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23구의 시골, 네리마의 생활
네리마의 신축 분양 주택을 구입하기로 결정했을 당시, 내 수중에는 충분한 현금이 없었다. 옆집을 경매로 낙찰받을 때 저금을 대부분 써버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구입 자금 대부분을 은행 융자로 조달해야 했다. 남아 있던 현금은 부동산 중개 수수료, 등기 비용, 인테리어 자재 구매 등 부대 비용에 쓰였다.
신축 주택이라 리모델링은 필요 없었지만, 의외로 기본적으로 마루바닥 니스칠조차 옵션이었다. 조명기구나 에어컨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일본의 신축 주택은 집만 지어줄 뿐, 조명 하나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된 문화적 차이였다. 방 3개와 거실, 부엌 전부에 조명기구와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은 꽤 부담이었다. 그래서 일단 침실 두 곳에만 에어컨을 설치하고, 거실과 나머지 방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하기로 했다.
은행 융자에 대해서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당시 미국 벤처기업의 일본 지사장이었는데, 부동산 업자는 그것을 조금 불안하게 여겼다. 요즘 일본에서는 상장된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 외에는 대출 심사가 엄격하다고 했다. 대신 나는 이미 사이타마에 두 채의 중고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담보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심사는 통과되었고, 미쓰비시UFJ은행에서 전액 대출이 승인되었다. 이자율은 0.95%, 상장 대기업 직원에 이어 두 번째로 우량한 조건이라고 했다. 나중에 부동산 업자를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 은행 측은 우리 회사 웹사이트를 살펴보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객사를 가진 점을 확인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뜻밖의 일이 생겼다. 이사 일정은 아이들 학기가 끝나는 3월 말로 예정해 두고 있었는데, 은행은 내가 이 집을 '거주' 목적으로 구입하는 것이 맞는지 증거를 요구했다. “이 집을 투자용이 아니라 실제로 살 집이라면, 거주한다는 증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이렇게 설명했다. “아직 은행 융자가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집을 산다는 증명을 하느냐”고. 그런데 은행의 요구는 명확했다. 구청에 가서 그 집 주소로 먼저 주민등록을 하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집을 아직 구입하지도 않았는데, 그 주소로 주민등록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부동산 업자는, 이게 일본 부동산과 은행업계의 관행이라고 했다. 실제로 구청에 갔더니, 별다른 확인 절차도 없이 그 주소로 주민등록이 가능했고, 나는 '주민표'를 발급받아 은행에 제출했다. 그렇게 해서 융자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나는 이미 미쓰비시UFJ은행의 다른 지점 계좌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 대출은 부동산 업자가 있는 사이타마 미나미우라와 지점을 통해 진행했기 때문에, 그 지점에 별도로 계좌를 새로 개설해야 했다. 원래는 같은 은행 내에서 다른 지점에 중복 계좌를 개설할 수 없지만, 이 경우는 예외였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로 이주한 지금도 일본의 같은 은행에 두 개의 계좌를 가지고 있다.
융자금이 입금된 날, 내 통장에는 3,000만 엔이 넘는 거금이 스쳐 지나갔다. 통장에는 잠시 스쳐갔지만, 그 순간만큼은 뭔가 특별한 기분이었다.
다만 걱정이 하나 있었다. 가족 중 나만 미리 주민등록을 네리마로 옮기고, 아내와 아이들은 사이타마에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출입국관리국에서 위장결혼을 의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물론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고, 영주권도 받은 상황이라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사이타마의 집 두 채는 무사히 세입자를 찾을 수 있었고, 나는 외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세 채의 주택을 보유한 '집주인'이 되었다. 과거 이타바시구에서 아파트를 구할 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친족 보증인이 없으면 임대가 어렵다거나, 퇴실할 때는 벽지의 작은 흠집을 트집잡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런 설움이 있던 나도 이제는 집을 임대해 주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외국인이나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입주자도 환영한다는 조건으로 내놓았다. 다만 부동산 업자 말로는 반려동물 동반 입주는 보증금을 한 달치 더 받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해서, 그 조건만 따랐다.
그 이후 약 10년 동안 사이타마의 두 집은 꾸준히 임대되었고, 여러 입주자가 거쳐 갔다. 대부분은 일본인이었고, 외국인은 가와고에에서 대학 강사로 일하던 미국인 한 명뿐이었다.
임대 수익이 발생하면서부터는 세금도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모든 소득이 원천징수로 처리되었지만, 임대소득이 생기면서 매년 봄마다 개인별 소득세 신고를 하게 되었다. 감가상각 계산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지만 대강 작성해서 제출했고, 다행히 세무서로부터 별다른 지적을 받은 적은 없었다.
캐나다로 이주한 이후에도, 한동안 일본의 임대 수입은 계속되었다. 일본에 남겨 둔 그 세 채의 집은 단순한 부동산을 넘어, 내가 일본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리를 잡았다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된 집이 바로 도쿄 네리마구 오오이즈미마치(大泉町)에 있는 신축 주택이었다. 도쿄 23구 중에서도 가장 한적한 지역으로, 주택가 사이사이로 밭이 남아 있었고, 이 지역의 명물은 '네리마 다이콘'이라 불리는 무였다. 실제로 구청 마스코트 캐릭터도 무를 모티브로 만들어져 있었다.
근처에는 도에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있어, 세이부 이케부쿠로센 오오이즈미가쿠엔(大泉学園)역에서는 열차 문이 열리고 닫힐 때 ‘은하철도 999’의 멜로디가 흘러나왔고, 역 앞 광장에는 ‘아시타노 조’, ‘하록 선장’, ‘시끌별 녀석들’의 라무짱 동상도 서 있었다. 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팬은 아니었지만, 일본 문화의 상징들이 동네 곳곳에 살아 숨 쉬는 느낌은 신선했다.
우리 집은 역에서 도보로는 먼 지역이라 대중교통 이용 시 버스를 타야 했지만, 대신 5분 거리에 블루베리 농장과 감 과수원이 있었고, 곳곳에 무인 야채 판매대가 있어 100엔, 200엔 동전을 넣고 무, 배추, 당근, 껍질콩 같은 신선한 채소를 사올 수 있었다. 아침마다 산책 삼아 동전을 챙겨 들고 돌아다니는 일은 작지만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주변에는 매우 큰 저택들이 있었고, 명패를 보니 같은 성을 가진 집들이 많았다. 우리 집 등기부에도 그 집안의 성이 적혀 있었다. 대대로 이 지역의 땅을 소유했던 집안이 농지를 택지로 용도변경해 분양하고, 그 돈으로 호화 저택을 지은 것이리라.
전체적으로 쾌적한 주거 환경이었고, 위치적으로도 도쿄 중심부와 자동차 중심의 사이타마 생활권 사이의 중간 지점이라 어느 쪽으로도 접근성이 좋았다. 주소는 엄연히 도쿄 23구 소속이라 전화번호는 03, 자동차 번호판은 네리마였지만, 집에서 10미터만 걸으면 사이타마현과의 경계가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도시와 도시 사이 경계선 위에서의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