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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Aug 21. 2024

케냐 오실리기에서 만난 12살 소년 가장 캐더리안

(2일 차) 불평하지 말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세계에는 많은 나라가 있다. 환경도 형편도 다 다르다. 두바이 왕자가 사는 궁궐이 있는 반면에 깊은 산지에 쇠똥을 섞어 만든 흙집에서 하루 한 끼만 먹고사는 아프리카 아이들도 있다.


둘째 날부목사님 촬영이 시작되어 오늘 함께 할 아이를 만나러 오실리기로 출발했다. 오실리기는 나이로비에서 2~3시간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도로를 벗어나 산지로 한 시간가량 들어갔다. 포장이 안 된 길이라 흙먼지를 날리며 달렸다. 요즘이 아프리카는 건기라 흙이 말라서 먼지가 더 심했다. 길이 없을 것 같은 곳에 길이 나 있는 것도 신기했고, 이런 산속에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마사이 마을 가는 길

 케냐가 요즘 건기라서 그런지 원에는 마른풀과 우산 모양의 나무가 보였다. 우산 모양의 나무는 우산처럼 그늘을 넓게 만들어 주었다. 지나는 길에 방목하는 아프리카 소들과 염소 떼도 볼 수 있었다. 아프리카 소는 등 앞쪽에 낙타처럼 혹이 하나 있어서 우리나라 소와는 생김새가 달랐다. 아프리카 소가 길을 막고 서 있어서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소를 치는 목동도 남자아이들이었다.  손에 나뭇가지로 만든 긴 막대를 들고 소를 몰고 있었다.


캐더리안이 사는 마을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지를 가로질러 도착한 곳에 원시시대에나 있었을 것 같은 움집 같은 집이 세 채가 있었다. 세 가구가 사는 집이다. 여자아이가 우리가 신기한 지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하얀 이를 보이며 웃는다. 사진을 같이 찍고 사탕을 주었다. 뒤쪽에는 마른 가시나무를 울타리처럼 세워두었다.


정말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곳에 집이 있었다. 커다란 개 세 마리가 마당에 누워 자고 있었다. 밤에는 짐승들로부터 지키느라 자지 못하고 낮에 잔다고 한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곤하게 자고 있었다. 먹을 것도 변변치 않아서 말라 있고 피부염도 있었다.


캐더리안이 사는 집
집옆 나무 그늘에서 식사하는 캐더리안과 할머니

오늘 목사님께만날 아이는 12살 남자아이 캐더리안으로 부모가 없고 앞이 안 보이는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즉 소년 가장이다. 이곳은 마사이 마을로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동네라고 한다. 사는 집은 너무 열악해서 쇠똥을 이겨 만든 조그만 흙집에 살고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마을 사람들이 살라고 내어준 집이라고 한다.


물론 전기도 수도도 없고 겨우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가 좁고 꺾여있어서 어두워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들어가서 사는 곳을 볼 수 있었다. 가운데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화덕 같은 것이 있었는데 가끔 음식을 만들어 먹는지 천장이 까맣게 그을렸다.


나무 자르는 캐더리안
캐더리안이 만든 숯

12살 아이가 무딘 칼로 마른나무를 잘라서 염소 똥으로 불을 피워 숯을 만들어 팔면 삼천 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나무가 말라서인지 힘껏 내려쳐도 잘리지 않아서 같은 곳을  번 정도 내리쳐야 겨우 잘라졌다. 목사님과 장로님께서 직접 잘라보았는데 잠깐 사이에 손에 물집이 맺혔다. 신발도 안 신고 맨발로 다니며 나무를 자르는 12살 캐더리안을 보며 마음이 아려왔다.  


숯을 만들어 먼 길을 걸어 나가서 숯을  돈으로 세끼 정도 먹을 것을 살 수 있는데 다 먹지 않고 아껴두고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고 한다. 숯이 팔리면 삼 일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구입할 수 있지만, 숯이 안 팔리면 굶거나 이웃에게 얻어먹을 수밖에 없다. 이웃에 있는 염소나 소를 돌보아주고 염소젖을 얻어 온다고 한다.


정말 TV에서 보았던 그 모습을 직접 눈앞에서 보니 마음이 아려왔다. 먹고사는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숯을 만들어 팔면서 가장 노릇을 하느라 학교에 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고 한다. 캐더리안이 가장 힘든 것이 배고픔이라고 한다.


캐더리안은 학교에 가서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이번 우리 교회 선교 후원으로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받아서 숯을 만들어 팔지 않아도 먹을 것이 해결되고 학교에도 가서 선생님 꿈도 꼭 이루길 기대해 본다. 


마사이 여인들이 음식을 만드는 모습

촬영 당일 우리가 준비해 간 음식 재료로 식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이 잔치를 벌였다. 감자와 콩 등을 볶아 소스를 만들고 쌀과 소고기를 넣어 만든 음식이다. 약간 소고기 야채죽 같은 느낌인데 마을 사람들이 한 그릇씩 나누어 었다.


마을에는 집이 많지 않았는데 어디서 왔는지 40여 명의 마사이족 사람들이 모였다. 아마 조금씩 떨어진 곳에 몇 가구씩 모여 살지 않을까 싶다. 음식을 만들던 나무 밑에도 집 두 채가 있었다. 나무에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새집이 인상적이다.


나무에 달려있는 새집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행복해 보였다. 나무 그늘에서 나뭇가지로 불을 피워서 음식을 만드는데 음식을 만들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사이 여인들이 외부에서 손님이 찾아왔다고 귀고리, 목걸이 등으로 장식하고 화려하게 차려입고 음식을 만들고 남자들은 그늘에 앉아 음식이 만들어지길 기다리는 풍경이 한가로워 보였다. 오늘은 이곳 마사이족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하루였다.


마사이 아이들과

특히 아이들의 사탕 하나에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열악한 환경이 들어 보이고 안타까웠지만,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며 사는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와서 안기고 동생을 데리고 와서 사탕을 달라고 하는 너무나 순수한 모습에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었다.


초원이라고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광야가 연상되는 곳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소 떼가 지나가고 염소 떼가 지나갔다. 모든 동물을 방목하기에 초원에는 동물들의 분비물이 널브러져 있었다. 더군다나 이 마을에는 화장실도 없었다. 그냥 자연이 모두 화장실이다.


물 길어오는 당나귀
아프리카 소

마을에 물이 없어서 10킬로 이상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와야 한다. 월드비전에서 오실리기 마을에 몇 군데 수도를 설치해 주었지만, 넓은 땅에 흩어져 살다 보니 물 긷는 일이 가장 큰 일 같았다. 물 길어오다가 하루가 다 갈 것 같다.


 물통 하나가 5㎏ 정도 되는 작은 통과 10㎏ 정도 되는 조금 큰 통 2가지였는데 월드비전에서 통을 공급해 주어 물통이 똑같았다. 사람이 양손에 하나씩 들고 오기도 하고 당나귀에 4~6통씩 싣고 오기도 한다. 그나마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가시 나무

케냐가 6~8월은 건기라서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이 거의 말라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도 대부분 가시가 단단하게 달려 있었다. 잘라 놓은 나무를 스쳤는데 바지에 달라붙어서 떼어 내느라 힘들었다. 가시가 얼마나 단단하고 날카로운지 잠깐 사이에 바지 속 살이 긁혀서 피가 났다. 


이곳에 와서 수도만 틀면 물이 콸콸 나오는 우리가 얼마나 편하고 행복하게 사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곳의 가장 시급한 시설이 수도 시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서 기도해 주시는 목사님

캐더리안 할머니는 교회에 가고 싶어 하시지만, 눈도 안 보이고 걷는 것이 불편하여 잘 가지 못한다고 해서 목사님이 모시고 교회에 갔다. 교회에 가려면 걸어서 가야 하는 꽤 먼 거리였다. 교회에는 흑인 목사님이 계시는데 교회라고 해도 그냥 허름한 집이다. 목사님께서 캐더리안과 할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캐더리안의 소원이 할머니가 오래 사시는 것이고, 할머니도 오래도록 캐더리안과 함께 사는 거라고 하셨다. 소원이 꼭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다행히 교회에 허름하지만 화장실이 있었다. 주일이면 마사이족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케냐에 기독교 인구가 80%고 하니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 그 안에 월드비전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6•25 한국 전쟁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원조를 받았다. 1950년부터 1992년까지 42년 동안이나 받다가 자립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원조를 받았는지 몰랐다. 이젠 우리가 받은 만큼 어려운 나라에 도움을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오늘 목사님께서 캐더리안을 만나서 아버지의 역할을 해 주며 하루를 보냈다. 캐더리안이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마저 떠났다고 한다. 캐더리안에게는 엄마, 아빠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할머니마저 눈이 안 보이게 되면서 소년 가장이 되었다.


오늘 목사님과 캐더리안이 함께 한 촬영에서 마사이 언어와 우리말을 통역해 준 통역자가 있어서 가능했다. 통역자 제임스마사이족인데 어릴 때 월드비전에서 후원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캐더리안도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이 또 다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케냐 오실리기 마사이족 마을에 다녀오며 우리가 얼마나 잘 먹고 잘사는지 느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불평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고 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목적도 다시 생각해 보고 지구촌 이웃도 돌아보며 살자고 했다. 머나먼 지구촌 마을을 다녀오며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이번에 촬영한 희망 TOUCH 캠페인 영상은 편집이 마무리되는 대로 9월 중순 경에 기독교 방송 C채널(우리 집은 272번)에서 방영될 예정이오니 많은 시청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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