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하던 도쿄에서의 첫 1년
일본으로 돌아온 뒤, 나의 새로운 도쿄 생활이 시작됐다. 니가타에서 JET 프로그램을 통해 “보호받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무엇보다 1년 안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일반 취업비자로 바꿔야 일본에 남을 수 있었다.
911 사태로 인해 예정일보다 1주일 이상 늦게 도착했을 때,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는 도쿄에 없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야마나시현의 한 운전학교에서 2주 합숙 중이었다. 여자친구 하나만 믿고 “맨땅에 헤딩”하듯 도쿄로 왔는데, 정작 맞아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한 번은 렌트카를 빌려 운전학교까지 갔고, 또 한 번은 열차를 탔다. 렌트카로 갔을 때는 숙박비를 아끼려고 차 안에서 잤다. 열차로 갔을 때는 운전학교가 정말 외진 곳이라 주변에 호텔이 전혀 없었다. 여자친구 숙소는 여성 전용 기숙사라 묵을 수도 없어, 결국 현청 소재지인 코후(甲府)역으로 돌아와 밤 12시에 호텔을 찾았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역 주변 건물 안, 작은 병원 앞에 놓인 높은 의자에서 노숙을 했다. 9월임에도 밤공기는 차갑고, 폭주족 오토바이 소리가 시끄러워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인생에서 유일한 노숙 경험이었다.
도쿄에서 집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대학 2학년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아직 나를 부모님께 소개하지도 않은 상태라 함께 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일본 집주인들이 보증인이 없는 외국인에게 아파트를 잘 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결국 도쿄 고가네이시(小金井市)에 있는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 ‘애플 하우스’에 들어갔다.
이곳은 방 하나만 주고 욕실, 화장실, 주방은 모두 공용이었다. 친구를 불러 같이 묵으려면 1박 3천 엔을 추가로 내야 했고, 월세에 전기요금은 포함됐지만 전열기구 사용은 금지였다. 에어컨은 100엔을 넣어야 1시간 쓸 수 있었으며, 가끔 관리인이 동전을 수거하러 허락 없이 방에 들어왔다. 니가타 시절 쓰던 IH 조리기를 방에 잠시 두었는데, 쓰지도 않았는데도 관리인이 들어와 규칙 위반이라며 전기 코드를 압수했고, 퇴거할 때까지 돌려받지 못했다. 이런 일들이 겹치면서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외국인뿐 아니라 외국인과 교류하고 싶은 젊은 일본인도 있었다. 여기서 연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한 한국인 유학생은 일본인 여대생과 사귀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들으니, 그 유학생이 귀국하면서 휴대폰 요금을 내지 않아 여자친구가 대신 내줬고,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으며 돈도 갚지 않았다고 했다.
취직은 의외로 빨리 됐다. 도쿄 서쪽 다치카와의 한 공립중학교에서 갑자기 영어 강사(ALT)가 그만두는 바람에 대체 인력을 찾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나 외에도 미국 텍사스 출신의 백인 지원자가 있었다. ‘진짜 미국인’과 경쟁해서 내가 뽑힐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지원자는 근무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내가 채용됐다. 월·수·금 주 3일 근무에 월 20만 엔이라는 조건이었다. 다만 다음 해 3월부터는 시 교육위원회 직고용 방식에서 외부 영어학원 파견으로 바뀌는 탓에 계약은 7개월뿐이었다.
니가타에 있을 때도 가끔 영어 교실에서 강의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진짜 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캐나다에서는 쓰지도 않던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수업 중에는 일본어를 모르는 척하며 영어로만 학생들과 대화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익힌 일본어 실력을 일부러 숨겨야 하는 상황이 참 싫었고, 무엇보다 내 아이덴티티를 감춰야 한다는 기분이 불편했다. 최근에 Kpop Demon Hunters의 Golden이라는 노래에서 *“No more hiding, I'll be shining like I'm born to be”*라는 가사를 들었을 때, 그 시절의 감정이 떠올라 조금 뭉클해지기도 했다.
주 3일 근무는 상당히 여유로웠다. 게스트하우스 월세가 전기·수도·가스 포함 6만 엔이라 생활비 걱정도 없었다. 남는 시간에는 국제면허로 3년간 버티던 운전을 정식 일본 4륜 면허로 전환했고, 오토바이 면허도 취득했다.
이 무렵 캐나다에서 친한 한국인 친구가 일본을 방문했다. 그는 부모님의 달러 스토어·잡화점 사업을 돕고 있었는데, 중국에서 컨테이너 단위로 물건을 들여오기 위해 출장을 가던 길에 일본에 잠시 들른 것이었다. 지금도 그는 그때 일본에서의 추억을 종종 꺼낸다. 나와 함께 스쿠터를 타고 라멘집에 갔던 일, 일본에서 처음 운전을 해보다가 차선을 잘못 들어간 경험까지. 그때 그는 좁은 방에서 1주일을 묵고 갔고, 함께 차를 빌려 야마나시 온천에도 다녀왔다.
이후 2016년쯤에 캐나다를 잠시 다시 방문할 때까지, 캐나다 친구들과의 교류는 10년 넘게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