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 모든 것을 내려놓고 캐나다로 떠나다

일본 생활 청산 과정

by 쿨파스

사실 캐나다 이주를 준비하면서도 진짜로 내가 캐나다로 가게 될지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이미 일본에서 벌여 놓은 일도 많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일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아내의 영주권은 어차피 받아 두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신청했고, 나도 캐나다 여권을 갱신하면서 10년짜리 유효 기간 안에 정말 내가 다시 이 나라에 정착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휴가를 내고 일주일 정도 사전 답사 겸 캐나다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오신 어머니와 이모도 함께였고, 나는 크라이슬러 미니밴을 빌려서 가족들을 데리고 여러 곳을 다녔다. 숙박은 토론토 노스욕 지역의 방 네 개짜리 단독주택 에어비앤비였고, 나이아가라 폭포나 토론토대학교 같은 대표적인 장소뿐만 아니라, 내가 예전에 살던 집, 가게, 노스욕에서 다니던 고등학교까지도 하나하나 다시 돌아봤다. 아내와 아이들은 토론토의 환경을 마음에 들어 했고, 지인을 통해 몇몇 집도 직접 보고 왔는데, 방 두 개짜리 집이 월세가 2,000불이 넘는다는 얘기를 듣고 과연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한 친구는 지금은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서 예전에 내가 살던 집 정도면 80만 불 전후로 살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 일본에서 산 3,400만 엔짜리 집 융자도 절반도 못 갚은 상태였기 때문에 80만 불이라는 숫자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무렵 회사에서는 내가 담당하던 일본 최대 고객, 이온 그룹이 결국 경쟁사 제품으로 갈아타게 되면서 그들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술적으로 서포트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같은 그룹의 온라인 부문에 영업을 하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대형 프로젝트는 원래도 성사 가능성이 낮은 데다가, 실제로 많은 잠재 고객들을 미국이나 유럽까지 데려가며 적극적으로 영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인사이동, 기업 인수합병 같은 변수가 생기거나, 마지막 순간에 담당자가 교체되는 등의 이유로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이온 그룹이 우리 고객이었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아마존 재팬, 미스터맥스, 100엔샵 다이소 등 전국 각지의 유통 체인 본사를 일일이 방문했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온은 우리 회사를 단순한 솔루션 제공업체가 아니라, 유저 미팅이나 해외 업계 이벤트 등을 통해 월마트, 테스코 같은 해외 고객들과의 교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창구로도 활용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작은 규모의 업체들은 이미 일본 국내에도 유사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는 점을 들어 굳이 일본 현지 직원 수 10명도 안 되는 우리 회사와 기반 시스템 계약을 체결하려 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도 영업을 시도해봤지만, 현지 사무소도 없고 사업자 등록 번호조차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상대해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에 비해 의료 업계는 상대적으로 영업이 쉬운 편이었다. 우리 회사의 솔루션은 미국에 진출하는 의료 업체들이 현지 FDA 규제 대응을 위해 사용하는 제품이었고, 선택지가 많지 않다 보니 비교적 수월하게 도입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이건 기업의 코어 오퍼레이션을 좌우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특정 규제 대응을 위한 한정된 용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계약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었고, 대상도 미국에 수출하는 업체로 한정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내의 영주권이 승인되었고, 우리는 마지막 단계로 실제 캐나다에 입국해서 영주권을 수령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영주권 신청 시 제출해야 하는 수많은 서류들 중에 포함된 아내의 건강진단서가 유효기간이 2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원래는 스폰서인 나에 대한 심사가 끝난 다음에 제출해도 되는 항목인데, 서류가 많다 보니 미리 받아둔 탓에 승인 시점에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결국 2주일 이내에 캐나다에 입국하지 않으면 영주권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는 상황이 되었다. 마침 골든위크 기간이라 아이들을 아내 친정에 맡기고 아내와 단둘이 캐나다에 다녀왔고, 공항에서 무사히 영주권을 수령했으며, 아내는 서비스 캐나다에서 소셜 인슈런스 넘버도 발급받았다. 나는 캐나다 국적자임에도 오랫동안 해외에 거주한 탓에 SIN이 비활성화된 상태라 바로 일을 할 수 없었는데, 아내는 바로 취업이 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 묘하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영주권은 확보했지만 곧바로 이주할 수는 없었고, 다음 해 봄에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캐나다로 보내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에 따라 지금 살고 있는 네리마 집도 매물로 내놓았는데, 부동산 업자 말로는 주택이 아직 10년이 안 되었기 때문에 거의 신축에 가까운 가격으로 팔 수 있어 유리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설날 연휴가 끝난 뒤 미국 본사 Chief Commercial Officer와 전화 회의를 했는데, 이 사람은 과거 일본 최대 고객사 사장과의 중요한 미팅에 아무런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아 일본 지사를 곤경에 빠뜨린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는 아무런 사전 설명 없이 나에게 퇴직을 권고했고, 구체적인 조건은 HR과 상의하라고만 말했다. 3월 말까지 퇴직하는 것으로 하고 일본 지사는 법인을 정리하는 수순으로 들어갔으며, 기존 고객은 내가 예전에 일하던 IT회사로 인계하고, 나는 퇴직 전까지 일본에 있는 독일인 변호사와 함께 법인 정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법인이 청산 절차에 들어가면 임시 대표는 내가 아니라 그 변호사가 맡게 된다고 했다.


이 회사는 내가 미국 대사관까지 직접 가서 설립한 법인이었는데, 그걸 이제는 내가 직접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원들에게는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절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두 달 동안 사원들 몰래 변호사 및 파트너 회사와 함께 업무 인계 계약서를 만들고 법인 청산 절차를 밟았다. 이쯤 되자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기러기 아빠로 혼자 일본에 남아 있을 필요도 없었다. 나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일본을 떠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다만 집은 아직 팔리지 않았고, 은행 융자도 중간중간 추가로 상환하긴 했지만 여전히 1,500만 엔 정도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네리마 집을 임대해놓고 캐나다로 떠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지만, 일본의 바보 같은 부동산 관행상 거주용으로 구입한 부동산을 임대하면 계약 위반으로 간주되고, 발각될 경우 전액 상환을 요구받는다고 했다. 특히 은행 관련 서류가 우편으로 발송되었을 때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면 의심을 받고, 실제로 발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마침 야후 재팬에 취직한 한국 후배가 일본 정착을 준비 중이라 그 친구가 우리 집을 6개월간 비공식적으로 빌려서 살기로 했고, 우리 집으로 오는 우편물은 그 친구가 아내 친정집으로 전송해 주기로 했다. 가전제품들과 자동차까지 그 친구가 전부 인수해준 덕분에 일본 생활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퇴직 조건은 원래 받을 보너스와 몇 개월치 월급을 과세되지 않는 퇴직금 형식으로 받는 것으로 정리했고, 남은 유급 휴가를 사용해 2월 말에 퇴직했다. 사원들은 갑작스러운 결정에 놀라긴 했지만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받아들여 주었다. 다만 3월 말까지 같이 남아서 뒷처리 해주기를 기대했던 한 사원이 내가 먼저 떠난 것에 불만을 품고 마지막에 나를 비방하는 메일을 보내왔는데, 이미 내 메일 계정도 차단된 상태라 답장을 할 수 없었고, 그 일은 지금까지도 마음 한켠에 씁쓸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당시 일본 지사 사원들과는 따로 연락을 하지 않고 있지만, 대만 현지 사원이나 본사 동료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퇴직 후 일단 혼자 먼저 캐나다에 건너가 지인의 집에 머물면서 은행 계좌 개설, 운전면허 취득, 주택 임대 등 기본적인 정착 준비를 했다. 고양이를 데려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애완동물 허용 주택이 많지 않아 임대 조건이 까다로웠지만, 운 좋게 토론토 북동쪽 마컴 유니온빌 지역에 위치한 재건축 검토 중인 비교적 넓은 주택을 좋은 조건에 임대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회사 사무실은 이미 이전을 마친 상태였고, 사원들은 모두 파트너 사무실로 옮겨져 있었다. 나는 그 사무실을 방문해 파트너 회사 사장에게 인사만 하고, 굳이 사원들과는 따로 만나지 않았다. 그렇게, 20년간의 일본 생활은 끝이 났다. 다만 도쿄와 사이타마의 3채의 집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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