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일본에 처음 갔던 추억 1

국제교류기금 일본어 성적 우수자 연수에 뽑히다.

by 쿨파스

나는 원래 일본학을 전공할 생각이 없었다. 부전공으로 시작하려던 일본학이 어느새 내 주 전공이 되어 있었다.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부터 일본 게임을 좋아했고,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가 사 주신 일본어 교재와 사전을 들고 독학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살 때도 KBS 교육방송의 일본어 강좌를 빠짐없이 챙겨봤다. 이민 후에도 게임과 만화, 일본인 친구들을 통해 일상적인 일본어에 익숙해졌다. 잡지는 80% 정도 이해했고, 일본식 한자 발음에는 자신이 없어도 뜻은 대부분 파악할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대사는 어느 정도 들렸지만, 오와라이 다운타운이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여전히 난해했다. 그 무렵 이미 일상 대화와 드라마·애니 대사 사이에 미묘한 간극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대학 입학 후 1학년 일본어(Modern Standard Japanese 101) 수업을 신청했으나, 일본어·중국어 등 동아시아 언어 과목은 수강 인원이 많아 추첨제로 운영됐다. 두 언어 모두 신청했지만 추첨에서 모두 떨어졌다. 내 수준이라면 2학년부터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했지만, 2학년도 마찬가지로 추첨 대상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3학년 편입 가능 여부를 문의하자, 담당 교수 면접에서 합격하면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3학년 일본인 교수와의 면접에서는 긴장 탓에 말끝을 흐리는 버릇을 지적받았다. 그럼에도 합격했고, 1학년이 아닌 3학년 수업부터 시작하게 됐다. 그곳에서 평생 친구도 만나게 되었으니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3학년 수업의 학생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일본 거주 경험이 있거나 일본계 2·3세, 네이티브 주재원 자녀로 구성된 ‘잘하는 그룹’, 그리고 1학년부터 착실히 수업을 이수해 올라온 그룹이었다.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잘하는 그룹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회화보다 읽기·문법 중심으로 공부한 덕에 시험 성적은 늘 90점 이상이었고, 다른 과목이 부진해도 GPA 하락을 막을 수 있었다. 이후 4학년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4학년 후반,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에서 성적 우수자를 선발해 2주간 일본에 연수를 보내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거 5년간 일본 거주 경험이 없다는 조건 때문에 잘하는 그룹 친구들은 모두 자격 미달이었다. 시험은 3학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해, 나는 시작 15분 만에 모든 문제를 풀었다. 한 문제를 틀리긴 했지만 무사히 합격했고, 캐나다 전체 5명 중 2명이 나와 내 동생이었다. 내 영향을 받아 일본어를 배운 동생은 이미 비슷한 수준이었고, 현재는 일본에서 동시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나는 1995년 말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하기 전이라 한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한국 여권의 일본 무비자 입국은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라, 일본 영사관에서 관광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캐나다 대표로 선발된 상황에서 국적에 관계없이 비자를 발급해준 일본 영사관과 국제교류기금에 고마움을 느꼈다. 비자 발급뿐 아니라, 영사관 직원과 국제교류기금 담당자는 토론토 다운타운의 고급 일본 레스토랑 ‘에마테이’에서 식사도 대접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소프트 셸 크랩을 맛보았다.


그 시기는 엔화 초강세였다. 1달러가 70엔대까지 내려갔고, 캐나다 달러는 1달러당 60엔 수준이었다. 출발 전 몇 달 동안 아르바이트와 용돈을 모두 모아 2,000달러를 마련했지만, 환전하니 겨우 12만 엔이었다. 연수는 사이타마현 우라와시(현 사이타마시)에 있는 일본어 연수센터에서 숙식하며 진행됐다. 당시 일본은 버블 경제의 여파로 여유가 있었는지 연수생 1인당 현금 6만 엔의 용돈도 지급됐다. 나리타 공항에서 버스로 사이타마까지 가는 데만 거의 3시간이 걸려 녹초가 되었고, 도착 후 처음 본 일본 거리 풍경과 자동차 딜러 간판 아래 차종 이름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대형 버스가 주택가의 좁은 골목길을 능숙하게 빠져나가는 장면도 지금까지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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