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퇴사계획 - 08

퇴사했고, 이직도 안 했다

by 채움

헤드헌터를 통해 입사 후 근 시일 내 퇴사나 이직을 하게 되면

먼저 그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온다.

헤드헌터는 채용을 대행해 주고,

일정기간 (수습기간 등) 이내에 그 사람이 퇴사를 하게 되면

대체자를 뽑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직접 헤드헌터가 되어본 적이 없으니

구체적으로 어떤 계약조건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는 대체로 그랬다.




이 회사에 입사할 때 여러 원하는 조건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연봉이었는데, 이에 대해 회사와 나는 확실히 의견이 달랐다.

나는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회사로 복귀까지 3년을 경력으로 인정받고 연봉을 책정해달라 했다.

회사는 신규 직원 채용에 대한 리스크가 있으니 내가 원하는 연봉보다 조금 낮춰서 계약하고,

다닌 지 6개월이 지나면 실적 및 업무 평가에 따라 연봉 재협상을 통해

연봉을 인상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6개월이 오기도 전에 내가 원하던 연봉에

인센티브와 성과급과 주 4일을 약속하는 회사가 나타난 것이다.


다니고 있는 회사가 있대도, 상관없다고 했다.

내 경력이 이마저마 하대도, 상관없다고 했다.

모든 조건을 긍정적으로 보고 무조건 와 달라고 했다.


솔깃했지만 처음엔 고민이 많이 되었다.

새로 입사하는 회사가 생각과 다를 경우 이른 퇴사를 결정하게 되면,

지금까지 몇 개월 간의 경력을 날릴 수도 있었다.

서류부터 입사까지 지리한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할 수도 있다.

지금 회사는 이미 몇 개월을 일했으니 조금 적응이 되기도 했다.

고민을 하는 동안 회사로 가는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른 퇴사를 결정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헤드헌터 대표님께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제가 차나 식사를 대접해도 될까요?"


대표님은 외국계 기업 채용 관련하여 엄청난 이력이 있는 분이셨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첫인사만으로도 감이 왔다고 하셨다.

그래도 괜찮다고.

정말 괜찮으니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하라고 하셨다.

대신 부담 갖지 말고 종종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하자고 하셨다.

용기가 났다.


그 뒤 제안을 준 회사에 이직 의사를 전달하고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면담을 통해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


회사는 많이 당황했다.

대표는 퇴사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찾아간 나에게

안 그래도 더 깊은 이야기를 위해 만나고자 했는데

어떻게 그 사이에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냐며

대체 어떤 회사를 가는지, 원하는 '기획'이란게 뭔지 캐물었다.


원래 퇴사라는 것은 이런 것.

이후로도 몇 차례 면담과,

협박 같은 덕담과,

붙잡기를 반복한 후에야 정리가 됐다.




그리고 새로운 오퍼를 준 회사를 갔을까?


답은 안 갔다.


퇴사도 다 하고 이직을 하려니 뒤통수가 싸한 거다.

혹시 모르니까 하는 심정으로 채용사이트를 찾아봤는데

듣도 보도 못한 평가가 있는 것이었다.


그 회사는 오너가 개발자 조인트를 찬단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알음알음 인맥을 통해 확인해 보니 진짜였다.

입사를 하루 앞두고 발을 뺐다.


마치 내일이라도 올 것 같던 내가 갑자기 유턴을 하자,

인사담당자가 이유를 알 것 같으니 솔직히 말해보라 했다.

솔직히 말하라면 다 하는 나.

"대표님이 조인트 차신다고..."

하니 한숨을 푹 쉰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

나는 퇴사를 했고,
새 회사도 안 갔다.
그리고 몰랐다.
혹독한 일자리 찾기의 시작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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