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에 남편과 영화를 보았다. 설날 전날 둘이 앉아있다가 "내일 할 일도 없는데 영화나 보자."라고 했더니 남편도 좋다고 했다. 바로 집 근처에 있는 영화관을 검색해서 보고 싶었던 '소풍' 예약에 성공했다. 좌석도 많아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자리로 예약했다. 남편은 65세 이상 우대대상이라 9,000원이나 할인을 받았다. 영화 예약도 척척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우리는 신정을 쇠었기에 이번 설에는 설날 다음 날에 가족이 모이기로 했다.큰아들이 지방에 있는 처가댁에 설 쇠러 가서 설날 저녁에 출발해서 올라온다. 아마 한밤중이나 길이 막히면 우리 집에 새벽에 도착할 수 있다.마침 2월 14일이 쌍둥이 손자 생일이라서 생일 축하도 미리 하려고 예쁜 케이크도 사다 놓았다.
영화는 설 연휴에 맞추어 2월 7일에 개봉하였다.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신 세 분이 모두 80대다. 김영옥, 나문희, 박근형 님모두 좋아하는 배우다. TV에서 홍보하는 걸 보고 제목 '소풍'에 끌렸다.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서 가져온 제목이라고 생각한다.영화 속에서도 언급이 되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영화를 보고 나면 마지막까지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것이 부럽다. 두 분은 실제로도 오랜 우정을 자랑하는 배우다. 주인공 은심(나문희 역)과 금순(김영옥 역)은 친구이면서 자식을 나누어 가진 사돈이다. 은심 아들과 금순 딸이 결혼하였다. 그 사이에 손녀가 한 명이 있다.
은심은 부잣집 딸이었지만, 부모의 죽음과 남편의 죽음으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야반도주하듯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억척같이 일해서 재산을 꽤 많이 모았지만, 아들이 사업하며 다 말아먹었다. 요즘 자꾸 돌아가신 엄마가 보인다.
아들이 사업이 어려워지자 엄마인 은심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다.마음이 심란할 때 친구이며 사돈이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고 연락 없이 찾아온다. 친구 금순과 60년 만에 고향 남해로 내려간다. 남해에서 중학교 때 은심을 짝사랑하던 태호(박근형 역)를 만나 세 명은 열여섯 중학생으로 돌아간다. 그때를 추억하며 행복해한다.남해의 아름다움에 빠지게도 했다.
영화에 삽입된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OST는 영화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영화가 끝날 때 나오는 엔딩곡으로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게 만든다. 노래 가사가 영화 내용과도 잘 맞았다. 영화 관람하고 집에 와서 다시 찾아서 몇 번이나 들었다. 반복해서 들어도 영화의 여운이 남아 영화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지난여름에 남편과 집에서 '그대 어이가리'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 치매가 정말 무서운 질병임을 깨닫고 제발 죽을 때까지 치매는 안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이 영화도 슬프다. 보다가 눈물이 났다.하지만 슬프기만 하진 않다. 코믹한 장면도 있고 친구의 우정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골다공증으로 허리가 아파 더 이상 수술할 수 없게 된 금순과 파킨슨병으로 인해 손이 떨려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살 수 없음을 알게 된 은심은 모든 노인의 미래 모습 같다.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서 실례를 하는 금순을 은심이 씻기는 장면이 따뜻하면서도 많이 슬펐다.
은심과 금순은 새 옷을 사서 곱게 차려입고높은 산으로 김밥을 싸서 소풍 간다.산을 오르는 길이 힘들었지만, 행복해 보인다. 그 소풍이 인생의 마지막이 되리란 것을 짐작했으리라.벼랑 끝에 서서 손을 꼭 잡고 금순이 "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니 친구 할 끼야."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울컥하게 한다.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복이다.
나태주 시인은 이 영화를 위해 자신의 글씨체를 담은 낙관을 기증하고, '하늘 창문'이란 헌정 시를 전달했다고 한다. 임영웅은 영화의 OST로 받은 수익금을 모두 기부했다고 한다. 두 분 모두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런 것들이 영화를 더 빛내 주리라 믿는다.
이 영화를 보며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자꾸 생각났다. 친정엄마는 인지가 조금 나쁘셨지만, 차려드리면 식사도 혼자 하셨고 화장실에도 혼자 가셨다. 허리가 아파서 늘 진통제를 달라고 하셨지만,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기를 밀고 다니셨다. 우리 집에서 함께사셨는데 천식으로 입원하셨다가 검사받다가 심정지로 돌아가셨다.
요양원에도 안 가셨다. 친정엄마는 87세에 돌아가셨다. 갑자기 돌아가셔서 많이 슬펐는데 영화를 보며 아파서 고생하지 않고 그때 돌아가신 것이 어쩜 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입원하셨다가 주무시듯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친정엄마의 소원이 '주무시다가 자는 듯 가시는 것'이었다.영화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우리나라도 곧 초고령 사회에 들어간다고 한다. 초고령 사회가 되면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노인 복지가 잘 되어 있지만, 노인 우울증 등 다양한 노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우리 집에도 남편과 내가 노인 세대에 속하기에 초고령 사회가 두렵다. 노년 세대가 주역인 ‘소풍’은 요양병원과 연명치료, 존엄사 등 죽음에 대한 고민을 안긴다.우리 모두 생각해 볼 문제다.
남편은 영화를 보고 태호와 본인을 동일 시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었지만 끝까지 일하다 뇌종양으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늘 즐겁게 살고 일하는 모습은 좋지만, 역시 나이 들면 찾아오는 각종 병이 무섭다고 했다.남편과 서로 도와주며 친구처럼 잘 살아야겠다.
나이가 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또한 영화에서 은심이 아들에게 미안함을 돈으로 보상하려고 사업 자금을 대준 것이 결국 아들을 실패의 길로 몰게 되었다. 자식에게 어떻게 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 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남은 인생을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친구도 만나고, 너무 자식에게 매이지 말고, 재산도 움켜쥐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니 스스로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영화가 주는 여운이 커서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나중에 TV로 꼭 다시 보려고 한다. 설 연휴에 좋은 영화를 보고 앞으로 노인으로 살아야 할 삶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의삶을 닮은 영화라 공감하며 잘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