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고 조즈데스네

못하면 칭찬받고 잘하면 견제받는 일본어

by 쿨파스

외국인이 일본어를 조금만 해도 일본인에게서 자동적으로 “日本語上手ですね(일본어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 말에는 입에 붙어버린 형식적 인사도 섞여 있고, 상황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건네는 일본식 반응도 포함되어 있다. 영어권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일본인에게서 이 빈말 칭찬을 받는 과정을 아예 동사처럼 만들어 “I’ve been Nihongo-jozu’d”라고 농담할 정도다.


하지만 일본어가 어느 수준 이상에 도달하면 칭찬은 어느 순간 뚝 끊긴다. 문법에 무리가 없고, 뉘앙스도 자연스럽고, 경어도 잘 쓰는 단계가 되면, 이상하게도 더 이상 칭찬이 오지 않는다. 외모까지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인이라면 자연스럽게 일본인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많고, 일본인이 아니라는 걸 밝히면 “일본인인 척했다”는 의심을 받는 경우조차 있다.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여기까지 오다니 대단하다”고 칭찬하기보다 “처음부터 일본어 알고 있었던 거 아니야?”, “재일교포인가?” 같은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수준에서 일본인들과 섞여 일하게 되면 칭찬은 사라지고, 대신 아주 미세한 말투나 표현을 근거로 슬쩍 지적을 하거나,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될 부분을 건드리는 일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나는 IT 업계에서 일했기 때문에, 업계 관행상 가타카나 외래어는 마지막 장음을 생략해 표기한다. コンピューター는 コンピュータ, サーバー는 サーバ, プロセッサー는 プロセッサ처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업계 관행을 모르는 일본인이 나에게 이 표기가 틀렸다고 트집 잡은 적도 있다. 정작 그 일본인이 업계 일본어를 몰랐던 것이다.


일본어가 어느 수준을 넘으면, 일본인의 인식에서 나는 더 이상 “일본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아니다. 어느 순간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 때로는 “우리와 거의 동등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분류된다. 그러면 칭찬의 대상에서 ‘평가의 대상’으로 신분이 바뀐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부여되던 가벼운 보너스가 사라지고, 기준이 갑자기 일본인 내부 기준으로 점프하는 것이다.


이 변화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다. 일본어는 일본 사회에서 정체성과 가까운 영역이고, 특히 경어와 뉘앙스는 일본인 내부에서도 차이가 나서 스트레스를 받는 분야다. 그 영역에 외국인이 능숙하게 진입하면, 일본인 입장에서 약한 경쟁심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농담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그 밑에는 ‘우리 고유의 영역에 외국인이 너무 가깝게 왔다’는 미묘한 감정이 흐른다.


내 아내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왜 당신이 내가 모르는 일본어를 알고 있어?”라며 살짝 분한 표정을 짓거나, 내가 모르는 일본어가 나오면 괜히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모국어는 누구에게나 마지막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도 똑같다. 내가 97년에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한국 고등학생 영어 과외를 했을 때, “선생님 이 표현 모르죠?”라며 교포보다는 자기가 한국말을 더 많이 알 거라고 확인하고 싶어하던 학생도 있었다. 결국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결합된 영역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외국인이 일본어를 잘하게 되면 칭찬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대가 초급이면 일본인은 구름 위에서 기특하게 내려다보는 입장이지만, 상급자가 되면 오히려 자신이 아직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특히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화된다고, 전에 친하게 지내던 터키 출신 일본 대기업 부사장도 말한 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는 조금 다르다. 영어는 어느 정도 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고, 네이티브에 가까워지는 것은 문화적 영역에 가깝다. 영어권 안에서도 영국·미국·캐나다·호주 등 억양과 표현이 다르기 때문이다. 캐나다처럼 영어·불어가 공용어인 나라에서는, 퀘벡 출신 프랑스어 화자가 영어 면접을 보면 약간 억양이 어눌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반면 영어 모어 화자가 불어 면접을 보면, 불어가 약간만 어눌해도 가혹할 정도의 지적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내 옛 동료인 오타와 출신의 영어·불어 이중언어 화자가 실제로 경험한 이야기다.


이런 현상은 영어 같은 메이저 언어보다는, 일본어·불어처럼 특정 공동체 내부 정체성이 강하게 결합된 언어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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