내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무슨 사안이 생길까 봐 걱정되어 처음 생각했던 늘 행복한 교실이 유지되지 않았다. 그래도 늘 내 옷을 칭찬해 주던 솔이와 선생님을 늘 엄마처럼 편하게 대해주던 유니와 같은 예쁜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지난 1월 10일에 종업식이 있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편지를 써서 주고 갔다. 가슴이 뭉클했다. 특히 가장 힘들게 했던 세모가
“선생님 말씀 정말 잘 듣고 싶었는데 몸이 마음대로 안 따라 주었어요. 선생님 말씀 잘 안 들어서 죄송해요. 이제부터 노력하는 세모될게요.”
세모를 꼭 안아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늘 신경 쓰게 했던 아이가 색종이 접기를 주며
“선생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1년 동안 힘들었던 마음이 눈처럼 녹았다.
작은 선물을 풀어보니 마이쮸(캔디 종류) 세 개에 '설날을 담아', '정성을 담아', '사랑을 담아'라고 쪽지를 붙여준 것을 보며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아이들은 천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올 1년 담임을 하며 많이 힘들었지만, 마지막 종업식 날 그동안의 시름이 말끔히 사라졌다. 우리 반 학생들이 3학년에 올라가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길 바란다.
이렇게 난 행복하게 두 번째 퇴직을 하였다. 마지막 제자가 된 아이들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