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karate?와 It won't work.
1989년, 나는 캐나다로 처음 이민을 왔다. 그때 나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막연히 이민자들을 위한 영어 교육 기관 같은 곳에 먼저 다닐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바로 현지 고등학교 10학년에 편입되었다. ESL(제2언어로서의 영어수업)은 따로 있었지만, 그 외의 과목은 모두 캐나다 학생들과 함께 들어야 했다. 수업 내용을 거의 알아듣지 못해 늘 멍하니 앉아 있었고, 매일이 너무나 힘들었다.
첫 해 내가 선택한 과목은 ESL, 과학, 수학, 지리, 오토메카닉, 키보딩이었다. 오토메카닉과 키보딩은 이름만 듣고 막연히 컴퓨터 관련 과목이겠거니 생각하고 고른 것이었다. 알고 보니 오토메카닉은 자동차 정비였고, 키보딩은 타이프라이터를 사용한 타자 수업이었다. 오토메카닉 시간엔 일본계 선생님과 선배 정비사가 타이어 밸런스를 맞추는 법을 보여주곤 했는데, 나는 그저 구경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과제는 모두 “N/A”로 처리되어 성적이 무효가 되었다.
그래도 키보딩에서는 의외의 재능을 발견했다. 처음엔 남들보다 느렸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내 타이핑 속도가 반에서 가장 빨라졌다. 선생님이 그걸 보고 학교 대표로 지역 대회에도 출전시켰을 정도였다.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자신감을 얻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교실에서 영어 때문에 생긴 첫 오해도 있었다. 어느 날 타자기가 말을 듣지 않아 선생님께 고장난 것 같다고 말하려 했는데, 영어가 서툴러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내 말을 잠시 듣던 선생님은 상황을 이해하더니 이렇게 말해주셨다. “It won’t work.” 나는 그대로 따라 했지만, 속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사전을 찾아보니 won’t는 will not의 줄임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미 타자기는 고장 난 상태인데 왜 미래형 will을 쓰는 걸까? 그게 영문을 몰랐다. 이 의문은 몇 년이 지나서야 풀렸다. 나중에 “The car won’t start.”라는 문장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미래형이 아니라, ‘이 차가 시동을 걸려고 하지 않는다’는 식의 의인화된 표현이었다. will에는 ‘의지’라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기계가 의지를 가지진 않지만, 사람의 언어 속에서는 그렇게 표현하는 법이었다. 다른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영어는 단순한 문법의 조합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적 사고가 스며든 체계였다.
영어로 혼란스러웠던 경험은 과학 수업 시간에도 있었다. 같은 반 백인 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웃으며 물었다. “Do you know karate?” 나는 단순히 가라테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는 뜻으로 “Yes.”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낄낄대며 말했다. “Oh, you can beat up everyone in the class?” ‘그럼 너 반 애들 다 때려눕힐 수 있겠네?’라는 식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그냥 “가라테를 안다”고 했을 뿐인데 왜 놀리는 걸까? 나중에야 알았다. 영어에서 “Do you know karate?”는 “가라테를 할 줄 아느냐”라는 뜻이지, 단순히 “가라테라는 것의 존재를 아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단순히 존재를 알고 있느냐는 의미라면 “Have you heard of karate?”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때 나는 언어란 단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그 안에는 문화적 맥락과 화자의 사고방식이 함께 녹아 있었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1998년, 나는 JET 프로그램으로 일본에 가서 20년을 보냈다. 그리고 2018년에 캐나다로 돌아왔다. 그 사이 영어도, 세상도, 사람들의 말투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끝내준다”, “멋지다”는 뜻으로 자주 쓰던 말은 “wicked”였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친구들끼리 “Come on man” 같은 말은 어느새 “bro”로 바뀌어 있었다. 또 예전에는 거의 듣지 못했던 “--ish”(예: Let’s meet around five-ish)나 “vibe”(예: I like the vibe here) 같은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년 동안 토론토는 너무나 다른 곳이 되어 있었고, 영어도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변해 있었다. 교과서가 아닌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세대의 감정과 시대의 공기가 언어를 통해 바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