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을 견디는 방식
"팀장님, 돌아오지 마세요."
퇴사자가 더 발생했다.
동료들이 간간히 소식을 전해주는데,
내가 휴직하는 동안 회사 상황이 많이 변했다고 했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천천히 하려고 했던 포트폴리오 정리나
각 잡 플랫폼에 이력서나 자소서 수정,
이력서 오픈이 더 급해졌다.
원래 이렇게 부지런을 떠는 성격이 아닌데
이번엔 뭔가 조급한 마음이 날 움직이게 한다.
어?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려고 내 피그마 스페이스를 켰는데
에딧(edit) 권한이 막혀있다.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제는 나도 ‘바깥 사람’이라는 뜻일까.
이력서를 수정하고 완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헤드헌터로부터 색다른 제안이 도착했다.
통상 잡 사이트에 올린 JD를 복사+붙여넣기 한 것과는 내용이 달랐다.
조건도 꽤 좋았다.
어차피 지금 뭐 잃을 것도 없는 상황인데,
내용까지 솔깃한 제안이면
'바로 수락'
수화기 너머로 조급함이 느껴졌다.
빨리 기획자를 뽑아야 하는데,
여러 조건에 해당하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내 이력서를 발견해 바로 제안한다고 했다.
속사포처럼 얼마나 좋은 조건인지 설명하셨다.
그리고 바로 면접 날짜가 잡혔다.
분명 잃을게 없는 상황이라,
한 번 보자 했던데서 유턴을 하고 싶어졌다.
나는 지금 ‘기획자 → PM → TPM’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프론트만 보는 기획자가 아니라,
백엔드 구조와 인프라 흐름도 읽어내며 설계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내가 지향하는 기획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번 제안은 기술과 운영보다는
브랜드, 마케팅, 콘텐츠 중심의 역할이었다.
누군가는 "비슷한 기획이잖아" 할지 모르지만,
그 ‘한 끗 차이’가 지금 내게는 결정적이었다.
누군가는 한끗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한 끗이 크게 다가왔다.
예전에 썼던 글에서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어떤 일이든 직업 윤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이란 건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지켜야 할 도리도 있다고 믿는다.
직접 채용을 해본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다.
지원자를 한 명 뽑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공, 그걸 알다 보니
‘일단 입사해서 아니면 나가자’는 방식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가볍게 던진 "일단 보고 결정하자"는 말이
현업에선 결코 가볍지 않다.
나도 누군가의 팀원이자, 누군가의 리더였기에
이런 선택은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이 제안과 나의 커리어 흐름, 직무 방향을 정리해봤다.
이렇게 뭔가에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고민에 잠긴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조급함을 달래는 선택보다,
내 방향에 맞는 길을 고를 때라고.
아직 나는 퇴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와는 조금의 거리를 두고 있다.
기획자에게 피그마 권한도 막힌 마당에
어쩌면 합법적인 고민의 기간이 생긴지도 모른다.
이렇게 귀한 기간을 그냥 보낼 순 없지.
나는 여전히 다음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고,
때를 위해 내 안의 기준을 지키는 중이다.
나에게 맞는 자리란, 조건만 맞는 곳이 아니라
내 방향성과 맞닿은 곳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나를 정돈한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 않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