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 와서 밤에 잠을 못 잘까 봐 걱정이 되었다. 케냐 오기 전에 이것저것 걱정이 되었는지 통 잠을 자지 못했었다. 비행기에서도 거의 자지 못했는데 케냐에 와서는 잠을 잘 잤다. 낮에 햇빛도 많이 쬐고 다니는 것도 긴장되고 힘이 들었는지 시차도 못 느끼고 잘 자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케냐는 우리나라보다 여섯 시간이 늦다. 매일 5시 30분경에 일어나서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 차 넉대로 나눠 타고 이동했다. 길이 험해서 4륜구동 아니면 운전할 수 없는 길이다. 길도 울퉁불퉁해서 멀미약을 먹고 다녔다.
벌써 4일 차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쉬웠다. 오늘은 어제 만난 엔카코 가족을 목사님께서 병원에 모시고 가게 되었다. 엄마도 한쪽 다리가 아파서 걷기 불편하고 늘 가슴이 아프다고 하셨다. 쌍둥이 남동생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한다고 한다.
병원에 간다고 했는데 흙먼지 날리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로 계속 들어가서 병원이 산속 깊은 곳에 있나 생각했다. 엔카코 가족이 병원에 오는 시간이 조금 늦어져서 월드비전에서 설치해 준 수도 시설을 먼저 둘러보러 간다고 했다.
정말 깊은 산속으로 풀숲을 헤치고 1시간 30분 정도 들어갔는데 소떼가 중간중간 길을 막았다. 간신히 피해 수도 시설이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길에 소떼가 많은 이유가 이해되었다.
월드비전에서 설치해 준 수도 시설 주변 풍경
수도시설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물을 길어 가려고 많이 모여 있었다. 노란 물통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물을 마시러 온 소떼가 사람처럼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수돗물은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어 작동한다고 했다. 햇빛이 안나는 날은 그나마 수도를 틀 수가 없는데 다행히 흐린 날은 많지 않다고 했다.
물이 있으니 주변에서 채소도 키우고 있고 가시나무와 마른풀로 황무지 같던 초원이 제법 초록초록했다. 줄지어 서있던 소가 사람처럼 세 마리씩 들어와서 물을 마시고 가고 물을 실으러 온 당나귀는 피곤한지 서서 자고 있는 모습이 정말 너무 자연스러워서 매일 이런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았다.
수도 시설이 많지 않아서 아주 먼 곳에서도 물을 뜨러 온다고 했다. 그나마 어제 엔카코처럼 더러운 물 웅덩이에서 떠온 물 대신 깨끗한 수돗물을 마시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 이곳에 가장 시급한 것이 수도 시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 받으려고 기다리는 환자들
병원 시설
병원에서 진료받는 엔카코 엄마
엔카코 엄마는 아파도 한 번도 병원에 가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월드비전 오실리기 본부에서 차로 엔카코 가족을 병원에 모시고 와서 목사님과 만났다. 나도 이곳 병원이 어떤 환경일까 무척 궁금했다. 수도 시설을 둘러보고 한참만에 도착한 병원은 말 그대로 보건소 정도였다. 아침인데도 환자들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엔카코 어머니가 진료를 받고 약 처방을 받았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라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동생은 더 큰 병원에 가야 진료가 가능해서 여기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병원 시설이 정말 열악했지만, 이런 병원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사이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기다리는 동안 옆에 앉아 있던 소녀가 어디서 왔냐고 영어로 물어보았다. 짧은 영어지만 18살이고 아직 미혼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해주며 한국을 아냐고 물어보았는데 한국은 모른다고 했다. 예수님을 믿냐고 물어보았더니 믿는다고 했다. 그 대답이 어찌나 감동이 되었는지 모른다. 학교에 다녔기에 영어를 잘했다. 이곳 학교에서도 3학년 정도부터 영어를 배운다고 했다. 이곳 산속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케냐의 기독교 인구가 80%라고 하는 것이 믿어졌다.
보건소 촬영으로 이번 선교 촬영은 마무리되었다. 목사님께서 힘드셨을 텐데 계획대로 삼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 나머지는 방송국에서 편집만 잘하면 될 것이다. 촬영 기간 동안 점심은 늘 포장해 온 뻣뻣한 샌드위치로 대신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식당 정원에 피어있는 배롱나무 닮은 꽃
식당에서 먹은 뷔페 음식
오늘 점심은 처음으로 아프리카 식당에 가서 먹었다. 식당 옆에 나무로 깎아서 만든 동물과 수공예품을 파는 목공가게가 있었고,정원에 꽃들도 많이 피어 있었다.배롱나무 꽃과 비슷했는데 모양은 같은데 색깔이 다른 꽃이 피어 있었다.
식당은 호텔 아침 뷔페처럼 몇 가지 음식이 놓여있었다. 옥수수 가루로 만든 백설기 같은 떡이 아프리카 전통음식이라고 했다. 별맛은 없었다. 치킨처럼 생긴 양고기 구이와 샐러드 등 몇 가지 음식을 담아서 먹었다. 호텔에서도 수박이 매일 나왔는데 이곳에서도 수박이 나왔다. 아프리카 수박은 물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약간 푸석한 느낌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케냐 오실리기 월드비전 사업장에 들렀다가 시간이 조금 있다며 탄자니아 국경 지대에 가 보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에 월드비전 코디로부터 주의 사항을 단단히 들었다. 탄자니아 국경은 비자 없이 걸어서 넘을 수 있는데 수공예품을 파는 원주민들이 끈질기게 따라다닌다고 했다. 일부러 끼워주며 돈을 달라고도 한다고 했다.실제로 가보니 계속 따라다니며 물건을 팔려고 했다. 하나 팔아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주의 사항을 들은 터라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탄자니아와 케냐가 마주하는 국경
탄자니아 국경을 알리는 표지판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차로 조금 이동한 다음에 다 같이 탄자니아를 걸어서 이동했다. 옛날 우리나라 5,60대 풍경 같았다. 탄자니아와 케냐 국경이라는 곳에서 잠시 앉아서 탄자니아에 왔음을 느껴보았다. 잠깐이었지만 탄자니아 땅을 밟았다는데 모두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 탄자니아에도 갔었어."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그래도 귀한 경험이었다.
탄자니아에서 케냐로 돌아오는 길에 길 옆으로 보이는 세계 최대 도심 빈민촌 키베라를 지나게 되었다. 면적은 나이로비의0.3%지만, 나이로비 인구의 60%가 이곳에 거주한다고 한다. 차가 주차했을 때는 문을 열지 말라고 해서 달리는 차 안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이로비도 빈부격차가 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많이 피곤해서 잠시 쉬어야 했다. 이제 내일 오후면 케냐를 떠날 텐데 뭔가 아쉬움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곳인데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니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관광이 아니고 구호활동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