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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Sep 02. 2024

《월간 에세이》 9월호에 실린 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


9월호 표지

지난봄 '월간 에세이' 편집장님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에세이 한 편을 써 달라는 메일이었다. 메일로 서평 부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에세이 의뢰는 처음이라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자유 주제라 지면에 발표되려면 계절과 관련 없는 글이 좋을 것 같았다. 고민하다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 '라는 제목으로 원하는 원고 분량에 맞추어 보내드렸다.


지난주에 외출했다가 들어오다가 우편함에 꽂혀있는 '월간 에세이'를 보고 집에 오자마자 찾아보았다. 내 글이 지면에 실리다니 감동이 되었다. 지역 소식지 'Green 서구'에는 시가 두 번 실린 적이 있었지만, 연륜 있는 월간지에 글이 실리다니 정말 기뻤다. 편집도 예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월간 에세이>에 실린 내 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


                                          유영숙 시인


올해 초, 영화 <소풍> 관람했다. 소풍에 나오는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배우 모두 80대이다. 그 나이까지 건강하게 일하시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영화를 보며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영화 속 은심(나문희 역)과 금순(김영옥 역)의 우정에 깊은 감동이 되었다.


은심과 금순은 동네 친구이자 자식을 나누어 가진 사돈이다. 병으로 혼자 살아갈 힘이 없어질 때쯤 곱게 차려입고 김밥을 싸서 마지막 소풍을 함께 떠난다. 마지막 소풍을 함께 떠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웠다.


영화를 보며 나에게도 은심금순이 같은 좋은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다. 없으면 이제라도 만들면 될 것 같았다.


강릉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교대입학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여고 동창 네 명이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만났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조금 전에 작은 오해로 모임이 해체되었다. 생각해 보면 별일도 아니었는데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영화 <소풍>보고 많이 반성하였다. 내가 먼저 용기 내어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 들어 중요한 것 중 한 가지가 좋은 친구 만나서 수다 떨고 이야기 들어주는 것이다. 치매를 이길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다행히 약속을 잡고 네 명이 다시 만났다. 고향 친구이기에 만나서 학창 시절 이야기를 다 보니 감정이 저절로 풀렸다. 마음 상한 말을 한 것을 서로 사과했다. 이제 자주 만나서 둘레길도 걷고 미술관에도 가고 오페라도 관람하자고 했다. 다음 약속까지 잡았다. 이제 우리 모임은 오래 이어질 거라고 믿는다.


아프리칸 인디언들 언어로 친구란 '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앞으로 내 슬픔을 함께 지고 갈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해 보았다. 만나는 구도 있지만 결국 마지막 친구는 남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의견 충돌로 싸우고, 별일 아닌 일로 며칠씩 말을 안 하기도 했다.


요즘 둘 다 은퇴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만, 거의 싸우지 않는다. 서로 도와주고 배려해 주며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측은지심도 생겨서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면 나이 든 것 같아서 마음이 하다.  


나는 여행을 좋아했다. 교사였기에 방학이면 동료 교사들과 늘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길게는 열흘이 넘었고 짧으면 닷새 정도 걸렸다. 남아 있는 남편은 회사에 다녔기에 여행 기간 동안 혼자 지내야 했다. 언제부턴가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여행은 남편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나이 들며 철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9년 추석 연휴에 남편과 북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과 떠난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보통 남편과 여행을 가면 갈 때는 웃으며 가지만, 올 때는 싸우며 온다고 했다. 나도 그럴까 봐 걱정되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남편과 여행을 가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짐도 들어주고 시원한 음료수도 사다 주며 나를 어찌나 잘 챙겨주는지 불편함이 하나도 없었다. 3박 4일 여행이었는데 그동안의 어떤 여행보다 즐겁게 다녀왔다.


북경 여행을 계기로 요즘 우린 늘 함께 여행을 다닌다. 해외여행은 다녀오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여행을 함께 다닌다. 부산 여행도 기억에 남고 거제 통영 여행도 정말 좋았다.   

      

남은 인생에서 바람이 있다면 둘 다 건강해서 마지막 소풍을 함께 가고 싶다. 이제 서로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서로 의지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며 즐겁게 살아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남편임을 오늘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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