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 Title이 없는 일본 회사

시스템이 없는 조직과 개인이 시스템이 되는 순간

by 쿨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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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문제를 방치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문제 그 자체보다, 문제가 방치되어 커지는 과정을 견디지 못한다. 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조직일수록 문제는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무능한 부하에게 맡기면 상황은 나아지기보다 악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결국 나는 직접 문제를 끌어안고 해결하는 쪽을 택했다. 단기적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고, 실제로 많은 위기를 그렇게 넘겼다.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실무에서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사람이 매니저로서 실패하는 이유는 개인의 자질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가장 잘 보는 사람이 문제를 가장 많이 떠안게 되고, 그 결과 일은 몇 배로 늘어나지만 보상은 거의 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 모든 책임을 지고 가장 먼저 조직을 떠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케이스였다.


영어에는 사람이 자신의 무능이 드러나는 지점까지만 승진한다는 ‘피터의 법칙(The Peter Principle)’이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그 법칙에 들어맞는 사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조직은 여기에 또 다른 면모가 겹쳐진다. 일본의 많은 조직은 ‘잡 타이틀이 없는’ 구조를 유지한다. 겉으로는 제너럴리스트와 유연한 배치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책임과 권한의 경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시스템 설계자도, 프로세스 오너도, 공식적인 IT 담당도 없는 상태에서 업무는 돌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연히 프로그래밍 스킬이나 자동화 감각을 가진 평사원이 등장한다. 그 순간 조직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저 사람이 하면 되겠네.”


이렇게 해서 비공식 솔루션이 탄생한다. 엑셀 매크로, 액세스 데이터베이스, 개인 PC에서 돌아가는 자동화 스크립트들. 심지어 상시 켜 둔 윈도우 PC에서 브라우저 화면을 감시하다가 이상이 생기면 자동으로 메일을 보내는 괴상한 시스템까지 본 적이 있다. 공식적인 설계도도, 문서도, 인수인계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기준은 단 하나다. ‘업무가 돌아간다’는 것.


나는 미국에서 만든 마스터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일본 현업에서 사용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엑셀 매크로 도구를 직접 개발한 적이 있다. 일본어 UI도 없고, 입력 에러 체크도 없으며, 기계적인 validation만 가능한 시스템은 그대로는 현장에서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입력 단계에서 모든 오류를 잡아내고, 업로드 가능한 파일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도구를 만들어 시스템을 굴러가게 했다. 나는 대학 시절 컴퓨터 사이언스를 중퇴한 이후 정식으로 프로그래밍을 해 본 적도, 엑셀 매크로를 써 본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소스 코드를 들여다보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어떻게든 돌아가게만 만든 수준 낮은 엉터리 코드였다. 그래도 업무는 돌아갔다. 그걸로 충분했다.


다른 회사들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 Raw CSV 파일만 출력하는 시스템 위에 액세스 스크립트를 덧붙여 부문별·기간별 실적 리포트를 뽑아내는 사원, 정식 EDI 트랜잭션 모니터링 시스템 대신 개인이 만든 감시 스크립트로 거래를 지키는 현장들.


조직은 이런 개인의 창의성과 헌신 덕분에 비용을 아낀다. 몇천만 엔을 들여 정식 B2B 솔루션을 도입하지 않아도 되고, 실패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모든 리스크는 개인에게 전가된다. 더 아이러니한 점은, 이런 ‘천재’를 승진시키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을 현장에서 빼는 순간 시스템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승진은 오히려 조직의 리스크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칭찬은 받지만 보호받지 못하고, 보너스도 크게 늘지 않는다. 대체 가능하다는 환상 속에서 소모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퇴직하는 순간, 조직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는다.


이 병리의 상징 같은 존재가 바로 ‘엑셀 방안지’다. 정식 설계도면을 만들지 않고, 엑셀 셀로 격자를 흉내 내 도면 비슷한 모양을 만든다. 공차도 없고, 기준면도 없으며, 변경 이력도 남지 않는다. 설계의 역할은 사라지고 외형만 남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설계도면을 만드는 순간 책임이 생기기 때문이다. 엑셀 방안지는 ‘참고용’, ‘임시’, ‘현장 판단용’이라는 말 뒤에 숨을 수 있는 완벽한 도피처다.


이 모든 구조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일본 조직은 시스템으로 일하지 않고, 사람을 시스템처럼 사용해 왔다. 개인의 능력으로 조직의 결함을 메우는 동안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지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지연의 비용은 언제나 같은 사람에게 청구된다.


나는 이제 이 패턴이 회사라는 조직을 넘어 가족과 인생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하게 되었다. 한 번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사람은, 다음에도 같은 초인적인 대응을 요구받는다. 그것이 조직이든 가족이든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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