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부 – 일본 부동산을 전부 처분하다 (끝)

일본에 더이상 돌아갈 곳은 없다.

by 쿨파스

캐나다에서 주택을 구입했을 때, 은행 융자는 1년 단위의 계약이었다. 이 구조는 처음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융자 금액은 1년 안에 갚을 수 없는 큰 액수였고, 월 상환 금액은 30년 분할 기준으로 책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계약은 1년짜리였기 때문이다. 즉, 변동 금리로 계약을 하고 그 금리가 유효한 기간이 1년, 1년이 지나면 다시 재계약을 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계약 연수에 따라 금리가 달라지며, 은행이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유불리가 갈린다.


일본의 경우도 변동 금리로 30년 상환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 중간에 금리가 바뀐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결국 같은 은행과의 계약을 끝까지 유지했다. 도중에 다른 은행으로 갈아타는 일은 매우 드물다.


내 경우, 캐나다에서는 우버 수입을 기준으로 제2금융권에서 높은 이자의 융자를 받았기 때문에 굳이 장기 계약을 할 필요가 없다고 모기지 브로커가 조언해주었다. 그래서 1년만 계약하고, 1년 후에 나나 아내가 취직이 되면 그때 더 나은 조건으로 다른 은행으로 갈아타면 된다는 것이었다.


1년 후, 아내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양보호사(Personal Support Worker)로 취직하게 되었다. 높은 급여는 아니었지만 정규직이었고, 나 역시 좋은 직장은 찾지 못했지만 우버 운전도 요령이 생겨서 주당 2000달러 정도의 매출을 꾸준히 낼 수 있게 되었다. 기아 세도나 미니밴은 연료비 부담이 너무 커서, 하이브리드 차량인 현대 아이오닉을 새로 구매했다. 그 덕분에 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캐나다의 주요 은행, 예를 들면 TD뱅크와 모기지 계약을 맺기에는 조건이 충분치 않았기에, 브로커는 한국계 은행인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을 소개해 주었다. 한국계 은행은 한국 내 자산도 담보로 인정해 주기 때문에, 융자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결국 더 좋은 금리로 한국계 은행으로 갈아탈 수 있었고,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일부 추가 상환도 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아이들은 집에서 원격 수업을 하게 되었고, 취직은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식당이 영업을 중단하고 배달만 가능하게 되면서 음식 배달 수요가 폭증했고, 에센셜 워커를 응원하자는 사회 분위기 덕분에 팁도 후하게 주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내가 태운 우버 승객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이유로, 보건소에서 연락이 와서 2주간 자택 격리를 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매일 보건소에서 증상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우버 측에서는 보상 차원에서 500달러를 지급해 주었는데, 지금처럼 드라이버들이 홀대받는 시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나름의 좋은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 사이타마의 주택에서는 매달 월세가 꼬박꼬박 들어왔다. 그런데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부동산 관리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이타마에 있는 두 채 중, 경매로 낙찰받은 집의 지붕에서 누수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업체를 통해 점검해보니 지붕의 대규모 수리가 필요했고, 200만 엔에 가까운 비용이 들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큰 비용을 들여 수리할 것인지, 아니면 이 기회에 매물로 내놓을 것인지. 결국 가족과 상의 끝에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미 입주자가 있었기 때문에 강제 퇴거를 위해서는 각 세대에 월세 3개월치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또한 매입 희망자는 신축 주택을 지어 분양하는 개발업자였기 때문에 기존 건물의 해체가 조건이었다. 해체 비용과 입주자 보상 비용을 합하면 결국 200만 엔이 넘게 들었다.


다행히도 개발업자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매매가 성사되었고, 내가 두 집을 구입했던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었다. 그러나 각종 비용과 세금, 공증료 등을 제하고 나니 실제로는 큰 차익이 남지 않았다. 캐나다에 있으면서 모든 서류를 공증 받아 우편으로 주고받는 데에 시간도 오래 걸렸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또, 이미 캐나다 세무 당국에 보고된 해외 자산의 처분이었기 때문에, Primary Residence가 아닌 부동산의 양도소득에 대해 세금 납부 여부도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모든 비용을 제하고 나면 실질적인 capital gain은 없었기에 세금은 면제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들어온 잔금은, 환율 폭락으로 인해 캐나다로 송금할 수 없었다. 일본 엔화가 크게 떨어져 손해가 날까봐, 대부분의 돈은 지금도 일본 국내에 남아 있다. 작년에 아이오닉6 전기차를 구매할 때 일부를 캐나다로 송금하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자금이 일본 계좌에 묶여 있는 상태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내 모든 부동산 자산은 완전히 정리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친 구매, 관리, 임대, 그리고 매각까지—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니 묘한 허탈감과 동시에 한 시절이 마무리되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올해 초, 일본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었다. 일본에 간 김에, 한때 내가 소유하고 있었던 사이타마의 두 집이 헐리고 그 자리에 새로 지어진 멋진 신축 주택을 눈으로 보고 왔다. 나는 그 풍경 앞에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예전에 나도 이 땅에 집을 새로 짓고, 일본에 뿌리내리며 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만약 그때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집이 바로 그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드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이제 일본에는 내 집도, 가족도 없었다. 나는 20년 가까운 세월을 일본에서 살며, 출장을 마치고 일본에 입국할 때마다 "이제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공항 입국장에서 ‘재입국 목적’을 기입하라는 재입국 카드를 볼 때마다, 집에 가는 데 무슨 목적이 필요하냐며 황당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만큼 일본은 나에게 ‘외국’이 아닌,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생활의 기반은 캐나다로 완전히 옮겨졌고, 일본은 더 이상 ‘내 나라’가 아니었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사흘 동안 먹고 싶은 것들을 먹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난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됐다. 집에 가고 싶다.” 일본은 은 더이상 내 집이 아니었다.


다만 혹시 모르니 일본 영주권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일본 영주권 유지는 캐나다 영주권 유지에 비해서 조건이 간단하다. 캐나다 영주권은 영주권 카드 유효기간인 5년중 3년을 캐나다에 계속 거주해야 하고 영주권 카드 갱신때마다 그걸 증명해야 한다. 일본 영주권은 외국에 나갈 때 재입국 허가 없이 나가면 1년 이내로 일본으로 돌아와야 하고 그 이상 나가 있으면 재류자격이 취소된다. 하지만 재입국 허가를 받으면 5년까지 외국에 나갈 수 있으며 5년에 한번씩 일본에 돌아와서 재입국 허가를 다시 발급 받으면 (서류에 기입하고 6천엔 수수료만 내면 된다) 무제한 영주권 유지가 가능하다. 영주권이 있어도 일본 지자체에 주민 등록을 하지 않으면 주민세나 국민연금보험 같은 납부 의무도 없다.


앞으로 노후에 어디에서 살게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국에도 시골 집이 있고, 일본에도 아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을 집이 있다. 아니면 아예 제3국으로 떠나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볼지도 모른다. 후보지는 여러 곳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아직은 확신이 없다. 계획상으로는 4년 후, 은퇴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도 아직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면, 완전 은퇴가 아닌 '세미 리타이어(semi-retire)' 형식으로, 캐나다의 춥고 긴 겨울 동안만 따뜻한 나라로 잠시 떠나 있는 삶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고, 정착의 의미도 나이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커리어 디벨롭먼트, 자기계발, 네트워킹 같은 말들에 아무런 흥미가 없다. 그런 건 이미 충분히 해 왔다. 나는 충분히 일했고, 내 인생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좀 쉬어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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