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가 꼭 듣고 싶은 이야기
운영하던 사업체를 정리한 후
회사로 돌아가는 것은
훨씬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다.
연봉 기준을 무엇으로 할 지,
회사의 매출증빙을 어떻게 할 지,
여러 기획 직무에서도 어떤 기획을 했다고 해야 할 지
다시 시작하는 기획자로 돌아간 것 같았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는 동안 변화도 있었다.
기획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기획툴이
PPT나 액슈어 등에서 피그마로 바꼈다.
사용하는 방법은 비슷했지만,
디테일은 새로 알아가야 했다.
무엇보다 포트폴리오 작성법도 바껴있었다.
'3년 동안 이렇게나 바뀌었다고?'
싶을 만큼, 너무 많고 빠르게 달라져 있었다.
그래도 방법이 있겠는가.
0원인데.
실무위주의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고,
이력서부터 다듬었다.
채용 플랫폼마다 이력서를 오픈하고
관련된 공고마다 지원했다.
개인정보 보호 따윈 없었다.
작은 회사부터 큰 회사까지 가리지 않았다.
외국계 회사도 해외출장이 없다면 지원했다.
조금 지나니 회사들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웬만하면 경험으로라도 다 참석하려고 했다.
3년 간의 공백 때문에 감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이 때 만난 회사들 중에는 정말 가고 싶은 곳도 있고,
'이렇게 운영이 된다고?' 싶은 회사들도 있더랬다.
(면접에 대한 얘기도 따로 적어볼 예정이다.)
될 것 같으면서도 안돼서 미치겠던 그 때
한 헤드헌터분께 연락을 받았다.
당연히 회사를 소개하려는 연락인데
이 분은 다른 여타 헤드헌터들과 달랐다.
적극적이고 자주 연락을 주셨다.
하지만 그 회사 자체는 너무 고민이 되었다.
조건이
1. 회사는 IT 사업이 처음이다.
2. 기획팀 빌딩이 필요하다.
3. 그런데 나는 팀장 아니다.
4. 모든 커뮤니케이션 영어로 이루어 진다.
대략 이러했다.
우선 IT기획을 이해하지 못하는 회사들을 많이 경험했다.
기획자를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거나,
경영전략을 짜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곳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규로 IT사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회사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 회사는 기획자를 뭘 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있을까' 싶었다.
실질적으로 기획자로 일한 시니어는 나 뿐이었다.
때문에 기획 팀 빌딩의 역할도 나밖에 할 사람이 없었다.
사업을 하면서 팀 빌딩을 했지만, 회사에서 팀빌딩의 경험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팀장이 아니다?
그럼 이력서 검토, 면접을 경험 없는 자가 하고
그가 채용한 자를 내가 관리해야 했다.
이미 사람 관리에서 많이 데여서 쉽게 결정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영어로 한다고 했다.
한국어로도 매일 같이 입씨름에 지치는데,
이걸 영어로 한다 싶으니 결론은 거절이었다.
근데 이 분이 포기를 안 하셨다.
매달 전화미팅으로 회사에 대한 이야기와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회사는 아직 나를 적합한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고
정말 기획자로써 듣고 싶은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그렇게,
다음 행선지가 결정되었다.
나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