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 네리마의 새집과 떠날 준비

일본 탈출 계획

by 쿨파스

도쿄 네리마구로 이사한 후, 주거 환경은 비약적으로 개선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거실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1DK, 2K, 3DK처럼 ‘L’이 없는 집에서만 살아왔고, 무려 14년 동안 ‘소파를 놓고 쉴 수 있는 거실’이 없는 집에 살아왔다. 늘 꿈꿔오던 리빙룸이 있는 집, 그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 집은 화장실이 2개 있어, 밤중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도 없었다.


사이타마의 옛집은 2층에 화장실이 없어 불편했고, 계단은 매우 가팔라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뎌 다친 적도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계단을 오르지 못하게 문을 설치하고, 난방 효율성을 위해 커튼을 치기도 했다. 그런 집에 비해 새 집의 편의성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자동으로 뚜껑이 열리는 센서 화장실, 유닛 배스에 욕실 히터와 자동 급탕기, 곰팡이 방지용 건조 버튼, 그리고 식은 물을 다시 덥힐 수 있는 기능까지 있었다.


집 규모는 아주 크진 않았지만 4인 가족이 살기에는 충분했다. 마당이 있어 잔디도 심고, 앵두나무와 스다치, 블랙베리 등을 직접 키웠다. 앵두는 일본에서는 잘 먹지 않아 마트에서 팔지 않지만, 나무는 관상용으로 팔았다. 덕분에 여름이면 신선한 앵두를 실컷 따 먹을 수 있었다. 참고로 앵두는 유스라우메라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말해도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뒷편 공용주차장 쪽 시야를 앵두나무가 가려줘 사생활 보호도 되었다. 게다가 날씨 좋은 날엔 후지산이 뚜렷이 보였는데, 집을 살 당시에는 미처 몰랐던 ‘숨겨진 보너스’였다. 훗날 이 집을 팔 때는 후지산이 보인다는 점을 광고에 넣었다.


회사는 내가 지사장이 된 이후 몇 년간 순조로웠다. 그러나 일본 내 최대 고객사 IT부서 책임자가 교체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새로 온 자회사 사장은 닛산 출신의 코스트 커터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우리는 3년마다 갱신되는 시스템 계약을 앞두고 미국 본사의 Chief Commercial Officer가 방일해 미팅을 갖기로 했는데, 정작 그 임원이 약속한 날 일본에 오지 않았다. 별다른 설명 없이 일정을 어긴 것이다. 고객 측에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일정을 잡았지만, 다음 달에도 그는 오지 않았다. 고객은 직접적으로 그것을 이유로 계약 변경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명확했다.


이 시스템은 그룹 전체가 매일 사용하는 핵심 인프라 시스템이라 당장 교체는 어려웠으나, 결국 3년 계약이 1년 연장 계약으로 줄었고, 그 사이 다른 제품으로 갈아타기로 결정되었다. 이 계약은 우리 일본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규모였고, 나는 이를 만회하고자 죽을힘을 다해 새로운 고객을 찾아다녔다. 헬스케어 분야에서 6개 기업과의 신규 계약을 따냈지만, 계약 단가가 작아 손실을 보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한국, 대만 등 지역 다변화를 이뤄냈다는 점이었다.


한편, 일본 사회는 아베 정권 아래에서 점점 혐한 정서가 노골화되고 있었고, 나는 아이들을 더 늦기 전에 캐나다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회사를 완전히 내려놓고 떠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만 캐나다에 먼저 보내고, 나는 몇 주간 휴가를 내어 이들의 정착을 돕는 계획을 세웠다. 아내의 영주권 신청도 이미 진행 중이었다. 캐나다 국적자인 내가 보증인이 되어, 내가 생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서를 제출해야 했고, 당시 재직 중이던 미국 본사 CEO에게 캐나다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보증 레터를 써 줄 것을 요청했고,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CEO는 원래 아시아 지역 총괄 출신으로 같이 일본에서 큰 사업을 따냈고 한국을 비롯, 베트남, 말레이시아, 홍콩 등의 사업을 같이 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사이가 좋아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는 경쟁 회사와 합병 과정에서 활약하는 등의 업무 수완으로 CEO로 승진하였고 나도 덩달아 일본 지사장으로 승진했지만 몇년 후 그가 주도한 기반 시스템 통합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고 주주회의에서 그도 퇴직을 요구받게 되어 결국 내 뒷배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미 아이들은 캐나다 시민권자였고, 나는 중학교 졸업 직후 캐나다에 이민 갔던 내 과거처럼 아이들도 비슷한 시기에 캐나다 사회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모처럼 시민권도 있는데 기왕이면 혐한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환경에서, 더 나은 기회와 자유로운 교육 기회를 주고자 함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떠난 후, 나는 네리마의 큰 집을 임대하고 사이타마의 두 집 중 하나로 다시 돌아가 살지, 혹은 작은 아파트를 새로 임차해 혼자 살지를 고민했다. ‘기러기 아빠’ 생활을 각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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