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퇴사계획 - 05

0원, 그리고 다시 회사였다

by 채움

앞 회사에서 위험국가에

기약도 없는 파견을 요청받았다.

그 시기, 여러 개인사도 겹쳤다.

주 7일, 하루 24시간을 일에 쏟아야 하는 상황이

솔직히 버겁기도 했다.

결국 '다시 돌아오라'는 듣기 좋은 작별인사로

회사를 떠났다.


퇴사 고민을 하면서 마음을 정했던 것 같다.

다시는 회사생활을 하지 않기로.

내 사업체를 꾸려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이른 시기지만 당시에는

무엇이든 겪어봐야 했다.

주변에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건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성실하게 하면 된다'

'작은 일들이 쌓이면 완성된 프로젝트가 된다'

긍정적인 생각만 하기로 했다.


그간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 조금과

투자를 받아 프로덕트를 기획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기획안을 프로토타입 레벨까지 디벨롭하는 것은

늘 하던 일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다.


개발은 전에 일하던 회사와 함께 했다.

그들의 플랫폼을 활용하여 코웍했다.

순조롭게 프로덕트 오픈까지 마쳤다.


하지만, 사업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채용, 회계, 영업, 마케팅, 물류..

사실상 사업에 관련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 몫이었다.

직원이 있어도 내가 모든 것을 확인해야 했다.

24시간 풀근무를 두려워했던 내가,

24시간이 모자랐다.


그래도 그럭저럭 할만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업체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겪는 스트레스가 없었고,

갑작스럽게 예정에 없던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도 없었고,

생각지도 못한 근무지 이동이라던가를 걱정해야 하는 일도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만저만 상승하던 매출이 먼저 줄어들기 시작했다.

거래처들도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곳이 생겼다.

다들 신규로 도입하려고 했던 내 프로덕트를

도입할 수 없는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었다.


적은 수의 직원이라도 매일 함께 출근하려고 하면

내가 직접 회사부터 그들의 집까지 데려다주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재택근무를 시켜야 했다.


우리 회사는 버틸 만은 했지만,

투자만으로 사업체를 유지할 순 없었다.

나를 믿고, 내 프로덕트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것이 있었다.

한 번의 이탈 없이 함께 동고동락한

직원들에게도 많이 챙겨주고 싶었다.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3년을 꼬박 투자했던 사업체를 정리하고,

투자자들과 직원들에 남은 이익을 정산해 줬다.


남은 건 다시 0원.

그리고, 다시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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