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의 최고봉은 어디일까?

윗세오름

by 민작가


윗세오름은 그 명성이 자자하다. 다른 오름은 몰라도 윗세오름, 영실, 어리목, 만세동산 등은 대개 들어보았을 것이다. 다 윗세오름과 연계된 지명이다. 백록담 다음으로 높은 오름으로 정상이 해발 1700m이며 정상부를 지나 백록담의 남벽까지 가 볼 수 있다. 백록담이 거리상 체력상 시스템상 부담감이 있기에 체력이 좀 되는 분들은 윗세오름을 자주 가고 또 비슷한 연유로 찾는 이들이 많고 나 또한 너무 가고 싶은 오름 중에 하나였다.

작년에 인대 파열될 당시 미리 가려고 준비해 둔 코스들이 있었다; 천아숲길, 사려니숲길 그리고 윗세오름. 다 3시간이상 코스여서 뒤로 빼 놓고 있었는데 반깁스한 다리 덕.택.에 해가 바뀌어서야 가게 되었다. 그래도 기를 쓰고 재활운동을 열심히 해서인지 빨리 회복되고 체력도 더 올라 작년에 비하면 날아다니는 수준이다. 올 봄 날씨가 환상적인 날 드디어 그 유명한 윗세오름을 오르기로 했다. 윗세오름을 가는 코스는 보통 영실코스와 어리목코스 두 가지다. 영실코스는 올라가는 내내 전망이 아름답고 소요시간이 조금 짧은 대신 주차난이 심하다. 반면에 어리목코스는 주차장이 넓고 숲과 계단의 향연 뒤에 오름이 나타나며 1시간 가량 더 소요된다. 처음이니만큼 짧고 아름다운 영실코스로 가기로 했다. 철쭉 시즌과 눈꽃 시즌에는 영실코스 인기가 높아 새벽같이 주차장이 만차가 되곤 한다. 아래 주차장이 또 있긴 한데 주차장에서부터 1시간을 또 걸어가야하니 만만치가 않다. 위세가 대단한만큼 주차부터 신경을 곤두세웠는데 다행히 우리가 가는 날은 철쭉이 피기 좀 전이라 한산한 편이었다.


해발 1280m를 시작으로 매표소를 통과하자마자 조릿대들이 양갈래로 뻗어져있다. 조릿대는 한라산에 서식하는 식물인데 고도가 높은 데에서 자라기에 조릿대가 보이면 지대가 높다고 보면 된다. 옆에 계곡에는 졸졸 물이 흐르고 싱그러운 봄을 맞이하는 산 속을 성큼성큼 올라간다. 백록담을 향하는 오름이기에 내리막은 없다. 계속 계단이고 오르막이다. 탐방로가 넓지 않기에 내려오는 사람이 지나가게 기다리기도 하고, 뒤에서 빨리 오는 사람 비켜주기도 하고, 앞에 느린 사람 추월하기도 하면서 간다. 중간중간 쉼터가 제법 많으니 처음부터 쉬지 말고 초반에 속도를 내서 가는 게 좋다. 위로 갈수록 쉬고 싶지 않아도 쉴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숲길이 끝나면 시야가 환해지며 옆에 절벽을 보면서 오르게 된다. 깎아지르는 듯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처진 병풍바위를 보면서 철쭉의 아쉬움을 달랜다. 뒤를 돌면 서귀포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오름을 오를 때에 힘들지만 뒤를 돌아 내가 걸어온 길과 높이를 실감하면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힘이 있기에 또 앞으로 향할 수 있는 것같다. 그래서 사람은 힘들어도 살아가나보다. 내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을 수록 또 내딛을 수 있는 힘도 강해진다.




절벽 한 켠에 있는 전망대는 절대 지나칠 수 없다. 그 울타리에만 지탱하고 바람을 느껴보라. 그 자리가 고도도 높고 바람길이어서인지 태풍수준의 바람이 분다. 여름같은 날을 제외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세찬 바람 싸다귀를 맞으면 웃음이 난다. 철쭉철에 비바람부는 안개 자욱한 날 가족들과 오른 적이 있었다. 하산하는 길에 바람이 불면 안개가 잠시 걷히며 핑크빛 철쭉들이 모습을 드러내니 흥분도가 극에 달했다. 신랑과 나는 안개가 걷히는 순간마다 탄성을 지르고 사진찍으려 절벽에 달려들고 스스로 그 모습에 깔깔 웃었다. 첫째 딸이 그 모습을 보고 한 마디. “엄마 아빠 미친거 같아.”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는 그렇게 행동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런 날씨에 윗세오름 산행을 겪어보면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어이가 없어서인지 새로운 경험에 흥분이 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탄성이 나오고 웃음이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해 볼 수 있다.



절벽을 지나 구상나무가 무성한 길로 들어서면 ’싸다귀 바람‘이 잦아들고 계단이 줄어들어 몸도 편안해 진다. 좁다란 구상나무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심장을 멎게 해줄 광경이 펼쳐진다. 뻥뚫린 시야에 널따란 들판 위 백록담을 둘러싼 동벽이 갑자기 나타난다. 영실코스나 어리목코스 모두 그 지점에서 감동하고 고생한 내 신체에 대한 보상을 듬뿍 받는다. 봄에는 들판에 철쭉이 만개할 것이며 여름에는 초록이가 가을에는 울긋불긋 겨울에는 하얀 눈이 깔리는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쓰고 싶을 만한 풍경이 될 것이다. 그 감동이 노루샘까지 가는 동안 이어진다. 노루샘은 탐방로 아래에 있어서 지나칠 수도 있는데 꼭 맛보기를 추천한다. 한라산 줄기타고 온 샘이라서인지 내가 힘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달고 시원하다.


노루샘을 지나쳐 광활하게 펼쳐진 탐방로를 걷다보면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달한다. 한국인이 산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이것은? 정답을 잘 지키는 우리는 힘들게 지고 온 라면에 김밥을 충실하게 흡입하고 한숨 돌린 후 하산한다. 하산하면서도 쉼터에 앉아 신선놀이하며 오르내리는 사람도 구경한다. 외국인, 어린아이, 어르신, 젊은 청년 등 다양한 사람이 윗세를 오르내린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올라 감동의 마음을 품고 그 뒤로 몇 번 더 영실코스를 갔는데 다 엄청 궂은 날씨여서 사람구경도 하기 힘들었다. 바람이 거세 절벽에 줄에 매달려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우박을 맞으며 오르기도 하고 비를 억수로 맞아 신발이 호수가 되어 물 위를 걷는 경험도 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이렇게 궂은 날에도 산을 오르고 내리며 내 몸 또한 더 단단해졌으리라. 환상적인 날의 감동을 가슴에 품고 어느 날 문득 또 오른다.


이번에는 또 볼 수 있겠지하는 희망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