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했던 경험
허리 통증으로 6개월을 쉬었다.
그 시간 동안 여러 연락이 왔다.
친분 있는 헤드헌터는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라며 일어나야 한다고 했고,
같이 일하던 상사는
풀타임이 어렵다면 아르바이트라도 해보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말들은 나를 다시 일으키진 못했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 손꼽히는 IT 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인프라 기획.
새로운 분야였다.
그전 회사에서도 시스템을 기획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백엔드에 대한 지식을 조금 알긴 했지만,
이번엔 좀 더 본격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겠다 싶었다.
면접부터 입사까지 뭐 하나 걸리는 것 없이 이루어졌다.
6개월 만에 다시 출근이었다.
새 회사, 새 직무라니 정신 차릴 겨를이 하나도 없었다.
날 채용한 상사와 여러 부서에 인사 다니고,
사내의 여러 시설을 견학 다녔다.
신입사원 입사 교육도 받고 정신 차려보니 6시였다.
정신없던 첫날과는 달리 한 일주일은 고독했다.
회사의 배려로 엑슈어라는 제품을 혼자 공부만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기획 툴도 그릴 것이 있어야 연습을 하지 않겠는가.
1평 내에서 꼼짝 없는 감옥생활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가장 즐거운 시간은 있었다.
개발팀과의 매일 아침 30분 스터디.
동종업계 트렌드, 인프라 구조, 개발에 대한 이야기.
처음엔 외계어 같던 단어들이
한 달쯤 지나자 조금씩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액슈어의 빈 화면에
내가 그릴 그림이 하나둘 떠올랐다.
내 역할은 인프라 관제 기획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IT기업의 인프라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인프라는 4-5가지 각 부서에서 원하는 툴로 관제했는데,
당시 나는 이 툴을 하나의 우리 회사 툴로 만드는 일을 했다.
앞서 한 일들이 인프라 관제라는 것이었구나 배우면서
데이터독을 비롯한 동종업계 트렌드 분석부터
벤치마킹을 통한 실제 기획안 작성까지 시작했다.
당시에도 데이터독은 모든 인프라 관제사에서 주목해야 할
가장 트렌디하고 강력한 제품이었다.
어디든 그렇듯
기획자의 일은 끊이질 않았다.
분석 > 기획 > 개발이 되면 또 분석 > 기획 > 개발..
인프라 관제가 한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싶으니
관제 솔루션에 사내 메신저도 붙이고, 슬랙도 붙이고,
지원하는 범위도 DB, APP, AWS 등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렇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배우고 성장하고,
내가 만든 기획안으로 소통하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고민하고,
마침내 풀어냈을 때 희열이 느껴졌다.
이제 막 적응하려는 찰나
또 하나의 제안이 나를 붙잡았다.
해외 파견.
3~4년 이상, 기약 없는 주재원 근무.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면접 때 해외근무 여부를 묻지 않았구나.’
내가 이직 전 무너졌던 이유,
과도한 업무와 해외 출장.
그 원인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 뒤로 이어진 건
2~3시간씩 이어지는 릴레이 면담.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간다”는 말만 하면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는 것인지, 영영 가는 것인지.
회사는 나에게 한 달간의 고민의 시간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