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한국음식점 메뉴 표기를 보고 느낀 것들
해외에 있는 한식당의 메뉴판을 보다 보면 종종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음식의 맛이나 구성 이전에, 메뉴 이름부터가 낯설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비빔밥을 bibimbob으로 표기한다든가 어떤 가게에서는 일본 음식인 '우동'을 Udong으로, '돈까스'를 Donkatsu로 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한국식 돈까스 체인점 이름이 Brown Donkatsu이다. 일본인이 "Donkatsu가 뭐냐"며 의아해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이런 표기는 외국인에게도 혼란을 주고,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도 어색하거나 부정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음식 이름을 정확히 읽느냐’가 아니라, ‘이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설명이 되느냐’는 것이다. 외국인 손님에게는 발음보다 정보와 이해가 중요하다. 실제로 우리가 인도, 중동, 동유럽 음식점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Paneer Makhani, Shakshuka, Golabki 같은 이름을 정확히 읽지 못해도, “spicy tomato stew with poached egg” 같은 간단한 설명이 있으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사실 음식 이름이 아니라 명확한 안내가 고객의 선택을 좌우한다.
한식당 메뉴의 음식이름 로마자 표기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내가 본 사례 중에는 떡국을 Duck Gook이라고 표기한 경우도 있었다. 영어 화자 입장에서는 오리고기 요리의 일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로마자 표기를 정식으로 체계 있게 배우는 과정이 거의 없으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감각이나 발음을 영어로 대충 옮기는 방식에 의존한다.
중국어의 병음(Pinyin) 체계는 그나마 국가 차원의 표준화가 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Beijing이 영어식 ‘베이징’이라고 발음된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 중국어에서는 Běijīng의 'j'는 영어의 ‘ㅈ’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bei’ 역시 성조에 따라 다르게 발음된다. 즉, 병음 표기 역시 발음을 그대로 적은 것이 아니라 일종의 표기 규약에 따른 기호 체계이며, 그 체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오용과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중국계 비즈니스를 보면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있다. 중국어 상호와 영어 상호를 전혀 별도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론토의 유명한 란저우 라면 전문점 Magic Noodle의 원래 중국어 상호는 大槐树(큰 회화나무)이며, New Kennedy Square라는 쇼핑몰의 중국어 이름은 新旺角廣場이다. 영어 이름은 입지나 직관성에 맞춰, 중국어 이름은 지역 정서나 유래에 맞춰 각기 다른 층위에서 작명된 것이다.
반면, 한국 비즈니스들은 한글 이름을 억지로 영어로 직역하려는 경우가 많다. "삼천리 식당"을 Three Thousand Mile Restaurant이라 표기하는 사례도 있었는데, 영어 화자에게는 의미도 맥락도 와닿지 않는다. 이처럼 문화적 감성과 의미가 전혀 다른 언어로 억지 번역될 때, 상호는 정체성을 잃고 전달력마저 떨어지게 된다.
중국계 비즈니스는 언어마다 다른 정체성을 인정하고, 영어는 브랜드화·이해 용이성 중심으로, 중국어는 감성과 문화적 연결 중심으로 이중 전략을 쓰는 데 비해, 한국 비즈니스는 한글 이름을 어떻게든 영어로 옮기려다 어색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상호에서도 실용주의와 문화주의의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한국인들이 로마자 표기를 사용할 때 흔히 나타나는 태도는 영어 화자의 시각에서 “그나마 비슷하게 들리도록” 철자를 조작하려는 태도이다. 떡을 Duck으로 쓰고 "밥"을 "Bob"이라고 쓰는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면 문화사대주의의 잔재라고도 할 수 있다.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간 지금, 더 이상 우리가 영어 화자의 감각에 맞춰 비틀어진 표기를 쓸 이유는 없다. 그들이 우리 문화를 배우고, 우리가 쓰는 이름과 발음을 존중할 수 있도록 우리는 정확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우리 것을 설명하면 된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를 배워가는 시대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