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와리 다마고”의 실체
일본의 아침 식사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다마고카케고항(卵かけご飯) — 밥 위에 날계란을 깨서 간장을 뿌려 먹는 간단한 요리는, 일본인들이 자국의 위생 수준과 식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외국인에게도 "일본에서만 가능한 안전한 날계란 식문화"로 소개되며, 자부심 어린 설명이 덧붙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요리를 일본 고유의 음식이라고 소개받았을 때, 오히려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 역시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서 자주 먹었던 음식이 바로 날계란 간장 비빔밥이었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속 시골집은 아궁이와 부뚜막이 있는 초가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꾼 옛날 가옥이었고, 냉장고조차 없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어린 나를 위해 할머니는 새벽에 막 낳은 따끈한 달걀을 가져다가 밥에 넣고 비벼주셨다. 시골 토종닭이 낳은 작은 달걀은 흰자 비율이 적어 밥에 비비기에 딱 좋았다. 반면 서울에서 산 계란으로 같은 방식으로 비비면, 흰자가 너무 많아져 밥이 미끈미끈해지고 그 느낌이 부담스럽게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 점차 나는 흰자를 익힌 계란 후라이 비빔밥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되짚어 보면, 날계란 밥 문화는 일본 고유의 전통이라기보다, 농경 문화권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 양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어권에서도 계란은 아침 식사의 상징이며 오히려 계란은 아침에만 먹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고정 관념이 너무 강해서 캐나다의 양계 업계에서 만든 광고에서 “Egg for dinner is not weird.” 라는 말까지 할 정도다. 일본은 아침 식사 뿐 아니라 계란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한 것 같고 계란을 사용한 요리가 많다. 단순한 반찬으로서의 역할 말고도 에도 시대에 이미 설탕과 함께 계란은 카스테라 같은 서양 과자 제조에도 사용된 역사가 있다.
어떻게 보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던 일본에서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계란이라는 식재료에 대한 애착이 한국 이상으로 강했던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일본 소비자의 계란에 대한 집착은 단지 날로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NHK의 한 특집 프로그램에서는 미국의 바이오 기업이 일본 시장을 위해 특별한 계란 품종을 개발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 기업은 일본 소비자의 감각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일본인은 노른자가 짙은 주황색일수록 신선하고 고급스럽다고 인식하며, 계란의 신선도는 노른자가 얼마나 볼록하게 솟아 있는지를 통해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기업은 그 기준을 분석해, 휴 팩터(Haugh Unit) 라는 지표를 기반으로, 신선도와 무관하게 항상 노른자가 볼록한 형태를 유지하는 일본 전용 품종을 개발해 공급한다는 이야기였다.
계란 노른자의 색 역시 사료에 포함된 베타카로틴 함량에 따라 쉽게 조절 가능하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즉, 노른자의 선명한 주황색은 '우수한 품질'이라기보다, 설계된 소비자 취향에 맞춘 연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방송에는 일본 대형 마트 이토요카도의 계란 담당 바이어도 등장했는데, 그는 노른자의 색을 평가하기 위해 전용 컬러 차트를 들고 다니며 육안으로 실제 노른자색과 일일이 비교하고 있었다. 이는 일본 유통 현장에서 계란이 얼마나 까다롭게 관리되고 평가되는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게다가 일본의 계란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흥미로운 점은, 고기, 생선, 채소 등 다른 식품군에서는 한국의 1인당 소비량이 압도적으로 일본을 앞서지만, 계란만큼은 일본이 한국보다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계란 하나를 두고도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점은 흥미롭다. 일본인의 계란에 대한 집착은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라, 정체성과 안전, 미학, 위생, 심지어는 우월감까지 투영된 복합적 상징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꿰뚫고 활용하는 외국 기업의 전략은, 일본 소비자들이 믿고 있는 '자국 고유의 고품질'이 때때로 얼마나 설계된 이미지 위에 성립된 환상일 수 있는가를 조용히 보여준다. 일본이 자화자찬에 빠져서 일본 스고이를 외칠 때 미국과 글로벌 기업의 엘리트들은 그걸 역이용해서 돈을 벌고 있으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