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캐나다 3국에 얽힌 사정
나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했지만, 아내는 내 성으로 바꾸지 않았다. 일본에서 일본 여성이 외국인과 결혼할 경우, 남편의 성을 따를 수는 있지만 반드시 별도의 신고 절차가 필요하다. 아무런 신청을 하지 않으면 혼인 전의 성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반면 부부가 모두 일본인일 경우에는 같은 성을 사용해야 하고, 대부분은 남편의 성을 따른다. 선택이 허용되는 경우와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나뉘는 이 구조는 제도적으로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아내가 성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일본의 가족관계 등록과 여권에서 모두 아내의 성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 성 역시 단순히 혈연으로 이어진 이름은 아니다. 장인은 어린 시절, 자녀가 없던 초등학교 은사에게 입양되었고, 그 과정에서 성이 바뀌었다. 아이들이 쓰게 된 성은 피로 이어진 가계라기보다는, 제도와 개인의 사정이 여러 겹으로 쌓여 만들어진 결과에 가깝다.
아이들이 일본 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사들은 종종 나를 아이들의 성으로 불렀다. 아이의 성을 기준으로 부모의 정체성을 추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건 내 성이 아니고,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설명을 시작하면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입양, 국제결혼, 성 선택 제도까지 이어지는 설명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다루기엔 번거롭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설명은 하지 않는 편이 더 무난했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에 살 때 아이들이 일본 성을 쓰고 있다는 점에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다. 결혼 당시에는 내 아이들이 아내의 성, 그것도 일본 성을 쓰게 될 것이라고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그 불편함과 동시에, 묘한 안심감도 있었다. 이름만 보아서는 외국인임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과 이름 모두가 일본인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들렸고, 적어도 명부나 서류 위에서는 아이들이 완전히 일본인처럼 보였다.
그 시기 일본 사회에서 혐한 분위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름만으로는 아이들이 한국 혈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일부러 감추려 한 선택은 아니었다. 제도와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 결과였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이 겪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불필요한 마찰이나 오해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아이들의 가까운 친구들은 아버지가 한국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숨겨야 할 비밀처럼 다룬 적은 없었다. 다만 이름이라는 가장 먼저 보이는 표식이 침묵해 주었을 뿐이다.
일본인 여성이 외국인과 결혼했을 때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경우를 보면, 일정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이름이 ‘스미스 아키코’라면, 사람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외국인 남편과 결혼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반면 ‘김 아키코’라는 이름을 보면, 외국인과의 결혼보다는 재일교포 출신이 아닐까 하는 쪽으로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외국인 성씨라도, 이름이 불러오는 연상은 다르게 작동한다. 서양식 성은 설명 없이 지나가지만, 동아시아식 성은 배경을 묻게 만든다.
이런 차이는 특히 관공서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더 분명해진다. 성씨는 여전히 많은 정보를 함축하는 기호로 기능하고, 그 기호가 익숙한 범주에 속하지 않을 때는 추가적인 확인이 따라온다. 실제로 일본인임을 설명했음에도, 그 설명이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악의라기보다는 익숙함의 문제에 가깝지만, 당사자에게는 반복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경험이 된다.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아이들은 캐나다 여권을 발급받으면서 내 한국 성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름이 갑자기 바뀐 셈이었다. 정체성 혼란 같은 것을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문제는 실제로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특별한 저항 없이 내 성을 받아들였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조용히 지나갔다.
앞으로 아이들이 캐나다에 계속 살지, 아니면 일본으로 돌아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아이들 스스로의 선택이 될 것이다. 일본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아내의 일본 성을 쓰게 될 것이고, 캐나다에 머문다면 내 한국 성을 쓰게 될 것이다. 두 나라를 오가며 살게 된다면, 이름이 달라지면서 서류상 약간의 불편이 생길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나는 거기까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 문제들은 그 시점에 아이들 스스로 판단하고 정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참고로 나는 캐나다에 살면서도 영어 이름을 만들지 않았다. 다만 예외로 일본에서 공립학교 ALT 강사로 일하던 시절에 임시로 영어 이름을 썼다. 당시에는 원어민이 아닌데도 원어민 교사처럼 보이기를 요구받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에 맞추어 약 1년 정도 영어 이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역할에 맞춘 임시적인 선택이었을 뿐이다.
영어 이름을 공식적으로 쓰지 않은 것은, 나중에 현실적인 도움이 된 부분도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재산 상속 절차를 밟으면서, 한국의 호적과 해외 서류상의 이름이 모두 일치했기 때문에 본인 확인 과정이 비교적 수월했다. 반면 내 동생은 캐나다 시민권 여권에서 영어 이름으로 정식 개명을 했고, 그로 인해 한국의 옛 기록과 이름이 달라져 추가적인 확인 절차가 필요했다. 같은 가족이었지만, 이름 선택 하나로 행정의 난이도는 크게 달라졌다.
이름은 때로는 제도가 요구하는 형식이고, 때로는 사회가 먼저 읽어버리는 기호이며, 또 때로는 그냥 편의의 문제일 뿐이다. 아이들의 이름 역시, 그들이 살아가는 장소와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정도의 변화는, 아이들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