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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May 25. 2024

특별한 나 만들기

별거 아닌 일도 

책 읽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는 도서관을 참 좋아한다.

우리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으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동네가 마음에 든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가 어떤 제약도 없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게 열려있다는 것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느껴진다.

책을 읽는 시간은 단조한 내 일상의 퀄리티를 상향시켜 '나'라는 사람을 나 스스로 조금은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소위 말하는 먹자골목을 한참 지나 소방서가 있는 작은  사거리 교차로를 건너면 조금 전과는 딴 세상 같은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다.

카페, 술집, 음식점, 피시방, 노래방 등 다양한 유흥시설이 즐비한 가운데 저만치 자리 잡은 도서관은 놀 때와 공부할 때를 구분해라 하는 성인의 따끔한 일갈이라도 들으라는 듯 현란한 조명과 간판들을 보란 듯이 따돌리고 유유히 자리 잡은 모습이다.


조금 늦은 20대 시절, 책을 좋아하는 친구 따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철 안에서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책을 읽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 반해서 남학생이 따라올 정도로 친구의 책 읽는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참 어여뼜다.

시작은 그랬다.

책 읽는 사람을 보면 뭔가 그럴싸해 보이고 그럴듯한 대형서점 - 그 당시에는 삼성역 반디 & 루니스 - 에 가서 많은 책들을 만나고 자연스러운 포즈로 책장에 기대거나 주저앉아 사색에 빠진듯한 표정으로 가끔 허공을 보며 글에 몰입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 속에 투영되는 내 모습 또한 멋져 보일듯한 착각에 나를 자꾸만 서점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고전문학, 명작미술, 해외문학, 에세이, 베스트셀러, 신간코너 등을 둘러보다 가끔 소장하고 싶은 책을 사기도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나 더 많은 책을 읽기에는 서점보다 편하게 책을 대출할 수 있는 도서관이 낫겠다 싶은 마음에 그 무렵 부터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오니 예전에 가끔 들렀던 도서관이 도보로 20여분, 왕복 40분 정도로 운동삼아 걷기에도 딱 좋은 거리에 있었다.

주말오후 모처럼 시간을 내어 방문했는데 낡고 협소했던 입구부터 확 달라진 것에 눈이 번쩍 띄었다.

여기저기 이쁜 소품들도 꾸며놓고 편안한 소파에 나무장식들, 페인트로 색감을 달리 한 벽면에 벽화 등, 예전의 모습이 딱딱한 공부방이라면 변신한 지금은 분위기 좋은 스터디카페 같은 곳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와~ 엄청 이쁘게 변신했네' 연신 놀람과 동시에 ' 자주 와야지' 하는데,,,,,역시 어딜 가나 눈에 거슬리는 사람 한 둘은 있게 마련이다.

길게 놓인 소파 위에 어르신 한분과 젊은이 한 명이 거의 누워서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의를 줘야 하는 직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들도 그저 그런 표정이다.

속으로는 못마땅해도 겉으로 표현은 하지 못하는 나포함 전형적인 착한 호구인들이 여러 명 앉아 있는 것이다.

나도 남편도 뚱한 표정으로 한번 바라보고는 못마땅해하는 한숨이라도 새어나갈까 입을 앙 다문다.

그 후로 그 도서관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요즘 내가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은 우리 회사 도서관이다.

한동안 우편대출을 이용하느라 방문이 뜸했었는데 도서관 리모델링이 유행이었는지 그곳도 역시나 과거의 허물을 벗고 멋진 모습으로 재탄생되어 있었다.

프런트를 뒤로하고 쭉 따라 들어가면 반층높이에 일인용 편안한 소파가 여러 개 배치되어 있고 격자무늬 창옆으로도 밴치형 의자를 길게 놓아 창밖의 풍경을 배경 삼아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을 수 있게 한 것이 설계자의 센스가 엿보이는 구도였다.

신발을 벗고 편안하게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는 남자분이 계셨는데 유리를 투과하여 비추는 빛 때문인지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윤슬이 사람에게서도 나올 수 있구나 잠깐 생각했다.

널찍한 공간 홀 중심부에 회의 테이블도 있어 소규모 스터디 모임이나 간단한 담소도 나눌 수 있어 보인다.

1층은 프런트와 주로 신간서적이나 베스트셀러 들을 주제별이나 작가별로 분류해 놓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편의성을 우선으로 하였고 전문서적이나 그 밖의 국문한 해외문학 등 다양한 책들은 본격적인 3층 서고에 가서 볼 수 있다.




                                                      많은 책이 소장된  회사 도서관 


내가 근무하는 건물이 아니기에 직접 가는 횟수를 줄이고 요즘은 우편신청이나 책마중 서비스를 이용하여 시간이 날 때 찾으러 가곤 한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딱 알맞은 시스템이다.

내가 원하는 책을 검색하고 책마중으로 신청해 놓으면 사물함 번호와 함께 비밀번호가 카톡으로 전송된다.

물론 시간여유가 있을 때는 직접 가서 책장사이를 돌며 차갑고도 따듯한 나무의 감촉을 손으로 쓸어보며 책을 고르는 재미를 선택한다.

요즘은 스마트 폰으로도 전자책을 읽고 책을 접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지만 책 냄새 가득한 서고에서 손으로 책을 만지고 꺼냈다가 다시 넣고 하는 단순한 행동이 주는 묘한 설렘을 알기에 전자책이 주는 편리함 보다는 아날로그식 수고로움을 선택한다.

더하여, 눈으로 활자를 마주치는 그 찰나가 주는 글의 의미가 귀에 들어오는 소리보다 더 묵직하고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빈둥빈둥 둘러보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멀리 창을 통해 밖의 풍경을 바라볼라치면 내 안에 뜨끈한 입김 같은 것이 올라와 아우라처럼 나를 둘러싸기도 한다.

나에게는 도서관이 그런 곳인데 갈 때마다 사람이 참 없다.

직원들 뿐 아니라 지역주민에게도 개방이 되어있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이렇게 조용하고 아기자기 한 공간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 같아 여기저기 홍보라도 하고 싶을 정도다.

어제 그곳에 갔다가 우연히 같이 근무했었던 직원을 만났다.

내손에 책이 여러 권 들려있는 것을 보고는 "여전히 책을 많이 읽네."

한 번도 그 직원 앞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인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언제 눈썰미 있게도 그런 순간을 포착했나 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역시나 손에 그런 류의 소설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해당작가의 다른 작품 '홍학의 자리'라는 책을 추천해 주고 돌아섰다.

밖으로 나오니 따가우리 만치 강한 햇빛 탓인지 책을 쥔 손에서 금세 땀이 올라왔다.

'아직 5월인데 날씨가 이래되 되나?'

몇 권의 책을 손에 쥐고 무엇을 먼저 읽을까를 생각하는 것도 즐거움을 동반하는 고민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은 작가와 출판사를 기준 삼아 우선순위를 정하지만 어떤 때는 표지가 이뻐서 손이 먼저 가고, 또 가끔씩은 제목에 이끌려서 내용의 궁금함을 견디지 못하고 겉장을 들출 때도 있다.

별생각 없이 고른 책이 나에게 뜻하지 않은 깨달음을 주거나 감동을 줄 때 그래서 다음에도 그 작가의 책을 또 읽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그래서 읽어야 할 책의 리스트가 두 세줄 더  늘어날 때 먹어도 먹어도 일용할 양식이 계속해서 쌓이는 신기한 쌀독을 가진 것처럼 부자가 된 기분이고 작은 흥분마저 느끼게 된다.

오늘 먼저 펼쳐든 책은 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 '노란 집'이다.

봄과 여름의 경계에 있는듯한 지금의 날씨와 참 어울리는 따듯한 제목인 것 같아 마음이 끌렸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 집에서 집필하셨던 작가의 유작을 따님께서 출간하였다고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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