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드리 밤나무 아래서 그냥 줍기만 하면 되는 밤 줍기 체험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먹거리 중 하나가 밤이다. 교회 제2성전 뒷산에는 아름드리 밤나무가 수십 그루 된다. 밤나무 키가 커서 흔들 수도 없고 밤을 딸 수도 없다. 그저 떨어지는 밤을 주울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 추석 연휴 첫날과 다음 날 이틀 동안 성전 뒷산을 개방하여 성도님들에게 자유롭게 밤을 주워 가라고 했다. 대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밤을 너무 많이 줍지 말고 한 봉지 정도만 줍는 것이 약속이다.
오랜만에 주워 보는 알밤, 보물이 따로 없다
나는 강릉이 고향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시던 아버지께서 내 장래를 걱정하셔서 외갓집이 있는 강릉으로 나를 전학시켰다. 그때가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외갓집 뒤쪽에는 동산이 있었는데 밤나무와 감나무가 있었다. 가끔 뒷산에 올라가서 떨어진 밤도 줍고 감도 주워오면 외할머니께서 좋아하셨다. 벌써 50년 전의 일이다. 오랜만에 밤을 주우러 간다고 생각하니 전날부터 설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조금씩 내려서 밤을 주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비옷을 챙겨 남편과 출발했다. 성전은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인데 다행히 가는 동안 비는 그쳤다. 밤을 주우러 온 성도님들 복장도 가지각색이다. 장갑을 끼고 운동화나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쓴 사람들이 손에 봉지와 집게를 들고 밤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나도 밤송이에 찔리지 않으려고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왔다. 오늘 목표는 한 봉지다.
"여기 밤 있어요. 밤이 많이 떨어졌네요."
"에고, 벌레 먹었네. 벌레 먹은 밤이 많으니 잘 보고 주우세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다. 눈을 크게 뜨고 밤이 있는지 살피는데 알밤이 그냥 떨어진 것도 있고 밤송이 채로 떨어진 밤도 있었다. 집게로 밤을 줍고 밤송이 속에 있는 밤도 집게로 꺼냈다. 벌레 먹은 밤도 많아서 알밤 줍는 것이 꼭 보물찾기 하는 것 같았다. 봉지에 밤이 늘어나는 만큼 보물찾기 재미도 솔솔 늘어났다.
쌍둥이 손자, 생애 첫 밤 줍기
밤 줍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어서 초등학교 1학년인 쌍둥이 손자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밤을 줍다 보니 손자들도 조심하면 밤 줍기 체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가을 현장 체험학습(소풍)으로 고구마 캐기나 땅콩 캐기, 밤 줍기 등을 하였는데 요즘도 하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안전 문제 때문에 현장 체험학습이 많이 줄어든 걸로 알고 있다.
밤 줍기를 멈추고 내려가서 아들에게 쌍둥이 손자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긴팔, 긴바지에 운동화나 장화를 신겨서 오라고 했다. 이럴 땐 아들과 가까이 사는 것이 좋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손자들 목소리가 신났다. 20분 정도 걸려서 쌍둥이 손자가 왔다.
"지우 연우, 밤송이 손으로 만지면 될까?"
"안 돼요. 가시에 찔려요."
"밤도 손으로 줍지 말고 요 집게로 집어야 해."
"알았어요, 할머니."
"넘어지면 손에 가시가 들 수 있으니 뛰지 말고 할머니 따라다녀야 해."
단단하게 약속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산에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며 밤을 줍는데 길에 밤송이가 정말 많았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산으로 올라갔다. 조금 올라갔는데 지우가 밤을 먼저 발견하고 "밤이다!"를 외쳤다. 여러 사람이 이미 줍고 지나간 길인데도 밤나무가 크고 많다 보니 그사이에 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오늘 목표는 밤 10개씩 줍는 거였는데 길 따라 한 바퀴 돌다 보니 10개를 훨씬 넘게 주웠다. 산에는 밤 말고도 여러 가지 관심거리가 많았다. 길옆에 예쁜 버섯이 있어서 AI 제미나이에게 라이브로 물어보았더니 '독 흰 갈대 버섯' 같다며
절대 만지거나 드시면 안 됩니다. 야생 버섯은 전문가가 확인해주지 않는 한 무조건 독버섯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라고 하였다. 산에는 이것 말고도 버섯이 몇 종류 더 있었는데 눈으로만 보고 지나왔다. 산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체험의 장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미니 동물원에 갔다. 제2 성전에는 몇 가지 동물이 있다. 토끼가 몇 마리 있었는데 풀을 주자 손자 앞으로 토끼가 다가왔다. 풀 먹는 토끼가 귀여운지 손주는 토끼 곁을 떠나지 않았다. 미니 동물원에는 공작새가 구석에서 알을 품고 있었는데 공작새까지 구경하는 행운을 얻었다. 나도 공작새가 알을 품고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닭이 알을 품는 것처럼 공작새도 알을 품고 있었다. 밤 줍기도 좋았지만 손자들에게 동물 보는 것이 더 즐거워 보였다.
가을 산에서 나는 보약, 밤 이렇게 보관하세요
주워온 밤은 꽤 많았다. 물에 담갔을 때 물 위에 뜨는 것은 벌레 먹은 거라서 버려야 한다. 벌레 먹은 것은 꼭 골라내고 밤을 물에 여러 번 깨끗하게 씻어서 물기를 제거하고 하나씩 행주나 키친타올로 물기를 닦아준다. 켜켜이 키친타올이나 신문지를 넣어 습하지 않게 통에 담아서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 오래 먹을 수 있다. 먹을 때 꺼내서 삶아서 먹거나 깎아서 생밤으로 먹으면 된다. 가끔 집에서 전기밥솥에 약밥을 만들어 먹는데 껍질을 벗겨서 약밥에 넣어 먹으면 좋다. 우리 집은 껍질을 조금 벗겨서 애어프라이어에 구워서 먹기도 한다.
밤은 몸에 좋은 음식이다. 옛날에는 산에서 나는 보약이라고도 하였다. 탄수화물이 많아서 에너지를 보충해 주고, 칼륨이 많아서 혈관관리(고혈압 관리)에도 유익하다. 비타민 C가 풍부해서 감기 예방이나 피로회복 등 면역 강화에도 좋고 뼈건강, 변비 예방,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한다. 가을에 꼭 필요한 먹거리다. 무슨 음식이든 몸에 좋다고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기에 적당히 먹어야 한다.
오늘 나도 오랜만에 밤을 주웠고 쌍둥이 손자도 처음 알밤 줍는 체험을 하였다. 나는 어릴 적 추억을 꺼내보았고, 쌍둥이 손자는 알밤 줍는 추억을 쌓았다. 주워온 밤은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졌다. 우리 집에서 겨울까지 귀한 간식이 될 거다. 쌍둥이 손자와 주워 온 밤은 엄마에게 자랑하라고 쌍둥이네도 보냈으니 삶아서 엄마와 외할머니와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 추석연휴 첫날, 쌍둥이 손자와 추억 하나를 쌓은 행복한 주말이었다. 올해 추석 연휴는 열흘이나 된다. 남은 추석 연휴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란다.
* TBN 교통방송 '저출산 극복 캠페인' 녹음에 참여하였습니다. 10월에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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