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대체하는 것은 실리콘밸리가 아니다

문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자

by 최인준

앞선 글에서 AI에 의한 의사의 대체를 세 개의 병목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대체의 실질적 주도력이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지를 다룹니다. 흔히 빅테크가 주인공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의료 시스템 내부에서 이미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는 보험사-기술 복합체가 더 강력한 동력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이 글이 선형적 예측에서 벗어나 미래 의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변하는 사회와 환경 속에서 각자가 자신만의 해자(moat)를 구축하고, 전략적으로 포지셔닝하는 데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0. 주인공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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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논의는 대체로 하나의 서사를 공유한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가 막대한 자금과 기술력으로 의료 시스템에 진입하고, 의사 집단이 이에 저항하며, 결국 기술이 승리한다는 구도이다. Google, Apple, Microsoft, Amazon이 주인공이고, 의사 집단은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는 보수적 세력으로 그려진다.

이 서사는 주인공을 잘못 캐스팅했을 가능성이 크다.

빅테크의 의료 진입 역사는 실패의 역사에 가깝다. IBM Watson Health는 "AI가 암을 진단한다"는 약속과 함께 출발했으나 부정확한 권고와 의료 현장과의 괴리로 신뢰를 잃고 2022년 매각되었다. Google Health는 축소와 재편을 반복했다. Amazon의 Haven은 JP모건, 버크셔 해서웨이와 함께 대규모 합작으로 시작했지만 3년 만에 해산했다. 공통 패턴은 명확하다. 의료 데이터가 가진 복잡성, 병원-보험-약국이 얽힌 시스템의 구조, 그리고 기술적 우월성만으로는 현장에서 채택이 일어나지 않는 의료의 특수성을 빅테크가 과소평가한 것이다.

의사를 실질적으로 대체할 힘은 의료 시스템 내부에서 이미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는 보험사-기술 복합체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 가장 강력한 사례가 UNH(UnitedHealth Group)와 그 자회사 Optum이다.


1. 데이터의 질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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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의료의 핵심 자원은 데이터이다. 그러나 모든 데이터가 같은 가치를 지니지는 않는다. 빅테크가 가진 건강 데이터는 대부분 소비자 측 데이터다. Apple Watch의 심박수, Google 검색 기록, Fitbit의 수면 패턴. 양은 방대하지만 임상적 깊이가 얕다. 심박수가 높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운동 때문인지 부정맥 때문인지, 부정맥이라면 어떤 약을 썼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Optum이 보유한 데이터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 있다. 보험 청구 데이터는 어떤 환자가 어떤 진단을 받고 어떤 치료를 받았으며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기록한다. Optum Rx를 통한 처방 데이터는 약물 사용 패턴과 부작용을 추적한다. Optum Health 소속 의사들의 직접 진료 데이터는 이 모든 것을 임상 현장의 맥락과 연결한다. 가치 기반 진료 인프라를 통해 수백만 명의 환자를 위험 기반 모델로 관리하고, 수만 명 규모의 소속 또는 제휴 의사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UNH는 미국 최대 민간 보험사로 수천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다.

결정적인 것은 이 데이터들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환자가 UNH에 보험을 가입하고, Optum 소속 의사에게 진료받고, Optum Rx에서 약을 타고, 그 결과가 다시 보험 청구로 돌아오는 전체 사이클이 하나의 데이터 생태계 안에 있다. AI 의료의 핵심 병목 중 하나가 "진단-치료-결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서 추적할 수 있는 데이터인데, Optum은 보험-진료-약국을 수직 통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데이터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 폐쇄 루프는 Google이나 Apple이 아무리 자금을 투입해도 복제하기 극도로 어렵다. 물론 Palantir와 같은 이종 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도입하여, 분산된 외부 데이터를 하나의 운영 체계로 엮는 우회 전략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데이터의 '존재'가 아니라 보험-진료-약국이 동일 법인 안에서 생성하는 폐쇄 루프의 '구조적 연속성'을 재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통합 플랫폼이 해결하는 것은 기술적 연결이지 계약적·제도적 접근권이 아니라는 한계가 남는다.


2. 플랫폼이 되려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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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tum의 전략이 단순히 자체 AI를 만드는 데 그친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사내 프로젝트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Optum은 그보다 훨씬 야심찬 것을 시도하고 있다.

2025년 6월 Optum은 AI Marketplace를 출시했다. 쉽게 말해, 의료에 특화된 일종의 "AI 앱스토어"이다. Microsoft, Google, ServiceNow 같은 기업들이 이 플랫폼 위에서 자신들의 AI 솔루션을 제공하고, 의료 기관이나 개발자들은 보험 청구, 환자 관리,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필요한 AI 도구를 골라 쓸 수 있는 구조이다.

이것의 전략적 함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빅테크가 Optum의 경쟁자가 아니라 Optum의 플랫폼 위에서 운영되는 입점 업체가 되는 구조이다. Apple이 App Store를 통해 모바일 생태계를 지배하는 것과 유사한 포지션이다. UNH는 연간 수십억 달러를 기술과 데이터에 투자하며, 이미 수천 가지의 AI 활용 사례를 운영에 통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 챗봇을 통한 고객 응대, AI 기반 의사 검색 등이 이미 대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이것은 미래의 계획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규모이다.


3. 문제와 해결책의 동시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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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tum의 포지션이 의사 집단의 방어선에 특히 위협적인 이유는 그 이중적 위치에 있다. 앞선 글에서 다룬 미국 의료 시스템의 비용 위기는 Optum의 포지션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Medicare HI Trust Fund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Medicare Advantage 관련 의료 비용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비용 위기가 심화될수록 AI를 통한 비용 절감 압력은 거세진다.


여기서 UNH-Optum은 보험사이자 동시에 AI 솔루션 제공자이므로, 환자 데이터를 활용해 비용 구조를 통제할 수 있으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기술까지 갖추고 있다. 의료비가 높아질수록 보험사는 비용을 통제해야 하고, Optum은 AI를 통해 비용을 줄일 수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솔루션을 도입할 동기가 강해진다. 즉, 시스템 내부에서 비용 압박과 솔루션 도입을 동시에 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의료비 절감을 요구할 때도, Optum은 이미 내부에 있어 손해 보지 않고 바로 대응할 수 있다. 외부에서 문을 두드리는 빅테크와 달리, Optum은 이미 문 안에 있는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사 집단의 저항을 무력화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다. 의사 집단이 "환자 안전"을 내세워 AI를 저지하려 할 때, Optum은 자체 소속 수만 명의 의사를 통해 "의사도 지지하는 AI"라는 내러티브를 만들 수 있다. Optum은 AI 도구가 행정 부담을 줄여 소속 의사들의 번아웃을 낮추고 있다고 보고하며, 이를 가치 기반 진료 모델의 성과로 제시한다. 미국의사협회가 "AI는 위험하다"고 말할 때, Optum 소속 의사 수만 명이 "나는 AI 덕분에 더 나은 진료를 한다"고 말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4. 안쪽에서부터의 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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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의 전략이 외부에서의 정면 돌파라면, Optum의 전략은 안쪽에서부터의 점진적 잠식이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Optum은 의사를 대체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의사를 "돕는다"고 말한다. 행정 부담을 줄여주고, 진단의 정확도를 높여주고, 환자 데이터를 정리해준다. 이것은 의사 집단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프레이밍이다. 그러나 이 "보조"의 범위가 점진적으로 확대되면, 실질적으로는 의사의 독립적 판단 영역이 줄어들 수 있다. AI가 환자 이력을 요약해주고, 진단 옵션을 제시해주고, 치료 계획을 추천해주는 상황에서, 의사가 하는 일은 AI의 출력을 검토하고 승인하는 것에 가까워진다. "보조"라고 불리지만, 의사 결정의 주체가 사실상 AI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앞선 글에서 다룬 탈숙련화와 직결된다. Optum 소속 의사들이 AI 도구에 익숙해질수록 AI 없이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은 퇴화할 수 있다. 그리고 가치 기반 진료 모델에서는 AI를 활용한 효율적 진료가 경제적으로 보상받으므로, AI 의존을 심화시키는 인센티브 구조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 일부러 설계한 음모가 아니라, 시스템이 구조대로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결과이다.

UNH의 경영진이 스스로를 "데이터 회사"로 규정하는 것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실제 전략적 현실을 반영하는 발언이다. 보험사가 데이터 회사를 자처하는 순간, 그 데이터 위에서 작동하는 AI가 보험사의 핵심 경쟁력이 되고, 의사는 단순히 그 AI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역할로 변모한다.


5. 수직 통합의 양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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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Optum이 가진 모든 구조적 강점을 위협할 수 있는 핵심 리스크가 있다. 사실, Optum의 가장 큰 강점이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 될 수 있다.

현재 UNH는 미국 법무부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그 내용은 보험과 의료 제공을 동시에 소유하는 구조가 경쟁을 해치지는 않는지에 대한 반독점 조사도 포함된다. 연구 결과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Health Affairs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Optum 소속 의사들은 외부 의사보다 더 높은 보수를 받고, 특히 시장 점유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그 차이가 더 크다고 한다. 미국 의회에서는 보험사가 자회사를 통해 의료 기관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기존 의료 대기업에서 보험과 의료 제공 사업을 분리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런 상황은 AI 기반 의료 전환 시나리오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6. 두 개의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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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나리오는 현재의 수직 통합 구조가 유지되는 경우이다. 미국 법무부의 수사가 벌금이나 부분적인 규제 수준에서 마무리되고, 의회의 분리 법안도 통과되지 않는 경우이다. 이 경우 Optum은 데이터 폐쇄 루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AI Marketplace를 확장하고, 소속 의사들에 대한 AI 도구 보급을 가속하며, 가치 기반 진료 모델을 전국적으로 넓혀갈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의사는 Optum 생태계 안에서 점차 "AI가 내놓는 결과를 확인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좁아지고, 이 과정은 "보조"라는 이름 아래 큰 저항 없이 진행될 수 있다. 탈숙련화가 가속되고, 어느 시점에서 "감독"이 형식적이 되면, 의사 없이도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이 시나리오에서의 전환은 격변이 아니라 조용한 증발에 가까울 수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강제적인 구조 분리가 일어나는 경우이다. 미국 법무부가 UNH와 Optum의 분리를 요구하거나, 유사한 법안이 통과되는 경우이다. 데이터 폐쇄 루프가 끊어지면 AI 의료 전환의 주도권은 분산된다. "진단-치료-결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하는 데이터를 누가 다시 구성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경쟁의 축이 되며, 빅테크의 웨어러블 데이터와 클라우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 전환은 더 느리지만 경쟁이 더 활발해지고, 의사 집단이 대응할 시간도 더 주어진다.

다만 어느 시나리오든 전환의 방향 자체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속도와 경로만 달라질 뿐이다.


7. LLM 이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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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의 과거 실패를 근거로 보험사-기술 복합체만이 승자가 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균형 잡힌 분석은 아니다. 현재의 기술적 조건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Watson 시절의 AI는 규칙 기반이거나 좁은 영역의 머신러닝이었다. 현재의 대규모 언어모델은 비정형 의료 데이터, 즉 의사의 노트, 환자의 서술, 영상과 수치의 동시 해석을 처리하는 능력이 근본적으로 다른 수준에 도달했다. 과거 실패의 핵심 원인이었던 "의료 데이터의 복잡성"이라는 장벽이 LLM에 의해 상당 부분 낮아진 것이다. 또한 빅테크의 진입 전략도 정교해졌다. 과거의 정면 돌파 대신, 의사의 행정 부담 경감이라는 명목으로 먼저 진입하여 업무 흐름에 깊숙이 통합된 후 역할을 확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Microsoft-Nuance의 DAX Copilot, Google의 MedPaLM, Amazon의 AWS HealthScribe 등이 이 전략을 따른다.

따라서 가장 개연성 높은 구도는 대결이 아니라 분업일 수 있다. 보험사-기술 복합체가 데이터 인프라와 수가 구조를 장악하고, 빅테크가 기초 AI 모델과 소비자 접점을 제공하며, 이 둘이 결합하여 의사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구조이다. Optum AI Marketplace에 Microsoft와 Google이 입점해 있는 것은 이 분업 구조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8. 성벽 안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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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석이 현 세대 의사에게 제시하는 함의는 통상적 서사와 다르다. 변화의 동력이 달라지면 대응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빅테크 vs 의사 집단"의 구도에서 의사는 외부의 침입자에 맞서 방어선을 쌓는 전략을 취할 수 있었다. 규제를 강화하고, "환자 안전"을 내세우고, 미국의사협회의 로비력으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보험사-기술 복합체에 의한 내부 잠식"의 구도에서는 이 전략이 작동하기 어렵다. 변화가 이미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Optum 소속 의사 수만 명은 의사 집단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보험사-기술 복합체의 구성원이다.

앞선 글에서 MD의 환전 전략을 다루며 보험사-기술 복합체 내부로의 진입을 하나의 경로로 제시한 바 있다. 이 글의 분석은 그 경로의 구체적 근거를 제공한다. Optum이라는 실체를 통해 보았을 때, AI 거버넌스, 임상 자문, 데이터 품질 관리, 알고리즘 윤리 위원회 등의 위치는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작동 중인 포지션이다. Optum의 CEO가 MD인 것은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앞선 글에서 지적한 집단행동의 딜레마가 여기서 더욱 선명해진다. 이 경로를 택하는 개별 의사가 많아질수록 의사 집단의 방어선은 안쪽에서부터 허물어진다. 그리고 Optum의 수직 통합 구조는 이 딜레마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토양과 같다.

의사 대체의 진정한 동학은 "외부의 기술 혁신이 내부의 저항을 뚫는다"가 아니라, "시스템의 가장 큰 내부 플레이어가 기술을 흡수하여 다른 내부 플레이어의 역할을 재정의한다"일 가능성이 있다. 빅테크는 촉매이지 주인공이 아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미국 법무부가 수직 통합을 용인하는 한에서이며, 강제 분리가 현실화되면 판이 달라진다. 그러나 분리 여부와 무관하게, AI에 의한 의사 역할 변화의 방향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속도와 경로만 달라질 뿐이다. 의사 집단이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의 혁신이 아니라, 이미 자기 시스템 안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구조적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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