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에 퇴직한 지인이 많다. 나도 2022년 8월 말에 퇴직하였다. 대부분 교원이나 공무원으로 퇴직했지만,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은퇴한 지인도 있다.
교원으로 퇴직한 분은 정년퇴직한 분도 있지만, 명예퇴직한 분이 많다. 퇴직하고 한 달 정도는 대부분 자유로운 일상을 즐긴다. 그동안 바쁘게 긴장하며 살다가 출근하지 않으니 내 세상 같았다. 하지만 한 달 정도다. 나도 한 달은 자유롭게 즐기며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아무 일도 안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데 연금만 갉아먹으며 살아도 되는지 회의가 왔다. 우울증이 그렇게 성큼 다가올 줄 몰랐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냥 커피잔을 들고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다 갑자기 눈물이 뚝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아는 교감 선생님 부탁으로 이웃 학교에 시간 강사로 나가게 되었고, 글 쓰기도 시작하면서 삶의 활력을 얻었다.
일도 일이지만,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일상의 모든 일이 글감이 되어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글이 쌓이는 것을 보며 출간의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6개월동안 쓴 글로 POD(Publish On Demand) 주문형 자가 출판으로 에세이집을 출간하게 되면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우울할틈이 없게 되었다.
글 쓰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브런치 스토리 작가에 도전해서 글 쓰기를 하셔도 좋을 것 같다. 80이 넘으신 분도 작가로 활동하고 계시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 쓰는 작가들 중에 퇴직 후 무기력으로 인한 우울증이나 육아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분들이 글 쓰며 회복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마음이 허전하거나 무기력증이 오는 분은 글 쓰기로 삶을 바꿔보시면 좋겠다.
POD로 출간한 첫 책
마음의 감기 같은 우울증, 약 먹으며 치료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주 친한 친구가 있다. 교대 동기이다. 친구들 중에서 일찍 명예퇴직을 하였다. 잘 지내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며 참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모두 생각하며 응원해 주었다. 명예퇴직하고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화장실에서 갑자가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평소에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잠깐 정신을 잃은 것 같았는데 다행히 깨어났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갑자기 외출하기가 불안해졌다. 갑자기 또 쓰러질 것이 늘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아파트 상가에 잠시 다녀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갑자기 손이 떨리고 가슴이 불안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집에 오긴 했는데 진정이 안 되어 딸에게 119를 불러 달라고 해서 응급실로 갔다고 한다.
신경외과에서 뇌 촬영을 하였지만, 이상이 없다고 해서 퇴원했는데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낮에는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에 나가 잠시 일을 봐주는데 의자에 그냥 멍하게 앉아서 "저 사람들은 무엇이 행복해서 저리 웃을까?"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남편에게도 자기 건드리지 말고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며 그렇게 지냈다. 밤에도 불면증이 와서 잠도 못 자고 식사도 할 수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가족 권유로 신경정신과에 가서 다시 검사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고 한다. 약을 먹으니 마음이 안정되었고 잠도 잘 자게 되어 차츰 약을 줄이게 되었다. 낮에는 아파트나 공원을 산책하며 햇빛을 쬐고 가볍게 운동도 하였다고 한다.
친구는 말한다. 신경정신과 약 먹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우울증이 심할 때는 상담도 받고 약처방도 받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다고 한다. 특히 불면증이 심할 때도 병원에 가서 상담하고 약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했다. 맞는 것 같다. 나 혼자 힘으로 안 될 때는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으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친구는 지금 건강해져서 손자도 돌보며 잘 지내고 있다. 모임에 나와서 그때 이야기하며 용기 내어 병원에 간 것이 잘한 일임을 강조한다. 이제 신경정신과나 정신건강의학과 방문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마음의 감기 같은 우울증, 특히 노인 우울증도 감기처럼 약 처방을 받으면 쉽게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려 식물 키우기로 은퇴 후 우울증 극복
다음은 작은 공장을 운영하며 사업을 하던 모임의 언니 사장님이 있다. 늘 골프도 함께 치고 한 달에 한 번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잘 나오셨던 분이다. 60대 후반에 공장을 접고 일을 안 하게 되셨다. 모임에 나오면 일을 안 하니 마음이 허전하다고 하셨다. 나도 그즈음에 퇴직을 했기에 허전한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동안 정말 쉼 없이 열심히 일하셨으니 지금의 휴식이 적응의 안 되셨을 거다.
시간이 많으니 골프도 더 열심히 치고 모임에도 잘 나오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어느 날부터 모임에 안 나오셨다. 전화해도 받지 않으셨다. 어디가 많이 아프신지 걱정이 되었다. 아무도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러고 몇 달이 지났는데 한 분이 동네 마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어 카페에 가서 잠시 이야기하다 보니 은퇴하면서 우울증이 왔었다고 하셨다. 열심히 일하다가 일을 손에서 놓으니 무기력증에 빠진 것 같았다고 하셨다. 사람도 만나기 싫어 집에서 그냥 지내다가 어느 날 베란다에 놓여있는 시든 화분을 보다가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싶어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좋아하던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특히 다육이를 키우다 보니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어 좋아졌다고 하셨다.
김포 '여수룬 식물원' 다육이 방
다육이를 키우며 이야기도 하고, 늘어나는 화분을 보며 나도 다육이처럼 꿋꿋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모임 중에 다육이 키우는 동생이 있어서 다육이도 같이 사러 다니고 집도 오가며 많이 좋아지셨다.
우리 집도 반려 식물을 많이 키우고 있어 식물이 주는 위로를 잘 알고 있다. 나도 마음이 우울해질 때면 베란다에 나가 화분에게 말도 걸어보며 마음을 달랠 때가 많다. 언니도 지금은 모임에도 나오시고 스크린 골프도 하며 잘 지내고 계시다.
우리 집 난 화분
누구나 우울증이 올 수 있다. 은퇴 후에 아무 생각 없이 여행 다니며 즐겁게 지내는 분들도 있지만 한 번씩 우울증이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 주변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1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등산을 가거나 둘레길을 걷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니면 복지관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한다든지 사람들과 요가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함께 하는 것도 좋겠다. 본인에게 맞는 방법으로 우울증을 극복하고 건강한 노년을 보내길 바란다.
근처에 있는 노인 복지관과 복지관에 회원 가입을 하였다. 복지관에는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적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노인복지관은 교육비도 무료다. 재료비가 있는 과목은 재료비만 낸다. 물론 인기 있는 것은 신청하고 떨어지기도 하지만, 나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노년을 잘 보내는 방법이다.
3월 초부터 노인복지관에서 평생 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하며 잘 지내고 있다. 함께 공부하는 어르신들도 활기가 넘친다. 수업 태도가 정말 좋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모두 우등생이 되었을 거다. 노인 우울증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