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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피리 Jul 07. 2021

겨울을 겪으면 찾아오는 봄의 기쁨



우리 가족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지만 동시에 삶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 문장이다. 혹독한 겨울이 있었기에 오랜만에 맞이한 봄이 누구보다도 즐겁고 감사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남겨본다.




내 나이 서른, 두 달 전 그동안 모은 돈으로 고향에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샀다. 엄마와 나에게 이 집은 5번의 이사 끝에 만난 소중한 보금자리이자 봄과 같다. 엄마는 내가 14살이던 해, 아빠의 돌이킬 수 없는 잘못으로 인해 이혼 후 그동안 살던 집을 팔게 되었고 매우 적은 금액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하셨다. 엄마가 그 돈으로 열심히 구해 아빠로부터 나를 데려가 준 첫 번째 집은 기차가 지나다니는 작은 동네의 주택가,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15평 남짓한 곳이었다. 그러나 감성이 예쁜 엄마가 신중하게 골랐던 방 한 칸의 하늘색 꽃 벽지는 그 집의 어둑함이 우리 모녀의 마음까지 미치지 못하도록 지켜주었다.  


부엌 옆, 작은 공간에 끼워 넣은 책상 하나. 그곳이 나의 방이자 공간이었다. 좁은 구석의 답답함이나 오빠와 함께 놀던 우리만의 방이 사라진 것보다 더 슬펐던 것은 어린 나에게 낙이었던 수많은 책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엄마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늘 새 책을 사다 주셨기에 이전의 내 방은 책들로 가득했었다. 나는 보물과 같은 그 책들을 열심히 읽고 여러 가지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는 것으로 엄마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책들을 담을 수 없게 된 작은 공간에서, 나는 우리 가족에게 시작된 겨울을 체감해야 했다.

 

첫 번째 집에서 엄마는 나를 책임지기 위해 세신사 일을 시작하셨다. 이른 새벽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나면 늦은 밤이 되어 돌아오는 엄마에게 주어진 휴일은 매주 단 하루였고, 그마저도 고생한 몸을 회복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다. 그런 엄마에게 본인의 시간을 할애하여 나를 돌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하며 내게 찾아온 겨울은 외로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겨울은 꽤나 길었다. 엄마는 본인의 몸도 마음도 고달픈 와중에 어린 딸을 책임져야 했기에 마주한 겨울을 견뎌내야 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너무나 이해해서 나의 겨울을 참고 나 자신이 아닌 엄마를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길을 택하여 걸어왔다. 그리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빠와 살아야 했던 오빠. 부모님 이혼 후 방황하던 그에게도 나와는 다른 형태의 깊은 외로움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너무 차가운 땅이라 마음 편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오빠를 알기에 엄마는 서른 중반이 된 아들을 여전히 애틋함으로 바라본다.




내 나이 서른, 엄마와 오빠와 내가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우리만의 집을 마련한 것은 우리 가족에게 봄과 같다. 혹독한 겨울을 겪었기에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우리 가족은, 그러한 태도로 인생을 대해왔기에 선물과 같이 찾아온 봄이 너무나 즐겁고 기쁘다. 그 집에서 늘 항상 함께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평생 지낼 수 있는 안전한 보금자리가 생겼다는 것과, 오빠와 내가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가 다시 나아가는 힘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이후의 생을 더욱더 감사함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살며 봄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어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보금자리 근처 공원을 카메라에 담았다.  누군가가 내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묻는다면, 엄마와 오빠와 같이 도란도란 산책할 때,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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