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 당시, 인천과 부천의 국회의원 출마자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2월부터 4월까지 약 두 달간 30명이 넘는 정치인을 만났으니, 짧은 기간에 다양한 경험치를 쌓을 수 있었다.
국회의원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거만하고, 안하무인이며, 영화처럼 시민을 깔볼까? 적어도 내가 본 의원들은 아니었다. 시민에게 한발 더 나아가려 노력하고, 자신의 진심을 전하려 어떻게든 나아갔다.
문제는 이 모습들을 선거 전에 확인했다는 거다. 선거 기간에는 누가 대중과 싸우겠는가. 기분 나쁘더라도 참고, 억울하더라도 눈물 한 방울 흘리고 넘어갈 시기다. 난 그들의 가장 약한 시절의 모습만 보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여튼 난 선거철을 맞아 대외적으로 나선 국회의원과 사진 찍는 데 재미 들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고등학생까지 알만한 정치인과 초선으로 밝은 미래를 그려나가는 정치인을 담아냈다.
나중에 내가 무슨 일을 할지 몰라도 정치인과 찍어놓은 사진은 어디든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 함께 찍은 정치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2명이 있다. 사진에 나온 송영길 전 국회의원. 인천시장을 지냈고, 민주당 당대표로 대선을 이끌었다. 현재 독일에서 유학 생활 중으로 알고 있다. 남은 한 사람은 바로 다음 글에 올릴 것이다.
송영길은 21대 총선에서 인천 지역구를 이끌었다. 그의 덕인지 13개 지역구에서 11석을 획득했으니, 완벽한 대승을 거둔 것이다. 선거 당일, 난 대승을 거둔 민주당 진영에서 그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선거가 거의 끝나갔지만, 인천 연수 을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아 민주당의 많은 국회의원과 기자들이 무한정 대기했다. 막간의 시간이 남자, 하던 일을 마저 했다. 국회의원이 잠시 화장실을 가거나 할 때, 다가가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몇 명의 국회의원과 사진을 찍고, 그다음 남은 건 송영길뿐이었다. 타이밍을 노리지만, 그는 쉬지 않고 전화를 받아 다가갈 수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며 선배가 물었다. 내가 송영길과 사진 찍고 싶다고 하자, 선배는 잠시 기다려 보라며 그에게 다가갔다.
송영길과 선배, 나 사이의 거리는 불과 5m 정도였다. 선배는 그에게 "후배가 의원님과 사진 한 장 찍고 싶다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라고 고개를 숙였다. 절로 고개가 숙어질 정도였다. 아무리 좋은 선배라도 후배를 위해 부탁하긴 쉽지 않다. 선배의 정중한 부탁에 송영길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으며 말했다. "꼭 해야 해?“
가슴이 찢어졌다. 내 알량한 부탁 때문에 선배는 고개를 숙였고, 처참히 거절당했다.
하지만 선배는 나를 한번 슬쩍 보고 송영길에게 다시 물었다. "후배가 의원님을 참 좋아해서요. 어떻게 한 번 안 될까요?" 너무 고마웠지만, 미안함이 더욱 커 도망가고 싶었다. 그때 내 미안함이 분통함으로 바뀌었다. "아, 피곤한데. 어딨어?" 난 아직도 그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는 계속 구시렁거렸다. "선거 때문에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잠도 못 잤는데"라며 말을 끌더니, 이내 나와 어깨를 마주했다. 너무 감사한 선배는 직접 사진 기사 역할을 도맡았다. 한껏 힘을 끌어올려 "자~ 찍습니다!"라며 2컷을 담아줬다.
피곤함을 이기고 결국 나와 사진 찍어준 송영길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안타까움도 남는다. 조금만 더 친절했다면 어땠을까. 약간의 피곤함을 이기고 선배와 나를 진심으로 대했으면 어땠을까.
선배와 난 모종의 이유로 당시 언론사에서 퇴사했지만, 우린 지금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서로의 마음이 이어져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혹자는 이 글을 읽고 나를 지탄할지 모른다. 왜 애꿎은 사람을 모함하냐고. 여러분은 어떤 선입견도 없이 그를 대하길 바란다. 난 단지 보고 들은 것을 전달할 뿐이다.
* 만나고서 느낀 세 줄 포인트
결국 송영길 의원은 돈다발 사건으로 강제 정계 은퇴를 당했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어떤 사람이었다고 하기 전에
인품이 떨어져 보인 것은 사실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