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삶이 예술'이라는 김용택 에세이 <아침 산책>을 읽고
2022년 8월 말에 42년 6개월 동안 몸 담았던 교직에서 퇴직하고 자유인이 되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글 쓰며 제2인생을 시작했다. 문예지에 시인으로 등단하고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나는 나태주, 이해인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두 분 시인처럼 어렵지 않은데 읽고 나면 감동되는 시를 쓰고 싶었다.
2023년 새해가 되며 매달 첫날에 좋아하는 시 한 편을 필사하고, 내가 활동하고 있는 브런치에 글을 발행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시인인 이해인, 나태주 시인의 시를 필사하다가 김용택 시인의 시를 만났다. 이해인,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따뜻하고 편했다. 그때부터 김용택 시인의 시를 좋아하게 되었고, 시를 찾아서 읽게 되었다.
김용택 시인은 1982년 섬진강을 담은 시로 등단하고, 시를 쓰며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다. 초등학교 교사로 퇴직했으며 지금도 그곳에 살며 시를 쓰신다. 그의 시 대부분은 섬진강을 배경으로 하여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이 있다. 시집으로 <섬진강>, <모두가 첫날처럼>, <나비가 숨은 어린 나무> 등 여러 권을 출간하셨다.
나태주 시인도, 김용택 시인도 초등학교 교사로 살며 시인이 되었고, 퇴직 후에도 꾸준하게 시를 쓰신다. 나도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했는데 현장에 있을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시를 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시도 쓰고, 동시도 썼으면 나도 시집 몇 권은 냈을 텐데 후회가 된다. 퇴직하고 틈틈이 쓴 시와 동시를 책으로 출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침 산책 나간 것처럼
<아침 산책>은 김용택 시인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담은 에세이다. 그해 1년 동안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쓰기로 하고 쓴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시인이 쓴 에세이는 얼마나 따뜻할까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제목부터 참 편안하다. 에세이지만 시처럼 아름답게 읽힌다.
글은 '그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넉 장으로 되어있다. 글 한 편 한 편이 길지 않고 어떤 것은 시처럼 짧은데 계절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글을 읽으며 나도 올 한 해 일기처럼 매일 글을 쓰고 싶어졌다. 사계절을 느끼며 글을 쓰면 일상이 얼마나 즐겁고 기대될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바람이 너무 냉랭했다. 코끝이 찡했다. 눈물이 팽 돌았다. 나는 햇살 속에 봄이 들어있다고 했다. 딸은 바람 속에 봄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봄바람은 처녀 죽은 귀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봄바람은 뼛속까지 사무친다고 했다.
-'그해 봄' 중
살결에 닿는 아침 공기가 달라졌다. 풀벌레 우는 소리도 밤에 더 요란해졌다. 섬돌 아래 귀뚜라미는 또렷하게 울며 자기 리듬을 찾는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해 가을' 중
매일 아침 산책하듯 하나씩 꺼내서 글을 읽으면 올해 사계절을 먼저 느끼게 될 거다. 아직 겨울이지만, 봄도 여름도 가을도 미리 만날 수 있다. 마치 사계절을 미리 선물 받은 것 같다. 저자는 '삶이 예술이다.'라고 한다. 올해 새로 찾아올 봄과 여름과 가을이 '예술'처럼 다가오길 기대한다.
상추씨를 뿌리는 저자의 아내, 뽀얀 쑥, 돌미나리, 쑥부쟁이 등 나물을 뜯어다가 나물을 만드는 아내 이야기에서는 저자의 아내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필사한 시 '그이가 당신이예요'가 거저 나오지 않았음을 느낀다.
마을이 학교인 삶
마을 공부는 지루하지 않다. 마을 공부를 통해 공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저자는 평생 인생살이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살았다. 대신 마을 공부를 통해 공부한 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마을 공부는 자연 속에서 살며, 작은 마을의 일들을 보고 배우며 살아가는 저자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은 공부를 따로 하지 않는단다. 마을이 곧 학교였다.
글 속에 자주 등장하는 '종길 아재'도 '점순 어머니'도 저자의 마을 공부 스승 중 한 명이 아닐까 싶다.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이름이 참 정답다. 밭을 매고, 콩밭 위 전깃줄에 앉아있는 콩잎 먹는 비둘기를 쫓고, 마늘을 캐며 계절에 맞추어 농사짓는 종길 아재가 나에게도 다정한 아저씨처럼 다가온다. 밭에서 자주 만나는 점순 어머니도 그 옛날 나의 엄마 같다.
글을 읽다 보면 자연 속에서 자연을 친구 삼아 사는 저자는 인생살이 계획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 사는 나는 올 한 해를 어떻게 살까 새해가 되면 늘 계획을 세운다. 올해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인 일자리도 신청했다. 운동도 꾸준히 하며 건강도 챙기려고 한다.
나는 시 쓰기 좋은 마을에 산다. 한가하고 고적한 풍경 속을 한 발 한 발, 발걸음 소리를 세어 가며 나는 세상의 길을 걸으리라.
저자처럼 매일 강가에서 아침 산책하고, 텃밭도 가꾸고 새소리, 벌레 소리를 벗 삼아 글 쓰고 살다 보면 인생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지 않아도 1년도, 남은 인생도 물 흐르듯이 지나갈 것 같다. 마음 건강, 몸 건강이 저절로 따라올 거니까. 저자의 글이 여유 있고 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가을에 저자는 아내와 밤을 주우러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으로 갔다.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으나 많이는 줍지 않고 둘이 삶아 먹고 까먹고 찰밥 해 먹을 만큼만 주워 왔다. 다람쥐나 다른 짐승들 먹게 두고 온 거다. 자연과 함께 사니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밤 줍는 글을 읽으며 작년 가을에 밤을 주우러 가서 하나라도 더 주워오려고 욕심부렸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내가 한 일만 글로 쓰려고 노력한다.
저자는 '생각이란 건 많이 빗나간다.'라고 말한다. 공감되는 말이다. 나도 글 쓰는 사람이라서 내가 한 일은 술술 써진다. 저자가 쓴 글을 읽다 보면 마치 그림을 보듯, 내가 그곳에 함께 있는 듯 상상이 된다. 글을 부풀리거나 미사여구가 없는데도 아름답게 읽힌다. 내가 경험한 것을 글로 쓰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책 속에도 저자가 찍은 사진이 들어있다. 주로 집 근처 자연을 찍은 사진이다.
이 책을 읽으면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던 추억이 떠오른다. 올해 사계절을 미리 만나고 싶은 분, 어릴 적 살던 고향을 추억하고 싶은 분,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분, 정말 시 같은 에세이를 읽고 싶은 분 모두에게 추천한다. 읽고 나면 평범한 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새해에 읽으면 좋은 책이다.
인생은 예외가 없다. 겪을 일 다 겪어가며 산다. 읽고 나면 올 한 해 욕심부리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여유 있게 살고 싶을 거다. 나도 올 한 해는 '욕심부리지 말고 겸손하게 살며, 이웃도 돌아보고, 하고 싶은 일 즐겁게 하며 살자.'를 삶의 방향으로 세웠는데 <아침 산책>을 읽고 나니 결심이 더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