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퇴사계획 - 14

대답 없는 그들에게

by 채움

애초에 내 글의 제목을 기획자로 퇴사계획으로 정한 것은,

잘 퇴사를 하기 위해서는 회사생활도 취직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누구나 꿈꾸는 경제적 자유를 생각하며 제목을 지었다.


하지만 가수도 노래제목대로 된다는 이야기가 있던가.

나도 진짜 기획하면서 퇴사계획을 짜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까지 취업한 곳들 중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1. 내가 먼저 회사 문을 두드린 경우 (공고도 없이)

2. 회사가 내 프로필을 보고 제안을 한 경우

3. 회사 공고를 보고 지원한 경우

이렇게 세 가지의 경우이다.


다시 회사를 다니기 위해 나는 1번을 선택했다.

내가 그동안 끊임없이 분석했던 경쟁사 문을 두드려 보기로 한 것이다.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레퍼런스 서치'라는 과정이 필수다.

통상적으로 데이터 기반 드리븐을 생각하는 회사들이 있는데,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만큼 데이터를 축적하려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저장소가 필요하고 비용문제로 이어진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연차가 많은 기획자의 직관에 의지한다.

그리고 기획자의 직관은 레퍼런스 서치 단계에서 나온다.


우리 회사의 제품도 써보지만, 남의 회사의 제품도 써본다.

갖가지의 제품을 쓰다 보면 이런 부분은 부럽다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경쟁사에서는 우리 회사 제품을 보며 이렇게 빨리 기능이 추가된다니 부럽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만큼 경쟁사들은 서로서로 부러워하는 부분들이 있다.


내가 문을 두드린 회사도 부러운 부분이 있어서였다.

수평적인 분위기, 술을 먹지 않아도 되는 영업, 빠른 제품 개발,

프레시한 화면 컬러, 기술을 구현하는 실력 등등

그러나 한 가지, 기획자가 기획한 것 같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나는 회사에서 늘 '이 제품엔 기획자가 없어요'라는 말을 했다.

모든 게 완벽한 제품이지만 기획자가 없기에 정돈된 느낌이 없었다.

기획자들은 기획자가 있는 제품과 없는 제품을 단번에 구분 가능하다.


그 회사는 월등한 기술이 있었다.

특허도 여러 개 있었고,

좋은 소프트웨어라는 GS인증도 많이 받았다.

내가 간다고 해서 산업스파이가 아니란 얘기다.

기술력이 더 나은 곳으로 가서 내가 아는 기술은 다시 배워야 한다.

다만, 더 정돈되고 더 계획적인 화면과 편의성을 기획할 뿐이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그들.


요즘엔 소셜플랫폼을 통해 인담자와 커피챗을 할 수 있다.

소셜플랫폼에 찾아도 없다면 채용문의를 활용할 수도 있다.


나는 아주 초창기 신입 때부터 이 방법을 자주 썼다.

서류 발표가 언제 나는지, 인터뷰는 몇 대 몇인지 이런 것들을 물으라는 게 아니다.

'실제적으로 업무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은 무엇인지?'

'지금은 채용이 없는데, 자격을 갖춘 자가 있을 경우 채용할 계획이 있는지?'

'내가 회사에 관심이 있어 조사해 봤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직무는 신설계획이 없는지?'

나와 회사가 공통으로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는 이런 방법을 통해 지원자를 찾는 것을 선호했고,

그중 몇 곳에서는 조건이 맞아 입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답이 없다.


그렇게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이고, 진취적으로 일하는 듯 한 그 회사에서

메일도, 커피챗 요청도 아무것도 대답이 없는 것이다.




시니어가 되고부터 면접에 자주 참여했다.

때로는 같이 일할 동료의 면접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팀원 면접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타 부서의 결정을 돕기 위해 함께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면 면접관으로 참여한다 하더라도 언젠간 나도 저 자리에 있겠지 하는 마음이 든다.

지원자의 떨리는 모습을 보면서 편하게 물을 권하기도 하고,

함께 일하는 모습을 서로가 그릴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역으로 내게 커피챗을 청해 오면 친절한 답변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니.

마치 짝사랑을 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


그 회사에 관심을 가지니 온갖 광고가 떠서 더 괴롭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대답 없는 그들에게가 아니라,
여전히 기획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정리하려 애쓰는 나 자신에게.

"그 회사가 아니라면,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이렇게 대답 없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만다.

작가의 이전글기획자의 퇴사계획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