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지만 의외로 차이가 많은 용법
한국인 중에는 일본인에게 초면에 반말을 듣고 불쾌감을 느꼈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어에서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나이가 많으면 존댓말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고, 초면의 반말은 무례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어의 존대 체계는 한국어와는 작동 방식이 다소 다르며, 이를 단순히 예의나 상하관계의 문제로만 이해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한국에서는 나이 차이가 곧 관계의 위계로 이어진다. 한 살이라도 많으면 존댓말이 자연스럽고,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는 반말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 반면 일본에서는 장유유서의 감각이 한국만큼 강하지 않다. 나이만으로 언어 관계가 정해지기보다는 지위, 역할, 상황적 맥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어의 존대 체계가 연령과 상하관계 중심적이라면, 일본어의 존대 체계는 사회적 입장과 인간관계, 그리고 맥락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국어에는 존댓말과 반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포멀함과 높임 여부에 따라 여러 층위가 존재한다. “안녕하십니까”처럼 포멀하고 높이는 말투, “안녕하세요”처럼 인포멀하지만 높이는 말투, 그리고 오늘날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하오체”처럼 포멀하지만 높이지 않는 말투가 그것이다. 한국어의 존대 체계는 높임과 격식이라는 두 축이 교차하면서 다층적 구조를 이룬다.
일본어에서 두드러지는 차이는 상대 경어 체계다. 외부 사람과 대화할 때는 자기 편을 낮추고 상대편을 높인다. 그래서 외부인에게 자기 회사 사장을 말할 때는 “うちの社長”, 아버지는 “父”라고 낮춰 부르고, “社長様”나 “お父さん” 같은 표현은 쓰지 않는다. 한국어는 이와 달리 절대 경어에 가까워 자기 편이라도 윗사람이면 언제나 높여 부르는 것이 원칙이다. 나 역시 일본에 처음 갔을 때 과장님 전화를 받고 “요시다는 지금 자리에 없습니다”라고 ‘상’을 붙이지 않고 이름만 말하는 방식이 낯설었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한국인의 감각으로는 예의 없어 보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언어 규범이었다.
또한 일본어의 丁寧語(です・ます체)는 단순히 상대를 높이는 기능을 넘어 문체를 포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평소에는 반말(常体)로 대화하는 사이라도 업무 메일을 쓰면 자동으로 데스·마스체가 되고, 부모가 자식에게 충고나 격려 편지를 쓸 때에도 사용된다. 부부나 부모자식 사이에서도 진지하게 정색하는 순간에는 이런 말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한국어에서 존댓말은 관계가 형성되면 상황과 무관하게 유지되지만, 일본어의 존대말은 상황의 격식과 진지함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게다가 일본어에는 한국어의 “에요”처럼 친근하면서도 정중한 인포멀 존대체가 발달하지 않았다. 이 중간 층위가 없기 때문에 일본어 화자는 관계가 가까워지면 丁寧語를 계속 쓰기보다는 반말(ため口)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는 친밀하면서도 예의를 지키는 말투를 언어적으로 정교하게 마련해 둔 반면, 일본어는 그만큼의 세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두 언어의 큰 차이다.
존대말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본의 많은 청소년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10대 후반 무렵에야 본격적으로 경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존대말을 쓸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을 때에도 학생들이 교사에게 반말로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들의 감각에서 반말은 캐주얼한 언어이고, 존대말은 손님 응대나 공식적 장면에서 쓰는 포멀한 언어였다. 반면 한국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 선생님, 친척 등에게 존댓말을 배우며, 이를 통해 사회적 위계를 학습한다. 한국인에게 존대말은 관계의 기본 규범이지만, 일본인에게 존대말은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는 문체 선택에 더 가깝다.
도쿄에 처음 갔을 때 게스트하우스 입주 예약 전화를 걸었던 경험도 이를 잘 보여 준다. 전화를 받은 매니저가 대뜸 반말로 응대해 불쾌했지만, 외국인을 많이 상대하는 그가 “쉬운 일본어”를 쓴다는 의도로 반말을 택했을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직접 만나 내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자 그는 곧바로 존대말로 전환했다. 한국에서는 “이제 말 놓아도 될까요?”라는 확인 절차가 필요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합의 없이 친밀해졌다고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반말로 전환된다. 심지어 일부러 어리숙한 말이나 행동을 해서 상대방이 반말을 쓰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 전략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외국인에게 반말을 쓰는 경우도 오해를 낳는다. 일본어 교재는 대개 존대말부터 가르치는데, 현장에서 일본인이 외국인에게 반말을 쓰는 것은 본말전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일본인에게 “쉬운 일본어 = 어린아이에게 말하는 일본어”라는 감각이 남아 있어 무의식적으로 반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외국인이라 무시하는 건가?”라는 불쾌감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실제로 외국인을 낮춰 보며 반말을 쓰는 일본인도 없지 않지만, 많은 경우는 문화적 차이와 언어 감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를 이해하려면 일본어 경어 체계에 대한 일정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서 초면에 반말을 쓰는 것이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반말은 여전히 무례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피하는 편이 낫다. 나 역시 일본 생활 초창기에는 반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반말을 쓰게 된 것은 아내를 만나고 아이들이 태어난 뒤, 그리고 회사에서 지사장이 되어 부하 직원들에게 사용하면서부터였다. 이때도 보통 나보다 네 살 이상 어린 직원에게만 썼고, 나이가 많은 부하에게는 존대를 유지했다. 반말을 하더라도 “오마에” 같은 호칭은 쓰지 않고, 이름에는 “상”을 붙였다. 물론 일본 중년 남성들 중에는 부하에게 성만 부르며 “오카모토”“히가시”라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한국어의 경어는 절대 경어에 가까워 연령과 위계를 직접 반영하는 체계이고, 일본어의 경어는 상대 경어에 가까워 맥락과 상황을 따라 조절된다. 또 일본어에는 한국어의 “에요”처럼 친근하면서도 정중한 존대체가 발달하지 않아, 친밀해지면 丁寧語보다 반말이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존댓말·반말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두 언어는 사회적 거리를 표현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며, 이를 이해하면 양국 화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불쾌감을 훨씬 차분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